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불편'하게 만들 이야기
MZ라는 단어가 세상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기성세대와의 구별을 기치로 내세운 새로운 세대. 그들은 위에서 내려오는 모든 사회적인 관습을 ‘꼰대’라는 방패로 막아내고 같은 세대끼리의 간섭은 ‘MBTI’라는 방패로 막아내죠.
그들은 윗사람들과 사회의 가르침에 대해선 ‘꼰대가 또 시작이네.’라고 반응하고, 친구들의 조언엔 ‘아, 나 사실 MBTI가 XXXX라서 어쩔 수 없어’라고 말하곤 합니다.
사실 저도 아직은 그 MZ라는 세대 구분에 들어가는 나이로서 이 같은 흐름을 일반적으로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긍정적인 면모가 없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죠.
사람을 인격으로 존중하는 것이 아닌, 사회의 부품으로 여기는 유물론적 사고는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사상입니다. 하나뿐인 존귀한 인생을 사회의 톱니바퀴로 여기며 마모시키려는 그런 사회의 풍조는 사라져야 마땅하죠. 사회를 위해서 인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사회가 존재하는 것. 이 우선순위는 분명해야 합니다.
또한 각 사람의 성격과 성품을 유형별로 분류한 MBTI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고 또 내가 이해하지 못하던 사람들도 이해하고 품을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요소가 많죠.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좋은 것을 좋게만 사용하진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문물과 사상이 등장했을 때, 자연스레 새로운 것이 우리에게 끼칠 유익보단 부작용을 먼저 생각하는 걸지도요.
저는 두괄식의 글보단, 사람의 사고를 따라가며 서술하는 방식을 좋아하지만, 이번에는 결론을 분명히 말해놓고 가고 싶네요. 저는 이번 글에서 세대 간의 갈등을 떠나서 겸손의 본질에 대해서 다루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겸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누군가는 자신을 낮추는 마음이라고 할지도 모르겠고, 또 누군가는 순종적인 마음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 사전적인 의미는 그럴지 모르겠지만, 실상은 조금 더 복잡하죠.
아무리 자신을 깎아내리고 남을 치켜세워봤자.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품고 있으면 과연 그게 겸손일까요? 회사에서 상사의 커피에 침을 뱉으면서 “아유 다 팀장님 덕분이죠.”라고 입에 발린 소리를 해봤자 과연 겸손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또 금수저가 온갖 명품으로 치장하고 나와서는 “저는 부자가 아닙니다.”라고 해봤자 사람들은 야유를 보낼 뿐이겠죠.
겸손은 단순히 무조건적인 자기 부정이 아닙니다. 진짜 겸손이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신의 실체에 대한 솔직한 인정이죠.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이 성공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건 제가 잘나서 된 것이 아닙니다. 제 처지에서 저와 같은 경험을 한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분명 더 나은 성과를 내었을 것입니다.”
성공을 인정한다고 교만한 것도 아니고 성공을 부정한다고 겸손한 것도 아닙니다. 그 가운데서 흔들리지 않고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 그것이 겸손입니다.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들은 늘 열정이 넘칩니다.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알기에, 늘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또 어떤 실패가 와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실체를 정확히 알기에,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무엇보다 어떤 성공이 찾아와도 초심을 잃지 않습니다. 인생이란 자신이 노력한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남들보다 낫기 때문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성공이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또 이번 실패가 얼마나 마땅한 것인지 인정하기에, 그들은 성공과 실패 가운데서 늘 배웁니다.
그들에게는 주위의 모두가 스승입니다. 자신의 실체를 알면 알수록 자기 부족을 감출 수 없게 되고 그렇기에 그들은 늘 목마릅니다. 주위의 어린아이들부터, 나이가 든 노인들에게까지, 그들 모두가 자신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깊은 깨달음 속에서, 타인의 성공을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축하하고 그것에서 배우려고 합니다.
자신보다 나은 사람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나보다 나은 사람들이 먼저 성공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겸손한 사람들에게는 질투가 없습니다. 시기와 미움도 적습니다. 심지어는 누군가가 부당한 말을 해도 정말 내가 그러지는 않은가 하고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상대를 비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진심으로 동정합니다. ‘아 저 사람은 타인을 공격해서 자신을 유지해야만 할 정도로 여유가 없는 사람이구나.’
