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지혜.

사람 이름 지혜 아닙니다.

by 마타

여러분은 지혜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지식이 공부와 경험을 통해서 얻는 단편적인 정보라고 한다면, 지혜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내리는 모든 판단의 기준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이해하기 쉽게 사전적인 의미를 그대로 가져온다면, ‘이치를 빨리 깨우치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이라는데. 아마 학습이나 분석처럼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보다는 사고력에 해당하는 단어인 듯싶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혜’라는 단어는 단순히 영재나 학력이 좋은 사람들이 아니라 조금은 다른 부류의 사람들에게 쓰이는 것 같네요. 오랜 세월을 뚜렷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온 백발이 성성한 스승이라던가, 마치 앞날을 내다보는 것처럼 현 상황에 대한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책사, 적장의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작전을 계획하여 늘 승리를 가져오는 뛰어난 장군이라던가 말이죠.

많은 사람이 그런 사람들을 동경하고 존경하며 그들의 지혜의 비결을 궁금해합니다. 그리곤 자신들도 그런 지혜를 얻기를 꿈꾸죠. 그리고 그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지혜를 찾기 위해 분투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경험해 보면,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 하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을 여행해 보기도 하며, 지식을 지혜로 착각하여 여러 분야의 지식을 얻기 위해 시간을 쪼갭니다. 누군가는 무모한 도전을 통해 지혜를 얻어보려 하고, 어떤 누군가는 지혜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당장 피어오르는 욕망을 해결하는데 마음을 쏟죠.


그런데 우리가 조금만 낮아진 마음으로 주위를 공정하게 둘러보면, 지혜를 얻은 사람들의 기준이 생각보다 모호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많은 경험을 했다고 해서 꼭 지혜로운 것은 아니고, 많은 지식 때문에 교만해져서 오히려 벽창호와 같아진 사람도 많습니다. 무모한 도전을 했다간 재기 불능의 타격을 입는 사람들이 대다수고 눈앞의 욕심을 쫓는 데 급급한 사람들은 오히려 지혜를 보고도 꽉 막히고 어리석다며 비웃죠.

그러나 비싼 돈을 들여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 중에도 지혜로운 사람은 있고, 어린 시절부터 생계 전선에 뛰어들어 학업을 다 마치지 못한 사람 중에도 지혜로운 사람은 있습니다.


그렇다고 부자나 학자라고 해서 모두가 교만하고 꽉 막힌 것은 아니어서, 그들 중에도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남의 말을 경청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곳곳에 존재합니다.


얼핏 보기에 그들 간의 공통분모가 없는 것 같은데, 지혜란 도대체 무엇이고 어떻게 얻는 것일까요? 지혜란 그저 우연히 스스로 깨치는 수밖에 없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 지혜를 얻은 사람들의 공통분모는 있습니다. 단지, 물질, 스팩 만능주의적인 지금 세상에서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을 뿐이죠.


왜냐하면 인생이 살아가며 얻을 수 있는 가장 귀한 지혜. 그 근간은 바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것을 깨닫는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인본주의적 가치관이 대세가 된 작금의 세상에선 이 말이 굉장히 거부감이 들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이것이 패배주의자들의 핑계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해 드리기를 원합니다.

수명이라는 절대적인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한정된 시간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한정된 시간을 쪼개어서 목적을 이루려고 분투하다 보니, 우리의 눈은 자연스레 어떻게 하면, 이 한정된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계획을 세우게 되죠.


그런데 한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혹시10년 뒤에 우리가 정확히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있는 분이 계십니까? 우리의 지금 모습을 10년 전에 미리 상상하고 있던 분이 계십니까? 물론 저는 세상의 누군가는 10년 단위로 계획을 세워놓은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동안 아무리 자신의 계획대로 살아왔다고 해도 앞으로도 그럴 수 있으리라고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상황이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몸부림칠 뿐이죠.


그러나 불의의 사고를 경험한 그 누구도 자신이 그런 일을 겪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하는 것처럼, 사고 없는 인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내일의 일도 모릅니다. 우리가 오늘 아무리 애써봤자, 내일의 일은 내게 속한 것이 아니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인생이라는 선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현재라는 점을 어떻게 찍을지 선택할 수 있을 뿐입니다.


또 아무리 오늘이라는 점을 잘 찍으려 애써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상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누구는 너무나 쉽게 돌파한 그 벽을 나는 무슨 수를 써도 넘을 수 없을 때도 있고, 내가 백날 고민을 해봤자 단순하게 결정한 다른 사람보다 결과가 나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고민해 봤자, 머리카락 한 올조차 검거나 희게 만들 순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어려서부터 경험합니다. 누구는 놀면서 공부해도 성적이 잘 나오고 누구는 독서실에 주야장천 앉아 있어도 성적이 오르지 않습니다. 누구는 첫 사업에서 승승장구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온갖 강연까지 다니며 명예를 얻곤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걸 그대로 따라 한 수많은 사람들을 구렁텅이로 밀어 넣기도 하죠.


