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밟힌 사랑.

나에게도 마음이 있어. 나는 알라딘의 요술 램프가 아니야.

by 마타

요즘 그녀가 다른 사람과 연락하는 것 같다.


카톡의 답장은 점점 느려졌고 애교와 사랑이 가득 담겼던 메시지는 점점 차가운 단답만이 늘어갔다. 우리의 관계도 꽤나 시간이 지났으니, 첫사랑의 뜨거움이 잠시 사라질 수 있다고, 일시적으로 그럴 수 있다며 위안을 삼았지만, 지금의 그녀는 명백히 나와의 연락을 부담스러워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무엇이든지 맞춰줄 것처럼 말했던 그녀는 언제부턴가 나의 말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우리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함께 맞춰가자며 말도 조심히 하고 또 내 의견을 경청해 주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내 목소리만 들어도 화가 나는지, 적당히 하라며 소리를 지르기 일쑤.


수화기 너머 내 작은 반응 하나에도 소중히 반응해 주던 그녀가, 이제는 나를 앞에 두고도 핸드폰만 바라본다. 처음 만날 때만 해도 자신은 떳떳하다며 메신저든 뭐든 다 공개할 수 있다고 하던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사생활 보호 필름을 붙이고 나타나더니 내 앞에서조차 다른 사람과의 연락을 숨기지 않았다.

이제는 내 목소리만 들어도 그녀가 화를 낼 거라는 걸 잘 알기에, 최대한 그녀의 심기를 상하게 하지 않으려, “뭐야~ 누구랑 그렇게 연락해?”라고 물어봤지만, 그녀는 숨길 생각도 없는지 퉁명스레 대답했다. “아 그냥 친구. 뭘 물어봐? 내가 말하면 누군지나 알아?”


처음에는 자신도 켕기는 게 있었는지, 자제하려는 모습이라도 있었는데! 하루 이틀 넘어가니, 내가 눈치채지 못 하리라 생각했는지 이제는 대놓고 나를 무시하는 태도다.


나도 바보는 아니었다. 매일매일 그녀의 인스타에 하트를 누르는 그 사람, 나와 함께 찍은 사진에 보란 듯이 끈적한 댓글을 달아 그녀와의 친분을 과시하는 그 사람!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고, 당연히 그녀가 그런 상대를 기피하고 내 편을 들어주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오히려 내 앞에서 자신이 인기가 많다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것인지. 그와의 인연을 과시했다.

“그냥 친구긴 한데, 가끔 저래. 얘가 예전부터 나 좋아했었거든.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거지.”

그러려니 한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그녀는 그래서는 안 됐다. 나의 마음에 그녀와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듯이, 그녀의 마음도 오롯이 내 것이어야만 했다. 그런데 그녀는 나를 만나면서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하지 않고 오히려 그 모든 것을 당연히 즐길 수 있다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질투가 불같이 일어나는 듯했고 나중에는 수치와 모욕감이 치밀었다. 이가 갈리는 패배감이 나를 휩쓸었다. 나는 여전히 그녀의 애인이었는데, 그녀는 나와의 시간을 가지는 것보다. 그녀의 오랜 친구, 아니 오랜 애인과의 관계를 즐기는 것에 더 시간을 보냈다.


분명 물리적인 거리는 내가 더 가까웠으나, 그녀의 마음은 다른 사람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나와 만나는 그 순간에도 다른 사람과의 연락을 멈추지 않고는 그곳에 마음을 쏟았다!

너무나 속상했던 것은 이런 와중에서도 나의 마음은 여전히 그녀에게로 향해 있었다는 점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녀가 나에게 신실했을 때는 아주 잠깐이었고 그 뒤로는 줄곧 이 상태였지만, 그런데도 나는 나를 향해 주었던 그 잠깐의 사랑을 잊지 못해 계속해서 희망을 품고 만다. 지금에라도 그녀가 나만을 위해 준다면, 그때의 그 애정이 가득 담긴 시선을 다시 한번만 향해 준다면, 나는 그녀의 행동들을 다 잊을 수 있을 텐데!


지난날이 지옥 같았지만, 그녀가 상대와의 관계만 정리해 준다면, 나는 그녀의 곁에서 평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자신이 있었다. 나는 그녀를 여전히 세상에서 제일 사랑했으니까.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녀가 내게로 돌아와 줄 때나 가능한 일. 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그녀의 마음을 다른 누구와 나누어 가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것만은 안됐다. 내게 그녀가 전부라면, 다른 모든 것은 포기하더라도 그녀의 마음만큼은 나에게로 향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나는 그녀의 조건을 보고 사랑한 게 아니었다. 나만을 향해 주는 애정이 가득 담긴 그 소중한 눈동자. 내 이름을 수줍게 불러주는 그 사랑스러운 모습. 그녀를 향한 내 사랑이 진심이기에, 그 모습만큼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어야만 했다.


그런데 그녀는 내 앞에서 다른 사람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나에게 향해야 할 그 사랑스러운 미소를 다른 사람을 향해 짓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서웠던 사실은, 그녀의 변화를 기다리던 나의 마음이 점점 지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 마음이 지치면 지칠수록 그녀와 함께할 미래가 영영 멀어진다는 것을 알기에 두려움과 슬픔으로 더욱 애타게 그녀를 기다렸지만, 그녀가 나에게서 멀어질수록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사랑의 표현들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나를 부담스러워 하는 상대에게 내가 무슨 표현을 마음껏 할 수 있단 말인가?그러나 그녀는 오히려 내게 일갈했다.

