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남과 선주, 서로를 씹다>
왜 찾아온 거야?
‘변수남 선생님이시죠? 저 기억하실까 모르겠는데 정지안이라고 합니다. 아, 죄송해요. 정선주라는 이름으로 말씀드려야 기억하시겠네요.’
몇 시간째 스마트폰 속 한 문자 메시지를, 저 멀리 하늘을 수놓는 불꽃쇼를 구경하듯 멍하니 들여다 보고 있다. 그저 문자 메시지일 뿐인데 단어 하나 하나에서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어른거리고 그녀만의 향긋한 체취마저 스마트폰 화면을 뚫고 내 감각 기관으로 전달되었다. 스무 살의 그녀가 갑작스레 나에게 다가와 장난스럽게 말을 건네는 것만 같았다. 그녀가 아직 내 번호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안도감이 들면서도 그녀는 왜 이름과 전화번호를 바꾸었을까. 전화번호 바뀌는 일쯤이야 일상 속에서 간혹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치부해도 왜 선주라는 이름을 포기하고 지안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일까. 그보다 관계의 끈이 영영 끊어진 줄로만 알았는데 그녀는 왜 이 타이밍에 나에게 이런 문자 메시지를 보냈을까. 무려 십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무심한 타인처럼 살았었는데 도대체 왜. 그녀에게 섣불리 답장을 쓸 수가 없었다. 아니 어떤 내용으로 답장을 보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스마트폰 속 키패드에 도무지 손가락이 가질 않았다. 답이 안 나오는 복잡한 심경은 얄궂게도 그녀에게 답장 보내는 걸 주저하게 만들었다. 그녀와의 인연의 끈은 그때 미르연못에 몽땅 던지고 와버렸다. 미르연못의 음침한 바닥에서 지금쯤 썩어 없어졌을지도 모를 모진 인연의 끈. 그녀는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내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을까. 오랜만에 건네는 안부 인사 정도는 아닐 것이다. 안부를 물었다면 진작에 묻고도 남았을 것이다. 안부를 묻기엔 십여 년의 세월이 우리의 인연을 매정하게 묻어버렸다. 그러면 도대체 왜.
결국 난 그녀에게 어떤 내용의 답장을 보낼 수가 없었다. 문자 메시지를 보낼 염치도, 용기도 없었고 그냥 지질한 변수남답게 결정을 유보한 채 늘 그랬듯 망설이는 걸 선택하기로 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난 그녀에 비하면 너무 하찮은 존재였다. 신분제 사회가 지속되었더라면 그녀는 고귀한 상류층의 단아한 자제였을 것이 분명했다. 난 그저 하루하루의 생존 과제만 해결해 나가는, 보잘것없는 평민이었거나 노비였겠지. 지금도 그녀는 정교사이고 나는 계약직 교사가 아닌가. 우린 태생적으로 다른 근본을 가진 존재였다. 그때 미르연못에서 깨달았다. 그녀와 나는 각자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감히 하층민 주제에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꿈꿨었나 보다. 그녀와 난, 전혀 어울리지 않은, 어울릴 수도 없는 평행선 인연인 것이다. 참담한 심경을 가슴에 고스란히 간직한 채 며칠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그녀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혹시 변수남 선생님 번호 아닌가요?'
교육열 뜨거운 동네의 수학 학원 강사처럼 그녀는 풀기 어려운 숙제를 계속 내주었다. 이 숙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스마트폰 화면에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라고 간신히 적어는 봤지만 답이 아닌 것 같아서 이내 지워 버렸다. 그녀가 오래전 내 고백을 매몰차게 거절함에서 오는 증오와 원망의 마음은 절대 아니었다. 원래 나란 인간이 이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감정의 인풋과 아웃풋을 철저하게 따지는 계산적인 인간이 바로 나였다. 난 그녀에게 100의 감정을 수줍게 넣었지만, 그녀에게서 돌아오는 감정은 냉정한 0의 거절이었으니까. 다시 떠올려 봐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민망한 순간이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어두컴컴했던 그날의 장면이, 그날의 분위기가 다시 희미하게 되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끝까지 비겁해지자. 정선주, 미안해. 나 원래 이런 놈이야. 문자 메시지는 끝내 보내지 않았다.
