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2천만원 깎아줬는데 갈 집이 2억이 올랐다.
뽀꼬가 태어나기 전에 이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11월 초가 예정일이니 7~8월에는 이사를 해야 했다. 2월 말, 20군데가 넘는 부동산에 집을 내놨다. 가격도 나름 매력적으로 설정했다. 보기 싫은 잔짐은 싹 갖다 버리고 청소도 반짝반짝하게 해두었다. 집 보러 온다고 하면 주말 약속도 취소했다.
우리가 가고 싶은 지역은 명확했다. 마포구. 둘이 신촌 원룸에서만 거의 6년을 살았던 터라 마포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경의선숲길은 집 앞 마당 같았고 골목골목에 모르는 가게가 없었다. 은평에 살면서도 주말 브런치 먹으러는 꼭 연희동 쿳사에 갔고 사러가에서 장을 봤다.
이사를 진짜로 결심하기 전, 작년 여름부터 남편과 둘이 땀을 바가지로 흘리며 공덕, 아현뉴타운 임장을 다녔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여기가 인기인 이유는 알겠지만 우리는 싫다'였다. 유모차를 끌고 절벽 같은 언덕을 오르내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혹여 손이라도 놓치면 아기가 데구르르 굴러갈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가 집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집이 우리를 선택하는 거였다. 토허제가 풀리면서 마용성이 미친 듯이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작년 여름부터 마포를 봤는데! 너무 억울했지만 은평구 아파트를 최대한 빨리 팔고 이 불장에 올라타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약점이 하나 더 있었으니, 갭투자가 아니라 실거주 예정이라는 점이었다. 나도 갭투자를 해본 입장에서 돈을 벌려면 거주와 투자를 분리해야 한다는 부동산 유튜버들의 말에는 공감했지만, 이제 뽀꼬도 태어날 텐데 남의 집 살이하기가 싫었다. 그런데 갭투자 물건을 빼고 나면 마포구에 우리가 살 수 있는 아파트가 정말 한줌이었다.
우리의 첫사랑 단지는 oo 래미안이었다. 진짜 집 안을 보기 전에도 3번씩이나 그냥 보러 갈 정도로 좋아했다. 더블역세권에 경의선숲길, 한강 코앞. 게다가 마포에서 가장 선호하는 학군지였다. 인천에 살다가 목동으로 이사와서 학군지의 장점을 온몸으로 흡수한 내게 엄청난 매력이었다.
그 첫사랑 단지에 내내 매물이 없다가 실거주 가능한 매물이 나와서 보러 갔다. 인테리어를 싹 하긴 해야 했지만 거실, 작은 방, 안방 광폭베란다 서비스면적이 끝내줬다. 이거 확장만 하면 30평대처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은평구 아파트가 팔릴 기미도 보이지 않았지만 이 집을 먼저 선매수할까, 진심으로 고민했다.
결국 선매수할 만큼 간이 크지 못해서 포기했다. 그때! 우리 집 매수 콜이 왔다. 집 내놓은 지 2주만이었다. 쌍둥이들을 데리고 온 부부였는데, 애들이 너무 귀여워서 내가 피규어도 두 개 집어줬었다.ㅋㅋ 그런데 부부 간 의견이 갈린다고 하더니 결국 가계약이 빠그라졌다.
이때 멘탈이 좀 부서졌다. 가계약될 줄 알고 첫사랑 집에 가계약금을 넣으려 했더니 그 집이 이미 계약이 됐다는 것이다. 그 집은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우리 집은 가계약까지 가기도 이렇게 힘든데! 진짜 마음에 드는 집을 놓쳤으니 이제 어쩌지... 그 단지는 세대수가 많은 편이 아니라 물건도 잘 안 나오는데.
그래도 어떡해 해야지. 나는 심기일전하고 당근에도 집을 올렸다. 당근으로 집을 보러 온 팀이 두 팀 있었다. 한 팀은 집을 정말 마음에 들어했지만 살고 있는 빌라가 팔려야 이사올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부동산에서도 주말마다 3~5팀씩 꼭 집을 보러 왔다. 근데 매수콜이 안왔다.
어떻게든 집을 팔겠다는 의지로 셀프인테리어도 했다. 현관이 너무 별로라 사람들이 싫어하나? 싶어서 데코타일로 보수를 한 것이다. 나름 강남에서 비싸게 공수해온 포르투갈산 빈티지 타일인데 일반적인 취향이 아니라...어떤 분이 '현관 타일은 안 바꾸셨나봐요' 했던 게 마음에 걸렸다. 우리가 직접 페인트칠한 현관문도 다시 시트지로 작업할까 고민을 하고 있던 때, 연락이 왔다.
당근으로 집을 보고 갔던 부부였다. 이번엔 부동산을 끼고 우리 집에 다시 온 것이다. 당근 직거래를 하면 복비를 아낄 수 있는데, 쌩으로 나갈 복비가 아까웠지만 우리 집이 얼마나 맘에 들면 두 번이나 왔겠는가! 가격 네고도 최대한으로 해주고 집을 팔았다. 드디어...!!! 집이 팔린 것이다.
