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기 Oct 03. 2024

색채가 없는 이모 씨와 그가 달리기를 시작한 해

새벽 달리기에서 인생을 배운다.

 해도 해도 너무했던 여름 무더위가 슬그머니 뒷걸음질 치고 그토록 학수고대하던 가을의 초입에 들어선 요즘, 여느 때처럼 반팔과 반바지 차림의 가벼운 행색으로 새벽 러닝을 나갔다. 훈훈한 집안 공기와 달리 가을밤기운이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의 서늘한 공기는 피부 곳곳을 으슥하 찔러 다. 가벼운 바람막이 점퍼 하나쯤 걸치고 나올 걸 하는 후회가 들었지만, 어차피 달리다 보면 몸이 금방 데워질 거라 뜀박질의 속도를 차츰 끌어올리며 심장 박동의 BPM을 높여 나갔다. 내부의 열기가 천천히 올라오면서 외부의 냉기는 한풀 꺾인다.


 새벽 러닝을 내 삶의 굳은살로 박이기 위해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규칙적으로 달리고 있다. 얼마나 더 달려야 새벽 러닝이 굳은살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지는 모르겠지만, 무릎이 성하고 힘이 닿는 만큼은 계속 달릴 예정이다. 새벽 달리기를 시작한 첫날엔 400미터 트랙을 3바퀴만 돌고도 숨이 끊어질 것 같아 당장이라도 119를 부르고 싶었지만, 꾸준히 달리다 보니 이젠 400미터 트랙을 10바퀴 이상 돌아도 자신감과 성취감의 땀방울을 흘리며 두발 멀쩡히 귀가한다. 달리기를 마치고 집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면 땀으로 흥건히 젖은 몸에 시원한 새벽바람이 닿아 샤워기의 물줄기처럼 온몸을 구석구석 씻겨주며 그동안 쌓인 후덥지근한 스트레스를 덜어간다.  


 달리기는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만나는 시간이다.


'힘들면 그만 뛰어도 돼. 적당히 하라고.'

'언제까지 힘들다고 포기만 할 거야? 더 뛸 수 있어.'


 내 안에 터줏대감처럼 자리한 나약함과 잠재된 가능성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한다. 고작 4, 5킬로미터 남짓 뛰면서 나약함이니 가능성이니 운운하는 게 우습다며 반문할 수 있겠지만 실제 뛰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달리기를 막 시작한 40대 중반의 저질체력 성인에겐 4킬로미터를 쭉 달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군대에서의 매일 아침 알통구보도 2킬로미터였다) 4킬로미터가 곧 6킬로미터가 되고 나아가 10킬로미터가 되리라는 걸 나는 철석같이 믿고 있다.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악착같이 이를 악물고 오히려 속도를 높여 본다. 매일 일정하게 2킬로미터만 뛰는 사람은 결국 2킬로미터가 자신의 한계점으로 자리 잡을 것이고, 하루에 100미터 씩이라도 거리를 늘려나가다 보면 언젠간 10킬로미터도 가볍게 뛸 수 있는 내력이 생기는 법이다. 


 오랜 시간 달리다 보면 거미줄처럼 날 옭아매고 있던 여러 상념이 겨울바람이 걷어가는 눈처럼 흩날리며 점차 나 자신에 몰입되는 걸 경험할 수 있다. 육체는 분명 기력이 없다는 신호를 보내오지만 의지와 끈기의 끈이 내 육체를 결박하여 반려견처럼 억지로 끌고 가는 기분이랄까. 그 타이밍이 오면 오히려 처음 달릴 때보다 스피드도 더 붙고 몸이 가벼워진 기분이다. 거친 호흡을 쉬며 앞만 보고 쭉쭉 나아가면 호흡은 가파오지만 정신의 숨결은 오히려 차분해진다. 육체의 힘보다 정신이 힘이 대단하다는 걸 새삼 느끼는 순간이다.


 매일 새벽 나 자신과 싸워가며 러닝을 시작한 진짜 이유는 시간을 함부로 흘려보냈던, 게을렀던 지난 과거와의 작별을 위해서다. 난 그동안 현실이란 강(江)의 물리적인 흐름에 내 몸을 띄운 채 정처 없이 부유하기만 했다. 때론 급류에 휩쓸리기도 하고, 때론 암초에 걸리기도 하고, 때론 평온한 물결을 맞으며 내 인생은 그저 그렇게 강물의 파동을 따라 흘러갈 뿐이었다. 목적지도 없이 이리저리 휩쓸리기만 했다. 이젠 그런 과거에 이별을 통보했다. 달리기를 기점으로 앞으로 내 앞에 주어진 인생 과제들을 스스로 해결하고 극복해 낼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싶었다. 달리기는 사소한 시작점에 불과할 뿐이다. 일종의 프롤로그이자 출정식인 셈이다.


'살아짐'이 아니라 '살아감'을 선택하기로 했다.

'둥둥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헤엄쳐 갈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싶었다.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겨울 아침, 따뜻한 이불속에 파묻혀만 있는가,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어 새로운 아침의 신선한 공기를 폐 속 깊숙이 들여보내고 있는가.


 나른하고 게으른 햇빛에 오래 노출되어 있었던 탓에 지금의 내 삶의 색채는 빛이 많이 바랜 상태이다. 무색무취한 삶을 살아왔던 탓에 나는 색깔과 향기가 없다. 지금부터 나에게 새로운 색감의 빛을 덧칠할 때다. 팔레트에 용기와 도전이라는 물감을 마구 쏟아붓는다. 군중 속에 섞이어 색깔도 없이, 소리도 없이 묻혀가는 삶은 이제 종식되었다. 매일 나의 독자적인 인생을 꿈꾸며 달린다. 현실의 옹벽 뒤에 비겁하게 숨어 있지 않고, 수풀과 가시덤불이 무성한 현실의 언덕을 당당하게 넘어서 바라며 내 마음속 데카르트에게 약지손가락을 내민다.


'나를 완성시키는 생각을 지지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방안 공기가 탁해 숨이 막힌다면 이불속에만 숨어 있지 말고 창문을 활짝 열어 보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