주말을 맞아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있기도 찌뿌둥해서 점심을 먹은 후 기분 전환차 동네의 호수 공원을 외로이 거닐었다. 햇볕이 따사로와 동네 주민은 가족 단위로 오는 경우가 많았고 혹은 건강 유지를 위해 혼자서 조깅하는 사람도 몇몇 있었다. 혼자서 조깅을 하는 건데 그 사람들은 전혀 외롭게 보이지 않았다. 마치 바람과 태양과 호수와 함께 손맞잡고 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2시 정각이 되자 호수 정중앙에 위치한 인공 분수대가 공중으로 물줄기를 내뿜자 분수대 곁엔 조그마한 무지개가 화사하게 피어났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무지개를 본 건 처음이엇다. 창대한 하늘에 피어나는 거대한 무지개는 본 적이 있었지만, 화창한 오후의 분수대가 내뿜는 물보라가 손수 무지개를 만들어 내는 장면이 마냥 신기했고 황홀했다. 왠지 손만 뻗으면 무지개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형용할 수 없는 찬란함을 머금고 갓 태어난 무지개를 잡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손을 뻗어본들 무지개에 닿을 수가 없었다. 분명 내 눈 바로 앞에서 보이는데, 손을 뻗기만 하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지개는 날 조롱이나 하려는 듯 4차원의 환상처럼 내 손길을 빗겨나갈 뿐이었다. 무지개를 잡아볼 수만 있다면 과연 어떤 감촉이 찾아올까. 빨주노초파남보가 가지고 있는 감촉은 저마다 다를까. 닿을 수 없지만 닿고 싶다. 잡을 수 없지만 잡고 싶다. 인공 분수대의 짧은 분수 타임이 끝나자 무지개도 서서히 호수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아롱거리는 무지개에 닿아 보겠다는 나의 바람은 결국 무지개에 닿지 못했다. 기분 전환차 나간 산책이었지만 허전함과 실망감만 부여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 평일 저녁의 퇴근 무렵, 세상엔 개와 늑대의 시간이 찾아왔다. 고단함과 쓸쓸함을 온몸에 묻히고 학교 교문 밖으로 나서고 있던 찰나, 교문으로 이어지는 거리의 모퉁이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저녁 하늘 아래 외로이 서 있었다. 양을 지키려는 실루엣인지, 양을 잡아먹으려는 늑대의 실루엣인지 분간하기 어렵지 않았다. 내가 한 때 자주 봐왔던, 사랑했던, 그리워했던 실루엣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애타게 기다리던 답장이 오지 않자 직접 죄인을 잡으러 온 것이다. 그녀한테 두 번째 문자 메시지가 온 이후부터 정확히 일주일이 흐른 뒤였다.
“수남아.”
그녀는 실로 오랜만에 그녀의 조그맣고 고운 입에 내 이름을 담았다. 우린 눈빛이 마주쳤다. 안경 너머 보이는 그녀의 눈매는 아직도 세월이 붙잡아 가지 않은 듯 맑고 투명하고 청초했다. 언제 보아도 아름답고 생기 넘치는 눈매엔 이젠 그윽함까지 담겨 있었다. 대학생 시절 즐겨 입었던 청바지는 이제 단아한 복숭아빛 원피스에게 자신의 청춘을 양보했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치마를 입은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과거를 곱씹어 보니 그녀는 청바지 아니면 면바지 계통의 하의를 즐겨 입었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다. 단지 바지에서 치마로 바뀌었을 뿐인데 그녀는 나와 다른 차원에서나 살고 있는, 전혀 다른 인류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왜 대학 시절에는 치마를 안 입었을까. 치마를 걸친 모습이 이리도 예쁜데. 내 마음속에 아름다움으로 새겨져 있는 그녀가 다시 날 찾아온 것인데, 분명 반가워야 하는데, 그리웠는데, 솔직히 보고 싶었는데 왜 자꾸 내 마음은 그녀를 밀어내려고 억지 노력을 하고 있는 거지? 본능은 그녀를 원하는데 어두운 자아가 계속 가로막는 느낌이었다.