시기와 질투가 마음에 없으니 그들은 늘 여유가 넘칩니다. 그렇기에 남들이 거짓과 자기변호로 속이려 들어도 그것을 곧장 알아차리죠. 이미 그들은 그런 것에서부터 벗어난 사람들입니다. 극복한 사람들이 보기에 남들의 티가 얼마나 더 잘 보이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사랑하며 긍휼히 여깁니다. ‘나도 저들보다 나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저 먼저 깨달았을 뿐이다.’라고 생각하죠. 그리고 입을 다물고 잠잠히 그들을 선대합니다. 정답 제시가 늘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고 아는 것을 자랑하기 보단, 무지를 자랑하길 기뻐합니다.
겸손한 자들에게 훈계와 책망, 실패와 낙심은 달콤한 꿀과도 같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실체를 더욱 분명하게 깨달아 어떻게 해서든 변화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사람을 연단 하는 교훈들과 실패의 경험들은 잠시 그들을 괴롭게 할 순 있지만, 분명 그들을 더욱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켜줄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불편한 이야기들을 찾아다닙니다.
그들은 늘 한결같은 목마름을 가지고 교훈과 실패를 묵상하며 매일 같이 중얼거립니다. ‘내가 어찌해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가만히 앉아서 시간을 버리는 일을 견디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아무리 괴로워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과 늘 내면에서 싸움을 벌입니다. 그들은 상황을 바꾸긴 보단, 자기 내면을 점검하기를 기뻐합니다.
겸손에 대한 설명을 쭉 드렸으니, 이젠 MZ세대 이야기로 돌아오기를 원합니다. ‘꼰대’와 ‘MBTI’라는 방패로 무장한 그들, 사실 우리에게 방패가 필요하다는 것 자체가 겸손하지 못하다는 방증입니다. 겸손한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을 찌를 칼이지 방패가 아니기 때문이죠.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방패를 좋아하지, 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조금이라도 싫은 소리를 하면 가시를 세우고 자신을 변호하기 바쁩니다. 누가 무슨 말이라도 할법하면 신경을 곤두세우곤 ‘저게 나한테 하는 말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바쁩니다.
‘불편함’에 대해서 극단적으로 예민하게 반응하며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여깁니다.
아 겸손이라는 미덕이 얼마나 사라져 가는 세대입니까? 그저 먹고 마시는데 바빠서, 욕심을 조금이라도 이루지 못하면 분노하길 서두르고 ‘나는 원래 이런 성향의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사람들!!
주위 모두가 자신 때문에 참아주고 있고 자신에게 맞춰주느라 불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데, 본인만 그것을 모릅니다. 절대로 자기 자신을 내려놓지를 못하니, 마치 자신이 훌륭한 중재자와 관리자라도 된 것처럼 남들에게 더욱 가혹한 희생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맞게 돌아가지 않으면 분개합니다. 누가 봐도 이기적인 사람인데 자신만 그것을 모릅니다. 그래 놓고 말합니다. ‘어휴 나 정도 되니까. 이 사람들이랑 함께 다녀주는 거지.’
제가 여기까지 말씀드렸을 때,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의 마음을 살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이 이야기를 듣고 ‘아 맞지, 맞아 요즘 세대들은 정말 교만해’라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맞아 요즘 세대들은 도통 순종적이지 않지.’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아까 드린 말씀에 정답이 있습니다. 겸손은 남을 판단하기보단 자신을 살피기 좋아합니다. 누군가의 티가 보이더라도 그를 정죄하며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마음이 먼저 올라옵니다.
만약 이 이야기를 듣고도 ‘나도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으셨다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겸손에 대한 문제는 분명, MZ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 세대, 전 인류의 문제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하는 이기심을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겸손해질 수 없기 때문이죠. 겸손은 자기 실체를 아는 힘. 그렇기에 자신이 보고 느끼는 대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겸손해질 수 없습니다. 인류에겐 스스로를 볼 수 있는 빛이 없기 때문이죠. 햇살이 그러하듯, 빛은 외부에서 오는 것입니다.
겸손을 위해선 나를 비춰볼 수 있는 빛과 거울이 필요합니다. 남들의 이야기로부터 배우고 환경과 상황 속에서 깎이고 부서져야 합니다. 가난이 겸손한 것은 아니지만, 가난한 사람 중에서 겸손한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인 이유입니다. 상황적인 어려움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비춰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가난해도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고집을 꺾지 못합니다.
이제 한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주위에 겸손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습니까? 아니, 당신은 겸손한 사람입니까? 이 글을 읽는 동안, 당신에 마음속에선 어떤 감정이 올라오셨습니까? 불편함입니까? 아니면 달콤함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