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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기 Jun 19. 2024

<환락의 거리에서> 3화

선주를 떠올리다.

그곳은 휘황찬란한 환락의 거리였다. 빨간색 조명 아래 짧은 스커트와 몸에 착 달라붙은 상의를 걸친 여성들이 가슴골을 훤하게 드러낸 채 지나가는 행인들을 요염하게 유혹하고 있었다. 술에 취한 행인들은 각자의 취향에 맞는 홍등집을 발견하곤 속속 입장중이었다. 여성들은 우리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보이는데 우리 무리를 향해 계속 군인 오빠들이라고 불렀다. 왜 우리가 님의 오빠냐며 주민등록증이라도 까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우린 경찰이 아닌 군인 신분이었다. 박 병장은 이곳이 처음이 아닌 듯했다. 제 집 안방처럼 익숙한 표정과 능숙한 발걸음으로 우릴 낚아채려는 여성들의 손길을 뿌리치며 계속 어딘가를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마침내 한 홍등집 앞에서 박 병장의 발걸음은 멈췄다.    


“오, 미숙이! 잘 있었어?”

“미숙이가 아니라 지숙이라고. 몇 번을 말해줘도 계속 틀려.”


 박 병장은 홍등집 앞에서 호객행위 중인 한 여성에게 앞으로 다가가 가까운 사이라도 되는 듯 친근하게 말을 건넸다. 미숙인지 지숙인지하는 실명 같은 가명은 이 순간 중요한 논제가 아니었다. 정말 중요한 사안은 박 병장의 따를 수 없는 명령을 내가 따라야 하냐 마냐의 문제였다. 박 병장은 내 어깨에 슬며시 투박한 손을 걸치고 미숙인지 지숙인지 모를 여성에게 날 제물로 바치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여기 총각 있어. 오늘 총각 딱지 좀 떼줘.”

“어머, 총각? 내가 또 총각 전문인데.”


 지금 이 뜬금없이 이루어지는 전개는 뭐지? 일단 박 병장이 사전 동의도 구하지 않고 따라오라고 해서 따라는 왔는데 이건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이 아니었다. 난 단지 박 병장이 자신의 욕구 해소를 위해서 우리를 들러리처럼 이곳에 데려온 줄로만 착각하고 았었다. 그런데 나보고 오늘 난생처음 보는 저 여자랑 자라고? 이건 아름다운 그림이 아니었다. 박 병장은 내 속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여성과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내 직속 후임이니까 잘 좀 해 줘. 거기다 총각이잖아. 다섯 장 어때?”    


 박 병장은 자신의 지갑에서 만원 짜리 지폐 5장을 꺼내더니 지폐 부채를 만들어 미숙인지 지숙인지 모르는 여성을 향해 살랑살랑 흔들거렸다. 미숙인지 지숙인지는 모르겠을 여성은 거래에 순순히 응했다. 둘 사이는 이미 협상이 끝나가는 분위기인데 정작 협상의 중심부에 놓인 나로선 도저히 홍등집 안으로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내가 완강히 거부하면 협상은 극적으로 결렬될까? 사랑이란 감정 없이 쌩판 모르는 여자랑 관계를 갖는다고? 거기다 난 첫 경험인데? 어찌할 바를 몰라 쭈뼛거리고 서 있는 나에게 박 병장은 매서운 눈빛을 장착하고 부대 안에서처럼 목소리를 무섭게 내리깔면서 협박을 시작했다.


“너 오늘 저 여자랑 안 자고 나오면 나한테 죽는 거야. 알것냐? 너 일 마치고 나올 때까지 나 여기서 계속 기다린다잉. 이럴 땐 그냥 고맙습니다 형님, 하면서 들어가면 되는 거여. 알것냐?”

“일.. 일병 변수남. 전 괜찮습... 으악”


 괜찮다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 병장의 군홧발이 내 정강이를 강하게 쓸고 지나갔다. 난 다시 부대에서처럼 정강이를 부여잡고 새처럼 총총 깨금발을 뛰었다. 박 병장의 조인트는 언제 맞아도 비명이 나올 만큼 심각하게 아팠다.


