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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Aug 04. 2023

아메리카노 (중)

영과의 인연은 짧았다. 고등학교 3학년. 집안 사정으로 인해 대학 진학을 포기한 내게 갑자기 말을 걸었던 아이. 반장인 이영이었다. 그다지 예쁘지도 않았고 전교권을 다툴 만큼 똑똑하지도 않았는데 유난히 친구들이 많이 따르던 아이였다. 반장 선거에서 교내에서 예쁘기로 유명하던 여자애를 이기고 반장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때만 해도 별로 관심 없었다. 윤수는 꾸준히 성적이 좋아서 법학과에 진학하고 싶다며 일찌감치 목표를 정해놓은 상태였고 나는 그저 그런 성적이었고 하고 싶은 것도 딱히 없었으며 하루하루가 지루한 상황이었으니까. 아버지는 매일 야간 근무를 나가셔야 했고 어머니는 반찬가게에서 일을 하고 계셨었다.


밤마다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 돌아오면 나란히 놓여있던 아버지의 구두는 늘 어머니가 반질반질하게 닦아놓아 빛이 났었다. 구조조정으로 인해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중소기업의 부장의 자리에서 일용직으로 내려오신 아버지의 자존심을 지켜드리기 위해 엄마는 매일 구두를 닦았다. 아버지가 신고 다니는 것은 먼지와 흙투성이로 해진 낡은 안전화였음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그런 가정환경은 남들의 눈엔 어려워 보였던 것 같다. 선생님은 면담 이후 나를 눈에 띄게 신경 쓰셨고 그런 상황에서 영의 접근은 별로 달갑지 않았다. 심지어 1학기 때는 사적인 말을 해본 적도 없는 사이였으니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그 아이가 내 옆자리에 와서 앉았다.


“뭐야.”

“그냥, 너랑 짝 하고 싶어서 은주한테 자리 바꿔달라고 했어. 선생님도 허락하셨고.”


선생님이라는 얘기에 내가 민감하게 군 것도 있지만 의도를 갖고 내게 말을 건 그 아이의 잘못도 크다고 생각했다. 나는 짜증 나서 그만 손에 커터칼을 쥐고 있었다는 것도 잊은 채로 저리 비키라며 팔을 휘둘렀고 미처 피하지 못했던 영은 이마에 상흔을 입었다.

.


“그날 이후로 너 나한테 되게 잘해줬잖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던 영이 옛이야기를 꺼내며 앞머릿속에 감춰진 흰 이마를 들춰 보였다. 여전히 작은 흉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 아이를 잊고 있었다니. 무책임한 스스로가 다시 한 번 비참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나도 사실 네가 나보고 비키라고 하면서 말 거는 거 무시할 때 대충 눈치는 챘었어. 아, 얘가 나를 선생님이 보낸 줄 아는구나 하고”


말없이 아메리카노라는 걸 마시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맛이 써도 너무 썼다. 적응할 수 없는 맛. 처음 카페에서 먹어보는 가장 싼 3500원짜리 커피의 맛은 이렇게 씁쓸하구나. 윤수는 가끔 아메리카노, 라면서 커피를 들고 오곤 했다. 공부하면서 집중해야 한다며 커피를 마시는 윤수를 봤을 땐 나도 커피 마시면 공부를 더 잘할 수 있었을까, 싶었는데 지금 보니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어쨌든 겨우 3500원에 벌벌 떨며 커피를 사는 나를 보고 영이 얼마나 한심하게 느꼈을까 싶었다. 스스로가 한심하기도 했고. 아버지가 떠오르기도 했다. 어느 날엔가 한우가 먹고 싶다고 투정하던 윤수 때문에 한우를 구워주셨던 아버지는 딱 한 입만 먹고 이가 아프시다며 더 이상 드시지 않았던 때가 떠올랐다. 그땐 한우가 그렇게 비싼 건 줄 몰랐는데 막 아버지가 실직하셨던 터라 경제적 사정이 어려웠음에도 아들이 먹고 싶어 하던 소고기를 사며 텅 빈 지갑을 뒤져 돈을 꺼내셨을 아버지가 떠올랐다.


“무슨 생각해?”

“아, 아냐. 미안. 아버지가..”

“얘기 들었어.”


영이 힘들었겠다,라고 말하자 가슴이 쿵 울림이 느껴졌다. 놀란 표정으로 휴지를 건네는 영을 보며 내가 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도 내게 힘들었겠다,라고 말한 사람이 없었는데. 다들 힘을 내라고 내게 강요했는데 다른 사람들과 달리 힘들었겠다, 라며 말해준 사람이 내겐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4년 전 내 짝꿍이 되고 싶다며 자리에 앉은 뒤 꺼냈던 첫 마디와 비슷했다. 그때도 어떻게 우리 집 상황을 알았던 건지는 모르지만 앉자마자 힘들었을 텐데 나한테라도 고민 털어놔, 난 반장이니까.라는 뉘앙스의 대화로 고민을 나누자고 말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내 부끄러운 치부를 들킨 것 마냥 화도 나고 쪽팔리기도 해서 그 아이에게 비키라며 팔을 휘둘렀었고.


