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선증후군 (KID Syndrome) 아이와 함께 걷는 삶 (20)
하준이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고 첫여름이 되었다. 1년이 지난 것이다. 똑바로 볼 땐 느려도, 돌아보면 늘 빠른 것이 시간이란 녀석이다. 그간 하준이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또 증상의 악화 없이 건강하게 학교를 다녔다. 무탈했으니, 마음깊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미국은 주마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의 시기와 기간을 다르게 정한다. 땅이 워낙 넓어서 주마다 기후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조지아 주는 대략 5월 말에 공립학교의 여름방학을 시작해서 8월 초에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 그리고 8월에 시작하는 가을학기가 새로운 학년의 시작이 된다. 5월 말부터 8월 초까지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무려 두 달 반의 기간이다. 학기 중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놓고 점심 이후까지 조금이나마 쉼을 누릴 수 있었던 부모들(특히 엄마들)은 방학이 되면 아이들과 집에서 계속 시간을 보내야 한다. 아무리 이쁜 아이들이라도 하루 종일 두어 달 같이 붙어있다 보면 스트레스가 올라가는 건 당연지사다. 맞벌이하는 부모들에게는 더욱 난감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한 스트레스를 피하고자 (물론 교육이 일차목표일 것이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한인교회나 학원등에서 운영하는 Summer Camp 프로그램에 등록시켜 보낸다. 대부분의 Summer Camp 프로그램은 아침 8시나 9시쯤 시작해서 3시쯤 끝나는 게 보통이다. 아이들이 방학 동안 학기 중이나 진배없는 스케줄을 소화해 내는 것이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지도 참 다양하다. 각 교회나 학원의 특색에 따라 Summer Camp 내에서 공부를 가르쳐주는 곳도 있고, 특별활동을 하는 곳도 있고, 뭐 그냥 노는 곳도 있다.
보통 7-8주가량 되는 이 프로그램의 등록비도 생각보다 만만치 않아서,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학생들을 모집하는 곳은 일찍 등록이 마감되기도 한다. 빠를 때는 그 모집이 봄에 완료되기도 한다. 금액적인 측면에서는 주로 교회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사설 학원보다는 싼 편이다. 그러기에 교회프로그램이 많은 이들에게 선호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조금 더 전문적인 교육프로그램을 원하는 부모들은 학원에 아이들을 보내기도 한다.
하준이도 이제 여름방학이니 나와 아내도 하준이를 어떤 Summer Camp에 보내야 할까 고심을 했다. 1년 동안 수고한 하준이에게 집에서 맘껏 놀고 쉬는 자유를 누리게 해주고도 싶었지만, 하준이의 동생이 너무 어려서 아내의 손을 더 많이 필요한 데다가 하준이도 다음 학년 것을 조금이라도 배우고 들어갈 수 있으면 더 편할 거 같아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우리 형편에 사설 학원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너무 비쌌기에 교회를 위주로 알아봤는데, 마침 집 근처에 있는 대형한인교회에서 괜찮은 조건으로 아이들을 모집하고 있어서 그곳에 등록을 하게 되었다.
곧 첫날이 되었다.
나는 아침 일찍 할 일이 있어서 아내가 하준이를 데려다주러 갔다. 내가 일을 마치고 집에 오니, 아내가 이미 하준이를 들여보내놓고 집에 와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그 교회에서 전화가 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하준이가 그 교회의 교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의아한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우리가 아는 하준이는 그럴 리가 없는 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첫날의 적응에서 하준이가 어려움을 겪나 보다 하고 다시 교회로 가서 하준이를 데리고 왔다.
둘째 날이 되었다.
어렵사리 하준이를 떼어내고 아내가 그 근처에서 다른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교회 측에서 전화가 왔다고 했다. 엄마가 떠난 뒤에 하준이가 교실 문 앞에서 안 들어가고 두어 시간을 보조교사와 실랑이를 벌였다고 했다. 이에, 나름 교회학교의 교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직접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를 데려갔음 했다는 것이었다. 그 전화를 받고 황망한 아내가 교회로 급히 가니 하준이가 다시 돌아온 엄마를 보며 울었다고 했다. 낯선 하준이의 모습에 왜 들어가질 못하냐고 하준이를 채근하는 아내의 등 뒤로, 교회 담당자가 내심 하준이의 등록취소를 권유하는 말을 했단다.
난 당장 그 교회 Summer Camp를 담당하는 사람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무슨 일인지, 왜 우리가 하준이의 등록을 취소했으면 하는지 묻기 위해서였다. 답변은 놀라웠다. 또한 예상 밖이었고.
