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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시옷 Feb 28. 2024

개는 쥐와 블루스를 추기로 결심했다 - 2

새벽과 병원에서


본디 초등학생에게 할머니 손에 이끌려 가는 새벽 미사란 더없이 끔찍한 법이다. 성당에 일찍이 자리 잡은 노인네들 냄새는 지독하고, 어떤 해방감을 만끽하는 듯한 아줌마들의 샴푸 냄새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이윽고 엉거주춤 모습을 드러내는 신부님이 늘 풍기는 고약한 술 냄새는 그야말로 수상한 것이, 어린 나의 씩씩함을 사정없이 도려내었으나, 어른들은 그저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각자의 천국을 설계하고 건축하기에 바빠 정신을 못 차릴 뿐이었다. 졸렸다. 무섭다.      


중얼중얼중얼

훌쩍훌쩍훌쩍

고멘나사이요     


할머니는 언제나 여지없이 눈물을 보이셨다. 다만 그 눈물이란 여간 귀찮고 지루한 게 아니어서 몸을 부들부들 떨며 기도하는 할머니를 빤히 쳐다보기만 하면 금방 졸음이 쏟아지곤 했고, 이는 성당에서 내가 유일하게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순간이었다. 성당 의자에 누워 눈을 끔벅이면 하얀 천장에 십자가 형상이 흐릿한 원으로 보인다. 그러면 나는 아주 천천히 잠드는 주문을 외는 것이다. 기이한 새벽이 끝나길 기도하며.     


신부님과 어제 술을 마셨던 아줌마는 누구였을까?

할머니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엄마 보고 싶다.

중얼중얼중얼     


미사를 위해 신이 규정한 냄새나는 새벽은 가짜다. 아니 애당초에 아침 6시를 새벽이라 부르는 자체가 웃기고 멍청한 일이지. 새벽의 진실한 정체란 혹여나 잠에서 깨더라도 빨리 다시 잠들지 않으면 할머니에게 혼나는 시간이자, 신부님이 신도 중 누군가와 술을 마시며 시큰하게 엉겨 붙기를 시도하는 은밀한 배경이었다. 사랑해서는 안 되었기에 어린 내가 상상한 천국의 모습은 언제나 새벽이었다. 닿을 수 없기에 동경하던 어딘가.       


나이가 마흔이 다 되어가서야; 새치가 하나둘 자라나고, 동그란 얼굴에 어울리는 동그란 체형에, 얼굴 곳곳에 곰보 자국 같은 큰 점들이 이제는 익숙하게 받아들여지는 아저씨가 돼서야 나는 비로소 새벽을 소유하게 되었고, 맹렬히 허무해지고 있다. 어느 순간 나와 천국과 새벽 사이에는 어떠한 관계성도 성립하지 않는 중이었다. 어쩌다?      


<곤.E>     


‘어떻게’보다 ‘어쩌다’가 더 날카로이 읽히는 순간이 있지

내가 방금 잠에서 깨기 전까지 꿨던 꿈은

너희 엄마의 시점으로

정글에 놓인 우물 속으로

빠져들어 가 보는 그런 내용

          쫄

          쫄

          쫄            

          쫄 물소리는 경쾌

어떻게 이 꿈을 너에게 들려줄까?

보다는

어쩌다 이딴 꿈을 꾸게 되었을까?

하는 것

그럴 수 있는 그런 아들일 것   


지금의 새벽에 완성한 이 가사를 들려주기에 곤이는 너무나도 보통의 5살처럼 되어 있다. 잘 자는구나. 동그랗지도, 네모나지도 않은 곤이의 얼굴은 할머니를 쏙 빼닮았다. 특히 미간을 찡그리며 새끼 진돗개 울음 같은 코골이를 할 때에는 영락이 없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니. 무르팍에 상처가 또 나버렸구나. 아까는 보이지도 않던데. 아들은 새벽 미사를 좋아할까? 아빠는 네 나이 때부터 성당을 나갔다. 알고 있니?     