예나 지금이나 영도 나도 변한 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치부를 감추기에 급급하며 할 줄 아는 것 없이 현실에 도태되어 있고 영은 내게 도움이 되고 싶다며 내게 다가왔다.


“오늘 즐거웠어. 윤혁이가 아직 나랑 연락하고 있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 걔가 네 이야기 알려준 거니깐. 동창회도 나올 수 있음 나오고... 또 연락할게!”


조각달이 떠오른 밤. 순백의 거리는 암흑으로 물들었음에도 곳곳에 켜져 있는 가로등과 네온사인이 달린 간판들이 화려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곳에서 나는 불빛에 이끌리는 불나방처럼 집으로 돌아왔다.


“형, 왜 이렇게 늦었어? 세탁소 다녀온다더니 가서 형이 직접 빨래라도 한 거야?”


언제 돌아온 건지 윤수가 다가왔다. 그제야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던 넥타이가 떠올랐다.


“잘하고 있지?”

“물론.”


안경을 추켜올리며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하는 윤수를 보니 그래도 적잖이 안심이 됐다. 녀석도 나만큼 부담감을, 원망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대로 가장이 되어 집안을 책임져야 하고 녀석은 녀석대로 집안을 일으켜야 하고. 여전히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것을.


.


다행히도 아르바이트 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시체 닦는 아르바이트와 고깃집 서빙이라니. 둘 다 이미 죽어있는 것에 관한 일이지만 꽤나 기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오후 4시부터 오후 10시까진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했고 오후 11시부터 새벽 4시까진 시체를 닦기 위해 대학 병원 지하로 가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고깃집 아르바이트는 서빙만 하면 되니 손님들 주문을 받고 불판을 갈고 손님들이 간 뒤 뒤처리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직접 고기를 썰어야 하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사소한 것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남은 9개월은 엄마와 동생을 위해 미친 듯이 일해야 했다. 오후 11시 지친 육신을 이끌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마 윤수는 정신이 지쳤을지도모른다. 나는 그게 한낱 육신일 뿐이고.


시체 닦는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간 곳에는 소주 1 궤짝이 놓여있었다. 자신을 오 씨라고 소개한 남자는 나를 흘깃 보고는 일주일이나 버틸는지 모르겠다,며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는 주량이 얼마냐며 물었다.


시체 닦는 아르바이트와 주량의 관계를 알지 못해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하지 않자 오 씨가 뚜껑을 깐 소주 한 병을 내밀며 마시라고 했다.


“이 일이 맨 정신으로는 못하는 일이여.”


시체 보관실은 사무실 안 쪽으로 들어가야 했다. 책상 2개가 놓여있는 사무실을 지나 두텁고 견고한 문을 열자 냉기가 도는 시체 보관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색의 서랍들이 가득했다.


“저 안에 네가 닦아야 할 분이 있어. 일단 묵념부터 해.”


예의를 차려야 한다며 엄숙하게 진행된 절차 이후 오 씨는 킬킬 웃으며 서랍 하나를 끄집어냈다. 기괴하고 묵직한 쇳소리와 함께 눈을 감은 채 고요히 잠든 차갑고 창백하며 인간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시신 한 구가 나타났다. 어지러움과 함께 아버지가 눈을 뒤집고 보라색 넥타이를 맨 채 쓰러져있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아아, 아버지.

“요새는 시대가 시대인만큼 이런 일 하는 병원도 거의 없고 이 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아. 용케 붙었는데 벌써 포기여?”


오 씨는 담담하게 시체를 마주하곤 화난 것 같이 무뚝뚝한 얼굴로 시체를 꼼꼼히 닦았다.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았다. 눈을 뜨곤 허리를 일으켜서 나를 바라보며 말을 걸 것만 같았다.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와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귓가에서 요동쳤다.


“그러고 서 있든가 알아서 혀. 기절이나 하지 말고. 여기서 기절하면 머리통 깨지니까.”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내뱉곤 또다시 오 씨는 말없이 시체를 닦았다. 소주를 몇 병이나 마셨더라. 그래도 3병은 깐 것 같은데 빌어먹을 정신이 왜 이렇게 또렷한 건지 알 수 없었다.


.


“우리 아들들이 준 넥타이니 좋은 날 메야겠네. 아이고 내 새끼들.”


윤수와 용돈을 한 푼 두 푼 모아서 고르고 골라 심플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의 보라색 넥타이를 아버지께 선물해 드렸던 날 목에 넥타이를 건 아버지는 거울을 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고 나와 윤수를 숨 막힐 정도로 껴안아주셨었다. 그리고는 셔츠 깃 아래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바싹 넥타이를 조여 매곤 허허 웃으셨다. 아버지를 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도대체 뭐가 그리 힘드셨던 걸까. 가족을 저버릴 만큼.


아버지도 가족들이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전 누군가가 이렇게 닦아주셨겠지. 눈앞의 시체가 아버지라고 생각하자 저절로 손이 갔다. 또 울고 있었던 건지 오 씨는 내 행동이 의외라는 듯 슬픈 표정으로 울면서 닦는 놈은 또 처음일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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