그 담당자의 이메일은 우리를 타박하고 있었다. ‘왜 공동체 생활에 문제가 있는 아이를 자신의 교회에 보냈는가. 아이가 아프면 다른 기관에 보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미리 아이가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당신의 아이만을 위해 우리가 인력낭비를 할 수 없으니 아이의 등록을 취소하길 권장한다.’
불과 이틀이었다. 난 그저 지난 이틀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묻고자 했을 뿐이었는데, 이런 회신을 받으니 갑자기 내 안의 전투력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말과 글과 논증으로 살아온 인생이다. 마른 산 중턱에서 불을 지폈다면, 그들은 화재를 각오해야 했다. 조목조목 반박하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는 나이는 어리지만, special pre-K 프로그램으로 지난 1년간 공립학교에 문제없이 다녔다. 문제없는 정도가 아니라 매우 모범적인 학생으로 인정받았다. 이런 아이가 공동체 생활에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또한, 아이가 아파서 생활에 다른 아이들 생활에 방해가 될 것 같았으면 당연히 미리 이야기를 했겠지만, 내 아이가 보청기를 착용하고 외형이 남들과 조금 다른 것이 무슨 공동체 생활에 방해가 되겠는가. 내 아이의 아픔이 당신들에게 미리 언질을 줬어야 할 사항이었단 말인가. 지시사항을 알아들을 만큼 지능에 아무 문제가 없고, 의사소통이 되고, 또 지금껏 다른 교육기관에 보내야 한다는 의료적 진단을 받은 적이 없는데 무슨 언질이 필요했는가.’ (브런치스토리는 품위 있는 곳이므로, 나름 순화해서 재정리했음을 독자들이 양해해 주길 바란다.)
몇 번의 이메일이 더 오고 갔다. 조금은 감정적인 내용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도 공동체 생활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는 부모였다. 그들이 만약 ‘아이가 적응하기 조금 힘들어하니 좀 더 잘 맞는 곳을 찾아보면 어떨까요?’라는 어조로 접근했었다면, 되려 우리가 알아서 등록을 취소하고 다른 곳을 알아봤을 것이다. 그리고 하준이에게 애써준 보조교사 분께 미안함과 감사함을 전했을 것이다. 그런데, 저 태도는 마치 하준이에게 문제가 있다는 듯, 하준이의 아픔이 민폐가 된다는 듯, 낙인을 찍고 있었다. 도대체 귀가 좀 안 들리고, 머리카락이 없는 것이 첫 하루 이틀 적응을 못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란 말이가. 내 아이의 아픔이 공동체에 어떤 해악을 끼친단 말인가. 그걸 미리 알렸다고 해서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
결국, 우리는 하준이의 등록을 취소했다.
어쩌겠는가. 일은 벌어졌다.
이미 6월 초, 대부분의 기관들은 이미 Summer Camp의 등록이 마감된 상태였다. 우리의 선택지는 미국 교육기관이었다. 급하게 아내와 투어를 했다. 조용하고 깨끗한 시설이 하준이에게 좋을 듯싶었다. 한인교회들의 등록비용에 비하면 제법 높은 금액이었지만, 내 눈에 그 수치가 크게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일하는 시간을 늘리고 말지라는 생각이 날 지배했다. 하준이에게 여름방학이란 좋은 시간이라는 기억을 남겨주고 싶었다. 뭇 어린애들에게 여름방학은 추억의 응집체여야 했다. 다행히, 남은 여름방학 동안 하준이는 그 미국시설에 다니며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 아무 문제없었다. 그들이 등록취소의 이유로 내세웠던 그 어떤 것도 드러나지 않았다. 드러날 리 없는 이유들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 나와 아내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인마트에 갈 때마다 하준이가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하고 우리 뒤로 숨으려고 한다는 점이었다. 그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현상이었다. 한인마트뿐만 아니었다. 한인들이 많은 곳을 피하려 했다. 더 정확히는 무서워했다고 보는 게 맞는 거 같다.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두려움은 완전히 도망간 척 마음 깊은 곳에 뿌리만 남기고 사라졌던 것이었나 보다. 이 사건을 영양분 삼아 급속도로 다시 피어오르고 있었다.
남들보다 한 걸음 학교라는 사회 속으로 일찍 발을 내디딘 내 아이는 당당하고 씩씩하게 그 길을 걸어 나갔으나, 또 제법 잘해나갔으나, 뜨거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조지아의 초여름 예상치 못한 일로 다시금 부모의 품에서 충전과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후 하준이는 단 한 번도 한인교회가 주관하는 Summer Camp에 다닌 적이 없다. 혹시라도, 이 아이의 아픔이 또다시 어떤 닫힌 집단에 의해 형체 없는 해악처럼 간주될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