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선증후군 (KID Syndrome) 아이와 함께 걷는 삶 (19)
하준이의 학교생활은 생각지도 못한 선물처럼 다가왔다. 작은 교실에서 적은 인원과 좋은 선생님들과 진행되는 수업덕에 조금씩 영어 단어도 알아가고, 잘은 말 못 해도 조금씩 의사표현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적응력의 바탕에는 하준이의 적극성과 인내심이 한몫했을 것이다. 하준이는 먼저 나서서 친구들에게 말을 거는 타입의 아이였다. 사실 이는 부모인 나와 아내조차도 이전까지 잘 모르고 있던 부분이었다. 오히려 우리는 하준이가 수줍음이 많고 소극적일까 봐 걱정했던 것 같다. 그런 걱정이 기우였는지, 막상 또래 아이들과 한 곳에 있을 때의 하준이는 명랑하고 쾌활하고 주도적인 아이였다.
두 어 달이 지나고 학교로 면담차 찾아갔을 때, 담임 선생님이 우리에게 말했다. 하준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무슨 의미냐고 되물으니, 하준이가 여기저기 다 인사를 하고 다녀서 다른 선생님들 뿐만 아니라 청소부까지 다 하준이를 좋아하고 알고 있다고 했다. 아니, 내 아이가 그 정도로 밝고 적극적이라고?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나와 아내는 지극히 소극적이고 주어진 관계에만 집중해도 기가 빨리듯 에너지 소진율이 높은 사람들인데, 우리 아들 녀석이 정반대라니. 담임 선생님은 하준이의 그런 사회성을 입이 닳도록 칭찬했다.
미국은 initiator의 사회이다. 다시 말해,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야 되는 사회이다. 적어도 인간관계에서 만큼은 이 전략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통한다. 내가 관계를 맺고 싶은 사람에게 먼저 다가서고, 적당히 표면적인 관계를 크게 헝클어지지 않는 선에서 줄 타듯 그 미묘한 긴장을 유지해야 되는 사회이다. 조금 과격하게 말하면 언제나 철면을 장착하고 여기저기 인사를 하며 웃는 얼굴로 대화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부단히 눈도장을 찍는 것이다. 새로운 자리로 기회를 얻어가는 것도 이렇게 구축된 네트워크 안에서 알음알음으로 소개받는 경우가 공식 채용만큼이나 많다.
혹 내가 실력이 진짜 좋으면 상관없는 거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건 정말 실력이 천상계라서 소문과 네트워크의 힘 없이도 유아독존 빛날 때 가능한 이야기다. 그럴 경우에는 네트워크 바깥에 있어도 언제든지 컨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나 혼자 준비를 잘하고 기량을 잘 갖추어나간다고 해도, 네트워크 내부에 노출되지 않으면 아무도 그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다. 그러기에 실력에 합당한 처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도 많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미국이란 땅에서 지난 수백 년간 그들이 살아온 삶의 양식이다.
미국교단소속으로 미국목사들과 뒤섞여 미국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런 방식의 인간관계가 성경적으로 맞냐 아니냐 등 종교적인 옳고 그름의 해석을 떠나서 일종의 사회적 문화이기에, 그 문화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국 목사들은 나 같은 이의 이런 피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이를 알고 있지만 (알고 있는 바와 경험을 토대로 글만 써도 논문 한편은 뚝딱일 것이다), 잘 해내지 못해서 문제다.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필요한 덕목이었으니까 말이다. 기본적으로 내 세포에 그런 기능들이 없는 듯하다.
그런데, 내 아이가 마치 선천적으로 그런 성격을 지니고 태어난 거 마냥 학교에서 이렇게 잘 적응하고 생활하고 있으니 신기하면서도 대견할 따름이었다. 아빠보다 나은 아들 녀석이었다. 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한 것은, 어른들의 관계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계산을 바탕으로 한 행동이 아니라 그냥 사람이 좋아서 친구들이 좋아서 여기저기 인사하고 돌아다닌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학교 임직원 모두가 사랑해마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이와 더불어 하준이의 학교 적응과정에서 눈에 띈 또 하나의 장점은 하준이가 선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작은 아픔에 대한 관심과 감정이입이 뛰어났다. 그래서, 하준이는 늘 주변을 도와주려 하고 있었다. 소외되는 친구가 없게 주변을 챙겼다. 교실 문을 열고 친구들이 다 나가고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마지막에 나간다던지, 친구에게 기꺼이 급식줄의 자리를 양보한다던지, 공부하다가 막히는 친구를 도와준다던지. 이렇듯, 자신의 풍성하고도 깊은 성숙함과 선함을 아낌없이 나누어주고 있었다.
나에게는 그런 하준이의 모습이 때로는 오지랖을 부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모르긴 몰라도 실제로 그렇게 느끼는 학급 친구나 주변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서 아시아인으로, 또 한국인 이민자의 자녀로, 또 영어를 완벽하게 못하는 상태에서, 그리고 또 외모가 조금 다른 상황에서, 하준이 또한 상대방 눈빛에 담겼던 거부와 불편을 느끼지 못했을 리 없었다. 때로는 하준이의 선한 성격을 짓궂게 이용하려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나 하준이의 그 선한 의도를 알게 되면 이 아이가 가진 깊이를 느낄 수가 있었다. 또한 하준이 자신이 타인이 표출하는 불편함에 심리적 대미지를 크게 입지 않는 듯했다. (만 10살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하준이는 그렇게 타인에게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심지 곧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다) 그게 하준이의 친구 사귀는 방법이었다.
하준이는 요령을 피울 줄 몰랐다. 인간관계에서 변화구를 던질 줄 몰랐다.
늘 정공법을 택했다. 먼저 다가섰고, 아낌없이 줬다. 손해를 계산하지 않았다. 늘 이타적이었다. 그 씀씀이가 심리적인 것이든 육체적 에너지든, 하준이는 마치 어딘가에 있는 마르지 않은 샘에서 늘 긍정의 덩어리를 뽑아내는 것 같았다. 학교생활을 시작한 지 몇 개월이 채 안되어 꽃피기 시작한 천부적인 인성이었다. 집에서만 있던 작은 아이의 이면에는 그런 큰 마음이 자라고 있었다.
나는 적당히 착하다. 적당히 이기적이고, 적당히 이타적이다. 적당히 계산적이며, 적당히 선을 베푼다.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효율을 추구한다. 적당히… 찌들었다. 이렇게 찌든 내가 하준이의 비효율적인 면을 보며 뭔가 경험적 지혜인 듯 짐짓 목소리를 낮추고 조언을 하려고 할 때면, 이 아이의 맑은 눈동자에 가없이 담긴 선함에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된다.
저 아이가 늘 괜찮다고만 할까 봐. 손해 봐도 울상한 번 짓지 않을까 봐. 거절을 당해도 그냥 웃어넘기고 말까 봐. 소득 없이 퍼주기만 할까 봐. 그럼에도 다른 방법에 찌들지 않아서 계속 직구만 던질까 봐. 그게 이 세상에 찌든, 변화구도 직구도 모두 어설픈 이 아빠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성품임을 알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