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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Aug 04. 2023

아메리카노 (하)

며칠 뒤 영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약속이라도 한 듯 카페로 향했고 메뉴판에서 제일 값싼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여전히 커피의 씁쓸함과 신맛에 적응이 되지 않은 나는 아주 천천히 커피를 마셨고, 덕분에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영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시절에 듣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아버지랑 단 둘이 살고 있다고 영은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반장이라서 씩씩하고 활기차게 반을 이끌기에 잘 사는 집 아이인 줄 알았었다. 아버지가 몇 년째 투병생활 중이라 학생 때는 기초수급자 비용을 받으며 지내왔다고 말했다. 자선단체의 도움과 함께.


나는 뭐가 꼬여서 나만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걸까. 오만한 판단이었음을 깨닫자 부끄러워졌다. 그런 상황임에도 맑고 밝은 아이였으며 내색하지 않고 있었기에 미처 알지 못했다. 영은 졸업 후 연락이 끊긴 이유도 아버지 때문이라고 말했다. 후원금을 통해 아버지를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옮길 수 있게 되었고 급하게 정리하고 떠나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했다.


“쌍수했다던 건 농담이야. 살에 가려져서 몰랐는데 쌍꺼풀이 있더라고 내가.”


영은 웃으며 성인이 된 후 돈을 벌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지냈었던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또한 틈틈이 동화를 썼는데 반응이 좋았고 투고한 출판사에서도 연락이 와서 동화작가가 되었다고 말했다.


내가 허송세월 하며 흘러 보낸 시간 속에서 영은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했고 결국.


“잘됐네.”

“어느 정도 삶에 여유가 생기니까 이상하게 네가 생각나더라고. 그래서 동창들을 다 찾아서 연락했다가 윤혁이 통해서 소식 들었어.”


윤혁이는 장지날 따라와 준 고마운 친구였다. 한창 방황했던 때에 옆에 있어주었던 친구. 철이 들며 만화가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을 때 주변에서 유일하게 응원해 준 사람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는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에 일단 닥치는 대로 일 해야지,라고 말했는데 그 말을 듣고는 누구랑 똑같은 소리 한다, 던 녀석의 말이 떠올랐다.


“윤혁이랑은 연락하고 지냈어?”

“아, 서울에서 우연히. 지나가다가 만났는데 바로 나를 알아보더라고.”

"그 녀석, 좋은 녀석이지.”


얼마 남지 않은 아메리카노를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제법 입 안에 감기는 씁쓸함이 익숙해져 가는 것도 같았다.


.


오로지 돈을 버는 것에 집중해야 했다. 낮에는 만화를 그려 공모전에 도전하고, 저녁시간이 되면 고깃집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고 퇴근 후 새벽이 되면 대학병원으로 향해 오 씨 아저씨와 함께 영안실의 시체를 닦고 다시 해가 뜰 무렵 집으로 돌아와 두세 시간 자고 일어나 만화를 그리고... 다람쥐 쳇바퀴 굴러가듯 살았지만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의 감정과 삶은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와 윤수를 위해 살아가는 게 당연했으니까. 술도, 친구도, 여가생활도 다 포기한 채 돈을 벌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동안 계절은 바뀌었다.


자신을 위해 쓸 시간은 없었다. 해서, 시간은 잘만 흘러갔다. 영이에게도 몇 번 더 연락이 왔지만 자연스레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이 소원해졌다.


.


어김없이 목례를 하고 말없이 시체를 닦는데 어디선가 아버지가 말하는 것 같았다.

- 경수 네가 고생이구나

 

“네?”


오 씨가 가만히 나를 쳐다보더니  네 이야기 좀 해봐라, 라며 화두를 던졌다. 생각해 보니 그와 일하는 동안 서로의 사적인 이야기는 한 적이 없었다. 나는 오 씨 아저씨가 뭘 하던 사람인지, 이 사람은 어쩌다가 시체 닦는 일을 하고 있는 건지, 가족은 있는지 아는 게 없었다. 명색이 동료라고 하면서 당장 내일부터 그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아무것도 몰랐을 테지. 이야기를 다 들은 오 씨는 다시 소주병을 나발로 들이켰다.


 “젊은 나이에 짐이 많구나. “


빈 병을 궤짝에 넣어놓고 오 씨는 말을 이어갔다.


“사는 게 뭣 같다고. 먹고살기 힘든 건 누구나 마찬가지야. 정상에서 단꿈 꾸는 것도 잠깐이지. 평생을 발 구르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거라고 그게.”

 “......”

 “나태해지는 순간 추락하는 거야. 건실하게 지금처럼만 하면 좋은 날 올 거다. 사업한다고 여기저기 손 벌여서 내 돈이 아닌 걸로 큰 일 하려고 하지 말고…. 내 말은 돈을 좇아서 살진 말라고.”


말을 마친 오 씨는 내 어깰 가볍게 툭툭 치더니 잠깐 쉬고 오겠다며 영안실과 이어진 작은 사무실로 들어갔다.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가 윤수와 엄마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었다. 돈을 좇으며 살진 말라는 그의 위로에  암담했던 처지가 조금 나아진 기분이었다.


.


어느 날부턴가 그는 내게 술을 주지 않았다. 나도 딱히 마실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대신 아메리카노를 마시곤 일하기 시작했다. 시체를 닦을 때마다 매번 아버지를 대하는 느낌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애증을 무마시키고 싶었던 걸 지도 몰랐다. 여전히 아버지의 마지막 잔상은 머릿속을 부유하고 있었다. 119를 부른 이후에도 아버지에게 다가가 목에 걸린 넥타이를 끌어낼 수가 없었다. 무서웠다. 뒤집어진 눈동자는 탁했고 더 이상 나를 바라보지 않았으니까.


“넌 하여튼 이상한 놈이야.”


오 씨는 이 일을 하면서 여유롭게 커피 마시는 것도 이상하고 시체 목을 집중해서 닦는 것도 이상하고 청춘을 다 포기한 채 기계처럼 일만 하는 나란 녀석이 이상한 놈이라고 했다. 이런 놈은 처음 봤다면서. 이제는 그 말에 그냥 하하 웃을 줄 아는 여유도 제법 생겼다.


어느덧 까마득히 먼 일로 느껴지는 아버지의 첫 번째 기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


오랜만에 만난 영은 윤혁이와 사귀고 있다는 이야길 들려주었다.


“잘 됐네! 축하해.”


영이에게 호감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내게는 일 외에 다른데 신경을 쓸 여유도, 환경도 없었으니까.

두 친구의 행복을 빌어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쯤 되니 더 이상 아메리카노는 씁쓸하지 않았다. 영과 만나며 이야기를 하는 시간에 익숙해진 만큼, 어른이 되는 동안, 아메리카노쯤은 익숙하게 마실 줄 아는 어른이 된 걸지도.


“너도 새 직장 구한 거 축하해 경수야”


오 씨 아저씨가 추천해 준 대학병원의 경비직 합격소식을 들은 지 닷새만이다. 윤수는 한 번 시험에 떨어졌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노량진으로 들어가서 일 년만 더 기회를 달라는 동생에게 아무 말 없이 고갤 끄덕여주었다. 이제는 버틸 수 있다.


첫 출근.

거울에 서서 근무복을 갖춰 입고 넥타이를 조여 맸다. 넥타이를 조여 맨 순간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긴장감이 다시 나를 붙잡았다. 적당히 기분 좋은 긴장감이었다. 여전히 달라진 건 없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걸지도 모른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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