“대답 좀 해줄래?”

벌떡     


순간적으로 곤이는 귀가 개보다 밝은 특별한 아이 거나, 지극한 효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곤이는 내 속삭임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쪽으로 기어갔다. 달빛이 찬연하게 곤이의 뒷모습을 비춘다. 눈을 감은 채 곤이는 한쪽 다리를 들었다.     


 쫄

   쫄

     쫄

       쫄     


오줌 소리가 경쾌하다.      


“곤이야?”

“멍!”     


곤이는 개가 되었다.     



    

“가만있어!”

“컹!”     


날이 밝았고, 곤이는 개처럼 두 손을 땅에 대고 사족보행을 고수한다. 병원 가는 길에도, 병원에서도 곤이는 사족보행을 하며 날뛰어댔다. 알다시피 베어워킹이란 성인들에게도 쉬운 운동이 아니다. 진지하게 ‘곤이를 체대를 보내야 하나’ 고민하던 와중에 검사를 끝낸 의사가 굳은 얼굴로 나타났다. 왠지 모를 익숙한 표정이었다.


“아버님 무슨 일 하세요?”

“래퍼요.”

“아이와는 대화 많이 하시고요?”

“많이의 기준이 뭘까요?”

“사실 개를 따라 하는 거야 멘탈적인 문제니 까요. 다섯 살 다운 행동이기도 하고. 요즘은 심리상담이 잘 되어있기도 합니다. 다만 곤이의 눈이 조금 이상해서 정밀검사를 해봤는데요. 일종의 색약이랄까요? 희귀병인데, 지금 곤이는 색깔이 흑, 백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개같이요?”

“개처럼요.”     


의사는 헥헥 대는 곤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곤이의 무르팍과 더러워진 두 손을 흘기고는 처방을 이어나갔다.


“정밀검사보다 더 정밀한 정밀정밀 검사를 받으셔야 합니다.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시력을 잃게 될 수도 있어요.”

“수술비는 어느 정도인가요?”     


의사는 아까보다도 더욱 굳은 얼굴로 엉거주춤 펜을 들어 종이에 액수를 정자로 휘갈겼다. 병원이 아니라 은행을 먼저 갔어야 했다. 아니, 소용없었겠다. 쥐똥처럼 많고, 더러운 금액이었다. 연신 짖어대는 곤이 덕에 진이 빠진 듯한 의사는 간호사를 불러 우리를 내보내려다 나를 불러 세웠다.     


“아이에게 신경을 잘 써주셔야 합니다. 병이 꽤 진행된 것 같은데요. 모르셨나요?”     


아 생각났다.     


“혹시 어제 과음하셨나요? 제가 어릴 때 다녔던 성당 신부님이 딱 선생님같이 피곤함에 절은 몰골이었거든요. 누구랑 마셨어요? 간호사? 환자?”

“풋살 했습니다. 팀메이트들이 워낙 열심히 하는 양반들이시라.”     


멍멍!     


곤이가 유치원에  시간이 되었고, 나는 돈을 되찾아야만 하는 상황에 혼자 놓였나 보다. 이런 아침을 맞이하기에 나는 아직도 너무나 미숙한 소년이었다. 지금 나는 새벽이 그립다. 그러니까, 나의 좌푯값이 실시간으로 수정되고 있었다. 마치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되돌아가서 땅바닥에 심긴 기분이었다. 목줄에 묶여  자리에 고정된 채로 마당에 있는 쥐를 쫓으려 하는 진돗개가  것처럼.     


“찍찍찍찍!”     


의사의 처방을 떠올려봤지만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쥐새끼같이 옹졸한 마음을 가진 자여서 그의 목소리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탓일 게 분명하다. 그러니 곤이야, 유치원에서도 절대 친구들을 물면 안 돼. 다른 이들의 세계를 침범하면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한단다. 민폐는 나쁜 거야.     


“멍멍!”     


그래 네가 이겼다.




새벽에 곤이는 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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