“박 병장! 밖에서까지 후임들 때리면 어떡해. 이러면 나 그냥 장사 안 할래.”

“알았어, 알았어. 이 자식이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 잠깐 교육시켰어. 야, 변수남이. 이젠 들어갈 거지?”


 박 병장과 영원히 대치할 순 없었다. 무엇보다 박 병장의 명령을 거스르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는 이미 과거의 무수한 장면들을 통해 완벽할 정도로 학습이 되어 있었다. 육체의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어마어마한  가혹행위가 날 기다리고 있겠지. 일단은 상황 타개를 위해서 박 병장의 명령에 굴복하기로 했다.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너, 나올 때까지 지키고 있는다. 즐거운 시간 보내라잉.”


 박 병장은 지옥문에 서 있는, 망자들을 기다리는 저승사자와도 같았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더니 아예 홍등집 앞에 죽치앉아 버렸다. 난 미숙인지 지숙인지 모를 여성의 손에 붙들려 홍등집 안으로 입장했다. 홍등집의 내부 구조는 마치 기숙사처럼 여러 개의 방이 나란히 마주 보고 있었다. 순간 tv에서 본 적 있는 양계장이 떠올랐다. 우린 비어 있는 한 작은 닭장으로 들어갔다. 방은 생각보다 좁았고 달랑 침대 하나, tv 한 대가 선반 위에 외로이 놓여 있었다. 홍등집이라는 말의 어원답게 방안은 어두침침한 핏빛 조명으로 가득 찼다. 입장해 보니 닭장보단 사진사가 필름  인화하는 벌건 방에 가까웠다. 뭘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우두커니 뻘쭘하게 서 있었다. 홍등집 입장 및 행동 매뉴얼은 생전 배워본 적이 없었다. 신기한 동물이라도 마주한 것처럼 미숙인지 지숙인지 모를 여성은 이해할 수 없는 야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군인 아저씨, 계속 거기 허수아비처럼 서 있기만 할 거야?”

“네? 제,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하죠?”

“재밌는 아저씨네.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 몰라?”

“알긴 하지만...”

“그럼 뭐 해. 얼른 옷 벗지 않고.”


 미숙 씨 아니면 지숙 씨는 답답한 표정으로 홍등집 물정 모르는 허수아비를 책망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손님을 유치하려고 갖은 아양과 애교를 떨었던 바깥 상황과는 딴판의 공기였다. 마치 서둘러 일을 끝내고 싶은 느낌이랄까. 하긴 이런 업종에 근무하고 있는 여성분들은 곧 시간이 돈이니까. 손님 하나라도 더 받으려면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 했다. 난 그런 면에서 미숙 씨인지 지숙 씨인지 모를 여성에게 진상 손님이었던 것이다.  


“저, 꼭 옷을 벗어야 하나요?”

“응? 아까부터 사람 갑갑하게 하네. 당연히 옷을 벗어야 총각 딱지를 뗄 거 아니야. 나 한가한 사람 아니야. 빨리 벗어.”     


 어느 정도 나이가 차기 시작한 이후, 나도 신체 프라이버시라는 게 생긴 이후, 알몸인 날 낳아 준 엄마한테도 탈의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는데 아까부터 자꾸 이 여자는 날 보고 옷을 벗으라고 채근했다. 일면식도 없는 여성 앞에서 내 알몸을 보여 줘야 하다니. 아무리 성욕이 인류를 지탱하고 번성케 한 인류의 고귀한 욕망이라고 하더라도 굳이 이런 식으로 성욕을 해소하고 싶진 않았다. 이건 정말 아니었다.


“저 부탁이 있어요. 돈 돌려 달란 말씀은 아니고요. 그냥... 안 하면 안 될까요?”

“응?”

“죄송합니다. 박 병장님한테는 비밀로 해주세요. 아니, 했다고 거짓말해 주세요. 아마 제가 일을 안 치르고 나오면 분명 화내실 거예요. 부탁드립니다.”

“참나, 이거 재밌는 아저씨네?”