하지만 집이 팔린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시장이 미쳐서 불타오르고 있었다.
토허제 재지정. 생각만 해도 헛웃음이 나오는 말바꾸기 때문에 우리가 '못 사는 게 아니라 안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공덕, 아현뉴타운이 미친 듯이 오르기 시작했다. 풍선효과라고 했다. 차라리 마포에 토허제 지정을 하지. 우리는 갭투자가 아니라 실거주이니 토허제 지정을 해도 상관 없었는데. 차라리 대출규제를 하지. 신용대출이라도 받을 수 있었는데.
결국 한 달 전만 해도 15억이면 살 수 있었던 마래푸 20평대가 17억을 찍었다. 우리 집은 2천만원 깎아줬는데, 가려고 했던 집은 2억이 오른 꼴이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찍어뒀던 단지들에는 20평대 매물이 아예 없었다. 집주인들이 매물을 싹 다 거둬들인 거였다. 그나마 공급이 많은 공덕 쪽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공덕래미안 3차와 5차는 아현뉴타운과 함께 2억씩 오른 후였다. 아, 이렇게까지 마포를 가야 하나?
뭐라도 사야 했다. 이사는 가야 하니까. 당산센트럴아이파크 16억짜리가 있길래 그냥 저거 하자, 했지만 그 매물마저도 거둬들였다고 했다. 흑석, 노량진, 옥수, 금호, 신길뉴타운, 급기야는 목동까지 보다가 장고 끝에 악수 둔다고 그냥 포기했다. 효창공원 쪽 약속을 잡았는데 거기도 매물을 거둬들였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마포에서 하자, 결정했다. 후보군에 없었던 공덕래미안 4차 약속을 잡았다. 4차는 언덕 심한 뒷동과 그나마 평지인 앞동 가격 차이가 많이 나는데, 앞동 매물은 약속 잡자마자 다 나갔다고 했다. 뒷동이라도 보기로 하고 그 싫던 언덕을 헥헥대며 오르는데 기분은 땅으로 꺼지는 것 같았다. 입덧이 시작돼서 컨디션도 너무 좋지 않았다.
하루 동안 집을 8개 봤다. 그나마도 스케줄이 다 안 맞아서 공덕-광흥창-공덕-광흥창 이렇게 왔다갔다 해야 했다. 봄이었던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고 아침부터 눈이 왔다가 비가 왔다가 해가 떴다가 날씨도 지랄을 했다. 그렇게 집을 보고, 조건이 좋지 않아 망설이던 집들에 네고라도 해볼까 싶어 전화를 해보면 직전에 계약이 됐다고 했다. 아니면 집주인이 안 판다고 했다.
이제 또 다음 집 약속을 가야 하는데 힘이 쭉 빠졌다. 충동적으로 첫사랑 단지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다. 사실은 첫사랑 단지에 못난이 매물이 하나 있었다. 원래 방 3개짜리를 봤는데 방 2개여서 망설이다 안 한다고 했던 매물이었다. 방 2개라는 것 빼고는 층이나 향이나 완벽한 매물이었다.
호가가 좀 높아서 망설였는데, 이 시기에 마포에 집을 사는 이상 우리가 신고가 찍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만약 집값이 많이 떨어져서 8년 내에 이사를 가지 못하더라도 뽀꼬 초등학교를 여기서 보낼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결국 신고가를 찍긴 했지만 가격 네고도 꽤 할 수 있었다.
이 날 차에서 1번, 집에서 2번 총 3번 울었다. 임신초기 호르몬 때문인지... 하지만 가계약금을 넣고 나자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결국 우리가 처음부터 제일 좋아했던 단지에 계약을 했다. 못난이긴 하지만 어른 둘 애 하나 못 살 집 아니다. 나도 어릴 때 방 2개짜리 아파트에 산 적이 있다. 우린 네 식구였는데도.
남편은 잠도 안 자고 카카오맵을 보여주고 또 보여줬다. 한강까지 얼마나 가까운지, 자기는 공덕역 공항철도까지 걸어다닐 거라든지, 경의선숲길 러닝코스는 어떻게 하면 좋겠다든지. 나는 인테리어, 보관이사, 단기임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태아보험도 들어야 하고 분만병원, 조리원도 결정해야 하는데.
이제야 진짜 가족이 된 느낌이다. 벼락거지니 뭐니 하는 말도 싫어하고 부동산으로 돈 벌 생각도 없다. 내가 산 시점이 평생 동안의 최고점이어도 상관없다. 다만 좋아하는 동네, 살고 싶은 곳에서 세 가족 단란하게 행복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무리가 된다면 언젠가는 포기할 줄도 알아야겠지만, 아직 서른다섯밖에 안 됐다. 꿈을 먹고 살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