“응, 오랜만이야.”
최대한 차분하게, 하지만 따뜻하지는 않게 응대했다. 솔직히 지금 이 순간 그녀를 향한 감정을 명확하게 규정짓기 어려웠다. 애써 잊고 있었는데, 시간이라는 처방전을 받아 겨우겨우 너를 지워내고 있었는데 도대체 왜 다시 나에게 다가오는 건지. 우린 어차피 이루어질 수 없는 것 아니었어? 널 다시 마주하니까 난 다시 욕심이 생기려고 해.
“잘 지냈어?”
그녀의 목소리에는 그녀답지 않은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얼굴에는 그늘이 진 것 같기도 혹은 햇살이 비추는 것 같기도 하는 오묘한 날씨가 묻어 있었다. 그녀의 감정과 마음을 추측할 수 없을 만큼 그녀는 그 어떤 다가옴의 실마리를 남기지 않았다. 마침 하교하는 학생 무리가 들소 떼처럼 교문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나랑 안면이 없는 고 1,2 학생들이었다. 우린 학생들 무리에 섞여서 서로에게 닿을 듯 닿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학생들 무리를 뚫고 점점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나 역시 학생들 무리에 동승하여 나도 모르게 그녀 쪽으로 한 걸음씩 내딛고 있었다. 우린 그렇게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할 말이 있는데, 어디 카페 같은데 들어가서 이야기할까?”
그녀가 꺼낸 한 마디에 스무 살의 추석 즈음이 떠올랐다. 그녀에게 할 말이 있다며 불러냈던 그 시간과 공간이 잘린 낙지다리처럼 되살아났다. 그날 이후로 완전히 잘려나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되살아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침 50미터쯤 되는 거리에 동료 선생님들과 가끔 가던 로컬 카페가 하나 있었다. 그녀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까라는 호기심보다는 일단은 이 들소 떼들에게서 탈출하는 것이 급선무였으니까.
“따라와. 가끔 가는 카페가 있어.”
지난 세월이 빚어낸 간극 때문에 그녀와 나란히 걸어갈 순 없었다. 나는 그녀의 5미터쯤 앞에서 그녀가 잘 따라올 수 있게 카페를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느리게 나아갔다. 그녀 역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내 뒤를 조심히 따랐다. 카페로 가는 동안 비겁한 자아가 불쑥 튀어나와 내 머릿속을 까맣게 낙서하고 있었다. 어떤 생각을 떠올리려고 해도 도무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답을 모르는 물음만 계속 되뇔 뿐이었다.
‘그녀는 왜 날 찾아왔을까.’
카페에 들어가서 남든 눈에 잘 띄지 않는 창가 쪽 구석진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뒤늦게 따라온 그녀도 내 맞은편에 요조숙녀처럼 앉았다. 그녀의 입에서 무슨 말이 쏟아질지 궁금하긴 했지만 재촉하진 않았다. 언제나 주도권은 그녀가 쥐고 있었으니까. 낯선 사람 대하듯 차갑게 말을 꺼냈다.
“뭐라도 마실래?”
“응? 아, 난 아무거나. 그냥 너 먹는 걸로.”
카운터로 가서 따뜻한 자몽티 2잔을 주문하고 다시 그녀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돌아왔다. 무정하게도 카페 안엔 우리 둘밖에 없었다. 공기는 어색한 기류로 카페의 이곳저곳으로 흐르고 있었다. 침묵이 이어졌다. 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창가 쪽 풍경 쪽으로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먼저 침묵을 깬 건 그녀 쪽이었다.