답이 안 나오는 인생들이지만, 그런데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어떻게 해야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내가 만족을 얻고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어떤 계획을 더 세워야 할까?’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이런 고민을 하는 것조차 사치일 정도로 거대한 상황의 벽에 짓눌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극심한 가난 속에서 당장 다음 끼니조차 계획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누군가는 너무나 큰 실패에 꿈도 희망도 모두 무너져버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누구는 새롭게 쏟아지는 지식을 짊어지다가,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정도로 지쳐버린 사람들도 있고 누군가는 부와 명예를 모두 얻었지만, 주위의 배신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있습니다.


극심한 추위와 더위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듯이 극심한 환경의 압박은 우리의 영혼의 근간을 파괴합니다. 우리의 무력함을 뼈저리게 느끼는 가운데, 그동안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던 가치관이 뿌리부터 무너지는 것을 느끼죠.


자신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배우고, 자기 자신을 부정하기 시작합니다. 이미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발을 내디딜 때마다 새롭게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며, 자신이 마치 창틀에서 말라비틀어진 벌레처럼 조그마한 압박에도 와그작하고 부서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죠.


많은 사람들이 이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중도에 자리를 떠납니다. 사랑으로 맺은 영원한 언약을 깨고 이혼을 선택하기도 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함으로 그나마 남겨져 있던 모든 선택의 기회들을 두고 도망가기도 합니다. 조금의 스트레스도 견디지 못해 어렵게 들어간 회사를 떠나 이직을 결정하기도 하고 자신의 꿈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그 자리를 견뎌낸 사람들은 끝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며, 자신의 노력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지혜를 얻습니다. 천금을 주어도 얻을 수 없는 지혜이자, 부와 지위, 지식과는 관계없이 누구나 얻을 수 있는 평등한 지혜입니다.


이 지혜를 얻은 사람들은 세상을 다르게 보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쫓는 유행과 부와 명성, 심지어는 자신이 이룬 성공마저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늘 초심을 유지합니다. 자신이 처음 무력하던 때를 잊지 않고 욕심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늘 자신을 절제하는 법을 배우죠.


많은 계획은 자신을 피곤하게 할 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만족하는 법을 배웁니다. 이전에는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았지만, 이젠 작은 디저트 한 조각에도 크게 행복해합니다.

그리고 자신보다도 열악한 상황에 처한 자들을 함부로 멸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돕기 원합니다. 저들이 어떤 실책이 있어서 저런 상황에 처한 것이 아니라,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자신도 언제든지 다시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생각으로 꽉 차 있는 사람은 지혜가 아니라 자신의 힘과 경험을 더 고집하기에 절대로 이런 지혜를 얻지 못합니다. 또 자신이 꺾이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연단 할 수 있는 기회를 두려움에 다 피해버리니, 절대로 지혜를 얻을 수 없죠.


일찍이 성공했다고 말하는 젊은 사업가들이나 평생을 평탄하게 자라온 금수저들을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지만, 저는 솔직히 그들이 전혀 부럽지 않습니다. 장기하의 노래 때문에 부러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섣부른 성공을 경험하고 부족한 것 없이 자란 사람이 과연 어떻게 지혜를 얻을 수 있을지 의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도대체 무엇으로 그 고집스러운 자아를 꺾을 수 있겠습니까? 고집이 가득한 사람들에게는 성공이 복이 아니라 독입니다. 한번 자신의 고집대로 해서 성공을 얻으면 그 누구의 조언도 그 사람을 바꾸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고집이 주위를 괴롭게 한다는 것은 평생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주위 사람들을 판단하며 가르치려 들겠죠. 심지어는 훗날, 보통이라면 충분한 지혜를 얻을 만한 가혹한 실패를 경험한다고 해도, 앞서서 성공했던 그 달콤한 기억이 잊히지 않아, 그들은 고난 속에서도 절대로 꺾이지 않을 겁니다.


아마 지혜를 얻어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경험을 한 사람들은 누구나 그들을 동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똑같은 말을 할 것입니다. 지혜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지만, 천금을 주어도 얻을 수 없는 것. 그리고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눈앞의 것들이 너무나 커서 지혜가 뭔지 잘 모르겠다고 하셔도 괜찮습니다. 불공평한 세상이지만, 햇살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내리는 것처럼 지혜도 그러니까요. 지혜는 고집을 부리고 욕심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감추어져 있지만, 낮아진 마음으로 구하는 사람은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저 자신이 꺾이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때로는 그런 시기가 자신에게 필요함을 인정합시다. 그리고 두려움에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겸허히 시련의 터널을 통과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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