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밟힌 목련과 같은
나는 누구일까요?
무엇을 해도 만족할 수 없는 인생 속 공허함에 몸부림치는 나는 누구일까요?
손에 닿을 듯 닿지 않는 행복을 추구하며 쉬지 않고 달려가는 나는 누구일까요?
의지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해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된 나는 누구일까요?
잇따른 실패로 나조차도 나를 믿지 못하게 된 나는 누구일까요?
살아 있는 의미가 없는데 살아 있기 때문에 살아가야 하는 나는 누구일까요?
나는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서 숨을 쉬며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요? 나의 존재의의는 무엇일까요? 내가 애써서 이룬 모든 것들은 마치 먼지와도 같아, 인생의 풍파 속에 흩어져 버릴 텐데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걸까요?
하다못해 주인의 즐거움을 위해 살아가는 어항 속 물고기나 고양이, 강아지들도 이런 공허함을 느끼지는 않는 것 같은데,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마음속 공허함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다들 같은 공허함에 몸부림칠 뿐, 답을 알고 있는 자는 없고, 인터넷을 들여다봐도 ‘행복이 부족한 것은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야기나 지껄이고 있네요.
돈이 부족해서 행복하지 않은 거라면, 부자들은 자살하지 않았을 거예요. 사회의 유명인들이 마약과 음란에 빠져서 방황하다 한순간에 몰락하는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돈이 그들의 마음에 진정한 평안을 가져다주었다면, 그들은 돈 말고 다른 것에 눈을 돌리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그러나 그들은 그 돈을 이용해 다른 것에 눈을 돌렸다가 몰락합니다. 그 많던 재산이 한순간에 어디로 갔는지, 몇 년 만에 이전의 처지보다 더욱 몰락하여 대중들의 멸시를 받습니다.
대중들은 그런 그들을 보며 의아해합니다. “저 많은 재산이 아깝게 왜 스스로 삶을 정리하는 거지?” 대중들은 많은 재물이 그들에게 행복이 아니라 불행을 가져다주었으리라는 것은 상상조차하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삶을 정리했던 그들의 길을 동경하며 계속해서 재물을 추구합니다.
물론 인생이 고작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우리의 본성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우리 자체로 온전히 인정 받아야만 만족하는 성질을 지녔으니까요. 우리는 늘 우리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람이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그것을 얻지 못하기에 신음합니다.
이 공허함은 인류 역사의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겪었던 문제이지만, 이상하리라 만치 그 누구도 이 문제를 심도 있게 파고들려 하진 않네요.
오히려 이 문제를 진지하게 얘기하려 하면 괜한 오해를 사기 십상이죠. ‘뭐야 그런 걸 누가 관심을 가져. 원래 다 그런 거야. 너는 너 앞가림이나 잘해. 당장 이뤄놓은 것도 없으면서 무슨 인생을 논하려고 해? 너무 극단적으로 가면 뭐든지 좋지 않아!’
우리는 행복의 조건을 따집니다. 무슨 조건을 충족해야만 행복할 수 있을 것 같고 인정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죠. 연인을 만날 때도 내가 상대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가 아니라, 상대가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따지고 직장도 친구도, 삶도 모두 조건을 따집니다.
앞날이 창창한 고등학생이 시험을 망쳤다고 스스로 삶을 정리합니다. 수능만 끝나면 교실은 울음바다가 됩니다. 남들은 쉽게 하는 자격증 시험에서 떨어지면 무능함에 몸을 떨고 취업에 실패하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연인과 다투면 그 사람을 사랑해서 못 놓는 것이 아니라 혼자 남을 자신이 두려워서 놓지 못하죠.
시험이라는 조건, 학업과 스팩이라는 조건, 직업과 연인이라는 조건. 이런 것들이 사라지면 우리는 마치 인생이 실패한 것처럼 좌절하고 주위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벌벌 떱니다.
대부분 부모님조차도 처음에는 ‘건강하게만 자라라’라고 하지만, 30년째 건강하기만 한 자녀를 보면 한숨을 내쉬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서 주고받은 모든 인간관계는 조건을 따지기에, 우리도 우리 삶에 대해, 그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며 조건을 따지는 것 같습니다. 성취를 이루지 못하면 자책감에 고개를 들지 못하지만, 작은 성공이라도 이룰 때면, 마치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마냥, 쉽게 교만해져서 조건을 채우지 못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깔보죠.
우리는 조건이 충족되지 못하면 부서져 버리고 조건이 충족되면 남을 찌르는 흉기가 됩니다. 마음을 터놓으면 터놓을수록 주위의 사람들이 사라져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기적인 마음속에선 끊임없이 날카롭고 추악한 욕망이 피어오르는데, 이런 인생들을 누가 믿고 품을 수 있겠습니까? 솔직히 우리조차도 우리를 사랑하지 못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기준으로 우리의 조건을 보면, 우리는 도저히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무엇을 해도 만족은 얻지 못하는 주제에 마음속엔 숭고한 감정이라곤 전혀 없죠. 그러니 빼앗고 깎아내리고 남들을 짓밟는 것에 몰두합니다.
짓밟힌 목련 꽃잎처럼 아름답게 피는 것은 아주 잠깐이고 곧장 색이 바래져 땅으로 떨어지는 인생들, 우리가 희망을 두어야 한다면, 그것은 땅에 짓밟힌 목련 꽃잎조차 아름답다 말할 수 있는, ‘조건을 보지 않는 사랑’을 바래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랑이 과연 있을까요? 부모님의 사랑도 조건이 있는데, 과연 우리가 조건 없는 사랑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런 우리를 품으려면 누군가는 부서져야 합니다. 누군가는 상처로 피딱지가 진, 굳어진 마음을 파고들어서 직접 땅의 가시들을 제거하고 땀과 피를 흘리며 품어주어야 합니다. 가시 돋친 말과 상처 주는 채찍, 대못을 박는 미움을 다 견디고 우리의 존재를 끝까지 긍정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시가 무뎌질 때까지, 다 아물지 못한 흉터 위로 새살이 돋을 때까지, 우리의 상처와 아픔을 매일 긍정해 주고 사랑해 주고 우리의 심령의 깊은 곳에 있는 곪은 상처까지 다 짜내 주어야 합니다.
자신을 주장하지 않고 수많은 배신과 모멸, 무시와 오해, 원망을 들어가면서 우리를 그저 사랑해 주어야, 사랑의 기갈에서 한숨을 돌린 인류는, 그제야 우리를 사랑해 준 상대를 바라볼 것입니다. 우리가 찌른 그 상대를 바라볼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누가 그런 일을 할 수가 있을까요? 우리 곁에 상처에 찌든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나타나는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습니까? 애정결핍, 대인기피, 각종 중독과 사회성 결여, 우울증과 공황.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 말 한번 거는 것조차 어려워하지 않습니까?
도대체 누가 이런 우리를 조건 없이 긍정해 줄 수 있단 말입니까?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주고 용납해 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우리가 용납하지 못하니, 용납받으리라는 기대조차 하지 못합니다.
혹시 그런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습니까? 사람에겐 어리석게 들리는 그 사랑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아마 그런 사랑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저는 제가 그동안 쫓았던 신기루들을 모두 내려놓을 거예요. 나를 향한 그 신실한 사랑에 기쁨으로 응답할 겁니다. 그토록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라면 진정으로 믿을 수 있을 테니까요. 신뢰할 수 있을 테니까요. 무엇보다 난, 그에게 단 하나뿐인 사람이 될 테니까요.
이 이야기를 듣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