 미숙인지 지숙인지 모를 여성분은 이런 류의 손님은 처음 받아본 듯 진한 화장 위에 황당한 기색을 덧칠했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내 부탁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 돈을 지불해 놓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거절한 셈이니. 일종의 자선 사업이나 기부를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미숙인지 지숙인지 모를 여성분은 나의 제안에 응할 마음이 있는지 지금 자신이 방을 나가버리면 분명 관계를 안 한 사실이 들통나니까 10분 후에 방을 나가겠다고 했다. 우린 침대에 어색하게 나란히 앉아서 몸의 대화가 아닌 마음의 대화를 조금씩 나누기로 했다.


 미숙인지 지숙인지 모를 여성은 사실 미숙이도 지숙이도 아니었다. 지숙이는 가명이고 본인의 본명은 미연이라고 했다. 박미연. 학창 시절부터 공부엔 취미가 없어서 뜻이 맞는 친구들과 몰려다니면서 시간을 낭비했단다. 부모님은 어렸을 적 이혼하셨고, 열 살 터울 남동생은 아버지한테 버려둔 청소 노동을 하시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 그 어머니마저 다른 남자랑 눈이 맞아서 재혼하는 바람에 미연 씨는 22살 무렵에 집을 나와 홀몸으로 상경했단다. 딱히 대학을 가지도 않았고, 배워 놓은 기술도 없어서 편의점 아르바이트 생활을 전전하고 있었는데, 마침 편의점에 들른 홍등집 포주가 미연 씨의 외모와 몸매를 보고 직접 스카우트했다고 한다. 얼굴도 반반하고 몸매도 적당하니 큰돈 한 번 벌어 볼 생각 없냐고. 쥐꼬리 만한 시급을 받고 월세비 내기도 버거워하던 미연 씨는 그 스카우트 제의를 기꺼이 받아들였단다. 돈을 많이 준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나 보다. 그리고 십 년이 흘렀고 지금은 나란 호구와 함께 빨간 조명이 가득한 좁은 방 안에서 서로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아저씨는 나중에 꼭 사랑하는 사람이랑 관계를 해야겠다. 오늘도 뭐 억지로 끌려온 것 같긴 하지만, 아저씨는 이런 데 전혀 어울리지 않아.”


 홍등가에서 일하는 사람답지 않은 멘트가 정결하게 흘러나왔다. 미연 씨는 내 속마음을 훤히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난 예전부터 남녀가 관계를 가진다는 것은 단순히 엔조이가 아닌 사랑의 완성이라고 생각해 왔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랑하지도 않은 사람과 관계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하지 않은 사람과 관계를 가진다는 것이 그저 성욕에 굶주린 짐승하고 뭐가 다른가, 같은 상념을 가끔 해 본 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바보 같다는 소리를 지껄일지 몰라도 난 사랑에 대해서는 그 가치를 존중해 주고 싶었고 지켜내고 싶었다. 사랑도 못 해 본 풋내기 주제에 고결하고 완성된 사랑을 꿈꾸고 있었다.


 10분은 의외로 금방 흘렀다. 미연 씨는 끙, 하는 소리와 함께 침대에서 무겁게 일어나더니 방을 나서기 전에 뭔가 아쉬운 듯이 말을 건네왔다.


“너무 내 얘기만 한 것 같네. 근데 말이야. 아저씨 여자 친구는 있어?”

“아니요. 예전부터 없었고, 지금도 없고, 나중에는 잘 모르겠습니다.”

“웃긴 아저씨네. 그럼 나하고 사귈래?”

“네?”


 고백해 준 건 고맙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이 차가 10년 이상이 나는 것 같은데 그건 좀...


“농담이야, 농담. 나중에 맘 좋고 얼굴 이쁜 여자 친구 꼭 만나.”


 맘 좋고 얼굴 이쁜 여자 친구를 만나라는 말에 문득 선주가 떠올랐다. 잘 지내고 있을까? 잘 지내고 있겠지……. 내가 이런 곳에 와 있을 줄을 걔는 상상이나 했을까? 그녀는 지금 뭘 하고 지낼까? 하지만 이내 선주를 생각 속에서 서둘러 지웠다. 그녀와 난 무슨 관계도 아닌데 내가 왜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거지?


