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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Sep 03. 2024

2. 아스피린에 대한 가벼운 찬사(하)

가정부가 초조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병원에라도 가보시겠어요? 택시 불러드릴까요?


남자는 말없이 손만 흔들고는 나가보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가정부가 남자를 한 번 돌아보더니 한숨을 쉬고 서재 문을 닫았다.


째깍째깍. 곧 네 시가 되면 뻐꾸기시계가 네 차례 울부짖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잠시 쉬자.  


강박증에 편집증적인 기질을 가진 그였으나 유일하게 정을 붙인 건 다름 아닌 뻐꾸기시계였다. 한창 생활고에 시달리며 근근이 먹고살던 때(그래, 그때도 돌이켜보면 편두통이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시각의 편협함에서 벗어난 개성 있는 글을 쓰겠다며 적금을 깨 해외로 배낭여행을 떠났던 해에 유일하게 사온 기념품이었으니까.


시의적절하게 여행 버라이어티가 큰 호응을 얻는 시점에 배낭여행 다녀온 수필을 기고하며 웹상에서 나름대로 유명세를 얻은 남자에겐 뻐꾸기시계는 행운의 의미였다. 특히 그는 시계 속에 든 목각 뻐꾸기 인형을 좋아했다. 목각인형에 불과하지만 화려한 보석들이 깃털처럼 장식된, 무려 스위스 시계 장인이 제작한 뻐꾸기였기 때문이다.


매 시간 글을 쓰다가도 잘 풀리지 않으면 뻐꾸기가 울기를 기다리던 남자였다. 태엽이 맞물려 움직임으로서

자그마한 창문 밖으로 나온 새가 뻐꾸욱- 하고 소리 내면 갑자기 생각이 번뜩였고 다시 글에 열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맑고 청아한 소리였다.

극도로 예민한 남자의 귀에도 아주 적합한 소리. 남자는 그 뻐꾸기가 진짜이길 바랐다. 진짜라면 매일 손가락에 작은 두 발을 얹고 부리를 쓰다듬어주거나 등의 깃털을 쓸어주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자존심 때문에서라도 남들에겐 말 못 할 고민이나(요컨대 앞에서 언급한 편두통 외의 고민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혹은 새로운 글에 관한 아이디어라던지. 작은 체구에 온기가 가득 찬 뻐꾸기는 마냥 듣다가 뻐꾸욱- 하고 대답해 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시계 속 뻐꾸기는 단지 화려한 보석이 알알이 박혀있는 목각인형에 불과했다. 존재하고 있지만 살아있는 것은 아닌.


시계 속에 뻐꾸기가 있는 것처럼 남자의 머릿속엔 두통이 자리하고 있었다. 남자는 멍하니 시계를 바라보았다. 조만간 뻐꾸기가 나올 터였다. 뻐꾸기 울음소리를 들으면 남자의 두통도 사그라들 것 같았다. 남자는 뻐꾸기가 시계 밖으로 나오는 모습에서 형체 없는 통증이 자신의 머리 밖으로 튀어나가는 듯한 대리만족을 느꼈다.


이번에 고료를 타면 진짜 애완용 새라도 한 마리 데려와야 하나. 그 와중에도 두통으로 머리가 욱신거리고 있었다.


머릿속에 시한폭탄이라도 심어둔 것 같군. 남자는 헛웃음을 지으며 눈을 감았다.


*  


뻐꾸기 소리도 듣지 못한 채 긴 잠에 빠졌던 모양인지 창밖이 어두웠다. 가정부도 돌아간 건지 서재 밖에선 인기척이 없었다.


열한 시 오십 분.

한숨 푹 자고 일어난 덕에 두통은 가신 듯했다. 사실 마감 때문에 예민해져 있던 남자는 요 며칠간 잠을 거의 설친 상태였다. 많이 자 봐야 하루 두세 시간.


그래서 눈 밑까지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왔음은 물론이고 파릇파릇한 수염도 며칠 깎지 않아 이리저리 지저분하게 자란 상태였다. 피부는 거칠어져 메말라있었고 약간 누렇게 떠 있기까지 했다. 피로가 축적된 상태에서 극도로 예민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니 작은 것 하나에도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두통이 더 심하게 도진 것이었지만 남자가 그걸 알 리 없었다.


마른세수를 하며 메마른 얼굴을 쓸어내린 남자는 마감은 글렀다고 생각했다. 한숨을 쉬며 전화선을 뽑았다. 내일 신문엔 공란이 생기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겠군. 난 다시는 그 신문에 글을 실을 수 없겠지. 망할 두통 하나로 인해 밥줄 하나를 잃게 되다니!  


명확한 사실을 깨닫자 다시금 찌릿하는 기분 나쁜 통증이 관자놀이께로 퍼졌다. 일순간 화가 치민 남자는 전화기를 바닥에 내던졌다. 그래도 분은 풀리지 않았다.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서재 책상에 올려진 책들을 모조리 집어던졌다.  


원고지가 흩날렸다. 그래도 분은 풀리지 않았다. 컴퓨터 작업을 하느라 쓰지도 않지만 과시용으로 사 둔 잉크 통과 깃펜도 던져버렸다. 금 간 잉크통 사이로 검은 액체가 흘러나와 번졌다.


작업하던 노트북도 던져버렸다. 남자가 불과 두 달 전 최신형 모델로 7년 만에 장만한 노트북이었지만 그 사실이 분노로 가득 찬 남자의 머릿속에 들어있을 리 없었다. 지금 그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건 분노와 증오 그리고 빌어먹을 편두통으로 인한 고통이었으니까.


일순간 액정이 환한 빛을 내며 서재를 밝혔지만 이내 두 동강이 난 노트북의 화면은 까맣게 변했다. 남자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서재의 모든 것을 던져버렸다. 한참을 씩씩거리던 남자는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왜 뻐꾸기가 울지 않는지 의문이었다.


희미한 뻐꾸기 소리가 바닥에서 기어 나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이미 시계까지 내던진 상태였다. 부서진 시계 안에서 시계태엽이 튕겨져 나와 있었고 금이 간 목각 뻐꾸기는 여전히 반짝이는 눈알을 빛내며 힘없이 부리를 벌리고 뻐꾸욱 거리며 12번을 다 채울 때까지 울어댔다.


-아하하하!


뭐가 재밌는 건지 남자는 실소를 했다. 그리곤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바닥에 떨어져 있던 아스피린들을 하나 둘 주어 담았다. 먹다 뱉어버린 아스피린 한 움큼을 다시 입에 털어 넣은 남자는 물 없이 아스피린을 오도독 씹었다.


씁쓸함을 넘어 혀를 마비시킬 것 같은 역한 맛이었다.


그래도 남자는 아스피린을 오도독 씹어댔다. 쪼개질 대로 쪼개진 아스피린들을 넘기자 머리가 맑아진 기분이었다. 안개가 걷혀 선명해진 것과 같이 여느 때보다 눈이 맑았고 머릿속이 상쾌한 기분이었다.


좋은 글이 나올 것 같은 예감에 남자는 슬리퍼를 끌며 나뒹구는 만년필과 백지 한 장을 주어들곤 푹신한 검은색 가죽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 고개를 처박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래간만에 걸작을 써낼 것 같이 아이디어가 섬광처럼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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