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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먼트 Oct 17. 2024

스위치 K 파트 2

어린선증후군 (KID Syndrome) 아이와 함께 걷는 삶 (22)

Dr. Allen Lee 와의 진료가 있던 날 아침, 난 그 어느 때보다도 하준이를 위해 간절히 기도를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준비하는 내내. 애틀랜타 도심으로 향하는 길 또한 기도를 하며 가기에 충분히 긴 시간을 허락해 주었다. 교통량이 많아 막히기도 하고, 또 거리 자체가 멀기도 해서, 그 긴 시간 동안 난 애끓는 마음으로 하준이의 눈을 위해 반복적으로 기도했다. 그런데 어째 기도를 하면 할수록 그 긴장감이 더 올라가는지, (신앙심이 부족한 탓일까) 운전대를 잡은 내 손에 평소에 보기 드문 식은땀이 흘렀다.


동네에 있는 병원들에 비해, 이 안과 전문병원은 건물외관에서부터 그 위용이 상당했다. 주차를 하고 햇볕아래로 나와서 빌딩을 올려다보니 적어도 30층은 되어 보이는 건물이 그 꼭대기로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 높이다. 하준이의 손을 잡고 1층 로비로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외부 풍경이 보이는 엘리베이터가 올라감에 따라 하준이는 연신 신기해하며 좋아했다. 지면은 순식간에 멀어져 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큰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니 특유의 병원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프런트데스크에서 하준이의 이름을 적고 간단한 문진에 답한 후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다. 하준이를 무릎에 앉히고 장난도 치고 사진도 좀 찍으며 놀다가 간호사의 호출에 진료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의사가 들어오기 전 하준이의 상태를 간략히 보기 위해 시력검사를 먼저 시행했고, 그 이후는 동공 확장을 위해서 안약을 한 방울씩 양눈에 떨어뜨린 후 또다시 기다려야 했다. 간호사는 하준이를 좀 더 편하게 해 주기 위해 불을 끄고 나갔다. 앞으로 약 20여 분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문을 닫고 나가는 간호사의 어깨너머로 복도의 불빛이 잠시 타고 넘어왔다가 다시 어둠으로 바뀌었다. 아주 약간의 적막이 흘렀다.


어둠에 적응을 하고 나자,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의자에 누워있는 하준이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저 자주 다니던 안과에 오듯 아무 생각 없이 아빠를 따라온 저 녀석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누운 채로 가슴팍에 손을 얹고 손가락을 꼼지락꼼지락 하며 무료함을 견디고 있는 하준이의 마음이 궁금했다. 조용한 채로 시간은 벽시계의 초침소리를 따라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하준이가 견디는 무료함과는 달리, 복잡한 내 머릿속은 시간의 속도를 앞당겼다.


이내 진료실의 불이 켜지고, 본능적으로 하준이가 자신의 눈을 팔로 가리는 사이, Dr. Allen Lee가 들어왔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곤, Dr. Bordenca로부터 하준이의 진료기록을 넘겨받았다고 했다. 자신이 예전에 K.I.D Syndrome 아이를 한동안 진료 및 치료한 적이 있으니 그 기록을 바탕으로 하준이의 상태를 체크할 것이라고 덧붙이며, 바퀴 달린 의자를 끌어당겨 현미경 앞에 앉았다. 그에 호응하듯, 간호사가 하준이를 일으켜 세우고 턱을 고정하고 그 현미경에 아이의 얼굴을 밀착시켰다. 다시 주변조명이 꺼지고 의사가 현미경을 조작하는 미세한 기계음만 들리기 시작했다. 이따금 현미경에서 새어 나오는 초록색 빛이 내 안경 위로 어른거렸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Dr. Allen은 Dr. Bordenca의 진단처럼 하준이의 각막 위의 상처가 단순히 알갱이 등에 의한 흠집이 아닌 거 같다고 이야기했다. 더 심각한 것은 그 흠집이 어떤 경로로 생겨났던 것이든 이를 계기로 K.I.D Syndrome의 대표적인 증상 중 하나인 Vascularization 이 진행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순간 워낙 빠르게 말하는 탓에, 그 굴러가는 발음 위로 단어를 놓칠 뻔했다. Vascularization. 우리말로 직역하면 ‘혈관화’라고 불리는 증상이다. 본디 사람의 눈은 흰자위에 혈관이 있어 충혈이 되기도 하지만, 그 혈관이 결코 동공 위로 올라오지는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Vascularization은 각막의 표면을 흰자위에서 새로 생겨나는 혈관들이 그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어 동공 위로 잠식해 들어가서 점점 덮어버리는 증상이다. 그로 인해 각막이 탁해지게 되고, 시야가 뿌옇고 좁아지다가 결국 시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결국, 시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나는 Dr. Allen에게 어떤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유일한 방법은 각막이식인데, 그마저도 어린선증후군의 특성상 정말 반응이 좋은 각막을 써야만 성공률이 높다고 했다. 하준이의 피부체계가 새로운 각막을 거부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는 각막이식을 못할 것 같고, 나중에 하준이가 성인이 되면 한 번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그전까지는 Dr. Bordenca와 함께 최대한 관리를 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고, 그 사이 다른 한쪽 눈이 과한 정보처리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으니 그 또한 세심한 관리가 필요할 것이라 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연고와 안약 등을 꾸준히 쓰는 거 외에는 당분간 방도가 없다고 했다.


진료실을 나오는 내 마음속에서 하준이가 저 대화를 다 알아들을 수 없었다는 점에 일종의 안도감이 찾아왔다. 물론, 언젠가는 다 말해줘야겠지만.  발걸음은 힘없이 나를 엘리베이터로 끌고 갔다. 언제 도착했는지 스르륵 문이 열리고 있었다. 대충 구석에 몸을 기대어 생각에 잠겨있는데, 하준이는 병원데스크에서 받은 사탕하나를 입에 물고선 집에 간다는 사실에 경쾌하게 덩실거렸다. 녀석은 여전히 그 눈으로 외부 풍경을 전부 담아내고 있었다. 건물 로비로 내려와서 지하주차장까지 가는 사이 난 무슨 정신으로 내려왔는지 기억이 없다. 본능적으로 주차티켓을 바코드 단말기에 찍고 괜스레 운전대를 확 감아 부앙 소리를 내며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나의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지금 이 시간을 찢어내고 비틀어버리고 싶었다.


피부가 거친 것과 시력을 잃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머리카락이 없는 것과 시력을 잃는 것은 비교가 불가한 사항이다. 귀가 조금 안 들려 보청기를 껴야 하는 것과 시력을 잃는 것 또한 저울질할 수 없는 불편함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내 아이가 감당해야 할 터였다. 억장이 무너진다는 것은 이럴 때 쓰는 말이라 믿게 되었다. 


뚫린 고속도로로 나와 속도를 올렸다. 신호가 없는 고속도로에서 난 잠시 생각을 털어버리려 속도를 냈다.


하지만, 스위치 K가 눌렸다.

K.I.D의 모든 신호가 켜지고야 말았다. 


브레이크를 밝아야 하는 순간은 예측을 불허하며 부지불식간에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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