“너가 먼저 변하고 있잖아. 그러니까 내 마음도 흔들리는 게 아닐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점점 도를 넘어갔다. 내가 수줍은 마음으로 신청했던 첫 데이트 장소에 상대와 함께 가는 것은 물론, 우리의 럽스타그램에 올렸던 장소가 좋았다며, 그 남자와 함께 그 장소를 찾았다. 내 앞에서 그의 이야기를 점점 많이 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상대는 자신의 말을 잘 들어준다며, 나와 그를 비교하며 깎아내렸다.


그녀는, 내게서 그녀를 빼앗아 그 추악한 욕심이나 만족시키려는 상대의 욕망을, 그녀를 향한 나의 순전한 사랑과 비교하기에 이르렀다.


도저히 모욕감을 참을 수 없던 나는 그제야 처음으로 감정을 담아 그녀에게 토로했다.


“너는 그거면 된 거야? 정말로? 정말 내 사랑이 그 남자의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여태까지 모를 거라 생각했어? 너는 나랑 만난다고 하면서 왜 그 남자랑 연락을 끊지 못하는 거야?!”

“...솔직히 너랑 나랑 잘될지 안될지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너만 믿겠어? 나도 내가 살아날 보험 정도는 들어놔야 하는 거 아닐까? 너에게 맡길 건 맡기더라도 나도 젊어서 즐길 건 즐기고 내 인생 걱정도 해야지.”

아. 그런 이유라면 됐다. 난 또 내가 그녀에게 뭔가를 못 해준 게 있어서 그런 건 줄 알았다. 혹시나 내가 뭔가 빠뜨리고 부족해서 이 일이 벌어진 줄 알았다. 내 한계가 그녀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녀는 처음부터 나를 ‘믿지’ 못했다. 최소한 함께 미래를 그려 나가자는 사랑과 신뢰 정도는 있는 줄 알았는데, 그녀는 나와 함께 미래를 준비해 나갈 최소한의 믿음조차도 가지지 않고 양쪽에 발을 걸친 채, 자신의 알량한 인정 욕구를 충족시켜줄 사람들을 통해, 자신이 인기가 많다는 그 가증스러운 우월감을 즐기고 있었다


그동안 그녀에게 싫은 소리를 한번 하지 않은 나였기에 이런 이야기도 편하게 하는 것일까? 그녀를 사랑했기에 오래 참았지만, 끝내 그녀는 나를 믿지 않았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더 해야 했을까? 그녀가 보기에 나는 인간적인 감정도 가지지 않은, 필요할 때마다 욕심을 이루어줄 편리한 무언가에 불과했을까?

나는 그저 사랑받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며 물질적인 필요만 채워줄 알라딘의 요술램프가 아니라, 그녀와 마음을 나누는 하나뿐인 애인이 되고자 했던 거다. 나는 내가 그녀의 필요를 채워주면 그녀가 나의 사랑을 깨닫고 나의 사람이 되어줄 거라 기대했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내 입장에서 생각해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나를 그 바람 상대보다도 존중하지 않으면서 내겐 남친으로서의 의무만 당연하게 요구했다. 나 역시 상처받을 수 있는 마음이라는 것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 하는 것 같았다.


차라리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기는 했다. 이제는 이 관계를 정리할 수 있으니까. 오히려 해야 할 일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를 뜨겁게 사랑했던 것이 무색하게, 그녀를 향한 마음이 무서운 속도로 식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녀를 향한 사랑의 기다림을 갑자기 그만둘 것이다. 그녀가 끝내 자신만을 위했던 것처럼.


자신의 복을 스스로 걷어차 버린 그녀를, 더러운 정욕을 채우기 위해 그녀를 꾀는 저 사내들 사이에 갑자기 내버려 둘 것이다. 그것이 그녀가 원하던 것이 아니던가? 아마 자신의 인정 욕구를 채우기 급급한 그녀이니 곧장 자신을 원하는 저 사람들에게로 가서 철저히 무너지게 되겠지.


결국은 그들은 끼리끼리 모여,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고 자신만을 위하는 사람끼리 하는 연애가 분명 지옥과도 같을 것은 안 봐도 비디오였다. 무엇을 해도, 얼마큼의 시간이 지나도 그녀는 결코 사랑받는 기분조차 느끼지 못한 채 공허함 가운데서 허덕이리라. 자존심이 강한 그녀이기에,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 그 관계에 더욱 목을 맬지도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남자들에게서 그녀의 가치는 점점 사라지고 더욱 심한 대우를 받게 되겠지.


연애는 결국 비슷한 수준의 사람끼리 한다고 그랬다. 지금 내 곁에 아무리 좋은 사람이 있어도 내가 걸맞은 사람이 아니라면 나는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없다. 나처럼 그녀를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고 난 자신할 수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할지, 아니면 끝까지 고집을 부릴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어딜 가도 나에게 받은 수준의 사랑을 받지는 못 하리라. 아주 비참하게 되고 나서야 그녀는 그제야 나를 다시 떠올리고 나의 근황을 찾아보겠지만, 나는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 사랑에 가장 행복해 질 수 있는 사람을 찾아서 사랑할 것이다.



keyword
이전 21화선택 나무 열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