“근데, 내가 여자이기도 하고 오늘 공짜로 돈을 벌어서 특별히 립서비스 해주는 건데. 여자 친구 생기게 하는 비법 하나 알려줄까? 혹시 은근히 아저씨 주변을 맴돌거나 아저씨 말과 행동에 리액션을 잘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저씨를 좋아할 가능성이 높아. 고백하면 꽤 높은 확률로 성공할걸?”


 미연 씨가 말해준 모든 조건이 정선주라는 사람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그녀가 처음 다가와 준 등나무 벤치, 셀 수도 없이 썰어댔던 돈가스, 영화 관람 후 이어진 아마추어 영화평론회, 그녀가 남긴 아름다운 미소들 그리고 환한 웃음소리. 하지만 미연 씨의 의견에 난 동의할 수 없었다. 선주는 내 고백을 매몰차게 거절했으니까.


“네. 알았어요. 명심할게요.”


 미연 씨는 쉽게 방을 나서지 못한 채 머뭇거렸다.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


"저기, 혹시 박태웅 병장이 많이 괴롭혀?"

"네?"

 

 섣불리 답을 할 수 없었다. 미연 씨와 박태웅 병장 사이에 어떤 모종의 커넥션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대답할 수 없는 무서운 질문이었다. 미연 씨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내 눈동자를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내 눈동자의 방향이 바닥으로 떨구어지자 미연 씨는 대충 낌새를 차린 듯했다.


"고생 많겠네. 그런데 박 병장 너무 미워하진 마. 알고 보면 불쌍한 사람이야. 곧 제대니까 조금만, 조금만 더 참아줘."


 미연 씨는 박태웅 병장과 무슨 사이길래 이 분위기에 어울리지도 않는 동정의 말을 꺼내는 걸까. 아까 인사 나눌 때의 기류를 보니 보통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왠지 박 병장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성격의 언어였다. 얼핏 마주친 미연 씨의 눈동자엔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이리저리 섞여 있었다.


 그렇게 미연 씨와 나는 헤어졌다. 미연 씨가 방을 나서고 5분 여쯤을 흘려보내고 나도 천천히 방을 나왔다. 출입문 쪽 좁은 통로를 통과하는 그 짧은 시간에 난 미연 씨의 행복을 마음속으로 빌었다. 한 여성의 가녀린 인생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녀의 기구한 사연이 가슴 아팠다. 밖에서는 박태웅 병장이 야시시한 표정으로 거사를 마친 척 나오는 날 또렷이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분대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나처럼 박 병장이 한 명씩 입장시켰겠지. 박 병장의 발아래엔 담배를 얼마나 피워댔는지 꽁초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변수남이, 좋았냐?”

“일병 변수남. 감사합니다. 좋았습니다.”     


 하얀 거짓말을 했다. 돈까지 지불했는데 안 하고 나왔다는 것을 알면 분명 박 병장의 남은 군생활은 '변수남 일병 괴롭히기'로 채울 게 뻔했을 테니 말이다.      


“새끼, 형한테 평생 고마워해라.”     


 감사는 무슨 개뿔. 지갑에서 당장 5만 원을 꺼내 보란 듯이 길바닥에 뿌리고 싶었지만 수습하지도 못할 사건을 괜히 만들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아주 먼 훗날의 어느 지점에서, 난 박 병장에게 진심 어린 뜨거운 연민의 눈물을 쏟아낼 줄을, 이때만 해도 전혀 알 수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박 병장은 마지막 주자로 위풍당당하게 홍등집에 입장했다. 버스도 자취를 감춘 야심한 시간이라 나는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접고 잠시 몸을 위탁할 pc방을 찾기 시작했다. 서너 시간쯤 대충 때우다 보면 내일 새벽 일찍 첫 지하철로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다. 5분 여쯤 걸었을까. 마침 허름한 pc방 간판 하나가 우연찮게 눈에 들어왔다. 훗, 어이를 상실한 웃음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지금 나한테 딱 어울리는 pc방을 발견한 것이다.


‘첫차 타기 전 pc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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