“예전 모습 그대로네? 하나도 안 변했어.”
“배 나온 아저씨 다 됐는데 뭘. 오히려 네가 하나도 안 변했다.”
“예전에 난 어떤 모습이었는데?”
“응?”
그녀는 무심결에 난감한 질문을 던졌다. 예상 질문지가 아니라 당혹스러웠다. 예전에 너의 모습이 어땠냐고?
‘그저 한없이 아름다웠고, 이슬처럼 청초했으며 너와 함께 있을 땐 향기 좋은 등나무꽃 아래에서 달콤한 잠을 자는 것만 같았어.’
마음속에 떠오르는 말들을 도저히 입 밖으로 단 한마디도 쏟아낼 수가 없었다. 대답을 못해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에 눈치 빠른 그녀는 다른 화제의 질문을 던졌다.
“그 학교 근무한 지는 얼마나 됐어?”
“올해로 2년째야.”
“사립학교던데, 정식 교사야?”
“아니, 아직 기간제 교사야.”
“아, 미, 미안. 내가 실수했어.”
“아니야. 미안해할 필요 없어. 내가 선택한 삶이자 결과야.”
“아니, 내가 주제넘은 질문을 한 것 같아. 미안.”
“괜찮대도.”
그녀는 못내 자신이 던진 질문이 목에 생선 가시라도 걸린 듯 마음이 쓰였나 보다. 연신 사과를 하는데 난 정말 괜찮았다. 정식교사에 대한 뜻이 강렬했다면 난 진작 임용고사에 합격을 하고 그녀처럼 정식 교사가 되었겠지. 모든 게 인과응보다. 시간을 쓰레기처럼 낭비한 내 과거에 대한 응당의 대가가 사립학교 기간제교사이니까. 다시 대화가 끊기려는 찰나, 타이밍 좋게 진동벨이 울려 카운터로 가서 따스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자몽티 두 잔을 받아왔다. 평소 즐겨 먹는 메뉴는 아니었지만, 오늘 저녁엔 서늘함이 기승을 부린 탓에 따뜻한 티 종류가 그녀의 차가워진 손을 따스하게 녹여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몽티를 받아 들더니 입바람을 한 번 불고 한 모금을 호로록 넘겼다. 나도 그녀를 따라 어색하게 한 모금을 꿀꺽 삼켰다.
“저기, 요즘에도 글 쓰고 있어?”
“무슨 글?”
“너 학교 다닐 때 학과 방명록에 글 자주 썼었잖아.”
“내가 그랬나?”
“응, 너 그때 썼던 글들 꽤 좋았어. 그래서 작가라도 될 줄 알았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난 그렇게 소질이 있는 사람이 아니야. 이 세상에 글 잘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정말 소질이 없다고 생각해?”
“응. 난 잘하는 것 없이 이냥저냥 시간만 때우며 하루하루를 흘려 보내는 사람이야.”
솔직한 심정을 말했을 뿐인데 그녀의 눈빛이 차츰 차갑게 변해가는 게 둘 사이에 흐르고 있던 공기를 통해 전해졌다. 반가움의 눈빛에서 점점 경멸의 눈빛으로 변해간달까? 입도 지그시 앙다문 모습이 뭔지 모르게 솟아 오르는 화를 억누르는 듯 보였다. 그녀는 들고 있던 찻잔을 조용히 테이블에 놓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말실수라도 했나? 갑작스러운 그녀의 태세 전환이 선뜻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래. 지금처럼 대충 시간이나 때우며 살아.”
한 마디를 남기고 그녀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녀가 남기고 간 찻잔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더니 이내 희미한 연기가 되어 아예 세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가 예고도 없이 그녀는 떠나버렸다. 십여 년 만에 찾아온 진짜 이유도 못 들었는데. 난 자몽티가 완전히 식어서 차가워질 때까지 카페를 나서지 못한 채 그저 멍하니 앉아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문 밖은 이미 어둑함이 세상을 조금씩 잡아먹고 있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