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닦는 아르바이트와 사적일 수도 있는 주량의 상관관계를 알지 못해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하지 않자 오 씨가 뚜껑을 깐 소주 한 병을 내밀며 마시라고 했다.
“이 일이 맨 정신으로는 못하는 일이여. “
시체 보관실은 사무실 안 쪽으로 들어가야 했다. 책상 2개가 단출하게 놓여있는 사무실 반대편의 두텁고 견고한 문을 열자 냉기가 도는 시체 보관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색의 서랍들이 가득했다.
“저 안에 네가 깨끗이 단장해드려야 할 할 분이 있다. 일단 묵념부터 해.”
망자에 대한 예의를 차려야 한다며 엄숙하게 진행된 절차 이후 오 씨는 킬킬 웃으며 서랍 하나를 끄집어냈다. 기괴하고 신경을 긁는 묵직한 쇳소리와 함께 눈을 감은 채 고요히 잠든 창백한 시신 한 구가 나타났다. 일순간 아버지가 눈을 뒤집고 넥타이를 맨 채 쓰러져있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아아, 아버지.
“요새는 시대가 시대인만큼 이런 일을 직접 하는 병원도 거의 없고 이 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아. 용케 붙었는데 벌써 포기여?”
오 씨는 손을 덜덜 떨고 있던 내게 한 병 더 마시던가, 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시종일관 화난 것 같이 무뚝뚝한 표정이었다. 그럼에도 손길은 섬세했는데 꼼꼼하고도 안정적인 자세로 시체를 닦았다. 그 모습이 표본을 채취하거나 부검을 하는 연구원 혹은 부검의로 보일지경이었다. 새삼 저 남자가 존경스러웠다.
창백하고 핏기도 없는 이제는 사람이 아닌 것. 그걸 아는데도 내가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았다. 눈을 뜨곤 허리를 일으켜서 나를 바라보며 말을 걸 것만 같았다.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와 함께 심장박동이 귓가에서 요동쳤다.
“그러고 서 있기만 할 거면 기절이나 하지 말고. 여기서 기절하면 머리통 깨지니까.”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내뱉곤 또다시 오 씨는 말없이 시체를 닦았다.
소주를 몇 병이나 마셨던가. 3병 정도는 마신 것 같은데 빌어먹을 정신이 왜 이렇게 또렷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우리 아들들이 준 넥타이니 좋은 날 메야겠네. 아이고 내 새끼들.”
허공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아버지의 승진 소식을 듣고 동생 윤수와 용돈을 한 푼 두 푼 모아서 고급스러운 진보라빛 넥타이를 아버지께 선물해 드렸던 그날의 목소리.
목에 넥타이를 건 아버지는 거울을 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고 나와 윤수를 숨 막힐 정도로 껴안아주셨었다. 그리고는 셔츠 깃 아래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바싹 넥타이를 조여 매곤 허허 웃으셨다. 아버지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도대체 당신은 뭐가 그리 힘드셨나요. 가족과 세상을 등질만큼. 아버지도 가족들이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전 누군가가 이렇게 닦아주셨겠지.
눈앞의 시체가 아버지라고 생각하자 저절로 손이 갔다. 또 울고 있었던 건지 오 씨는 내 행동이 의외라는 듯 무서워하는 표정도 아니고 슬픈 표정으로 닦는 놈은 또 처음일세,라고 말했다.
며칠 뒤 영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나는 또다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여전히 커피의 씁쓸함과 신맛에 적응이 되지 않아 아주 천천히 커피를 마셨고, 덕분에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몇 년째 투병생활 중이라 학생 때는 기초수급자 비용을 받으며 지내왔다고 말했다. 나는 여태껏 나만 불행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오만한 판단이었음을 깨닫자 부끄러워졌다. 학창 시절에도 사람들이 잘 따르고 맑고 밝은 아이였기에 유복하게 자란 줄만 알았었기에 의외의 정보였다.
영은 졸업 후 연락이 끊긴 이유도 아버지 때문이라고 말했다. 후원금을 통해 아버지를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옮길 수 있게 되었고 급하게 정리하고 떠나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했다. 그 후론 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틈틈이 동화를 썼는데 반응이 좋았고 투고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동화작가가 되었다고 말했다.
“축하해. 꿈을 이뤘네”
“너는?”
만화가가 꿈이라던 내가 생각이 나서 수소문했다던 그녀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도태되어 있는 내 모습이 헐벗고 있는 것처럼 나의 가난과 바닥난 자존감과 그 와중에도 지켜보려던 알량한 자존심마저 다 드러나보여서. 그냥 이런저런 일 하면서 산다고 말하는 동안에도 반듯한 직장하나 다니지 못해 명함 하나 없는 사실이 부끄러워졌다.
얼마 남지 않은 아메리카노를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제법 입 안에 감기는 씁쓸함이 익숙해져 가는 것도 같았다.
돈을 버는 것에 집중해야 했다. 낮에는 만화를 그려 공모전에 도전하고, 저녁시간이 되면 고깃집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고 퇴근 후 새벽이 되면 대학병원으로 향해 오 씨 아저씨와 함께 영안실의 시체를 닦고 다시 해가 뜰 무렵 집으로 돌아와 두세 시간 자고 일어나 만화를 그리며 다람쥐 쳇바퀴 굴러가듯 살기로 했다.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의 감정과 삶은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와 윤수를 위해 살아가는 게 당연했으니까. 술도, 친구도, 여가생활도 다 포기한 채 돈을 벌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동안 계절은 바뀌었다.
어김없이 목례를 하고 말없이 시체를 닦는데 어디선가 아버지가 말하는 것 같았다
. “경수 네가 고생이구나”
그날따라 오 씨가 가만히 나를 쳐다보더니 네 이야기 좀 해봐라, 라며 화두를 던졌다. 생각해 보니 그와 일하는 동안 서로의 사적인 이야기는 한 적이 없었다. 나는 오 씨 아저씨가 뭘 하던 사람인지, 이 사람은 어쩌다가 시체 닦는 일을 하고 있는 건지, 가족은 있는지 아는 게 없었다. 명색이 동료라고 하면서 당장 내일부터 그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아무것도 몰랐을 테지.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오 씨는 다시 소주병을 나발로 들이켰다.
“젊은 나이에 짐이 많구나. “
빈 병을 궤짝에 넣어놓고 오 씨는 말을 이어갔다. “사는 게 뭣 같다고. 먹고살기 힘든 건 누구나 마찬가지야. 정상에서 단꿈 꾸는 것도 잠깐이지. 평생을 발 구르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거라고 그게. 나태해지는 순간 추락하는 거야. 건실하게 지금처럼만 하면 좋은 날 올 거다. 사업한다고 여기저기 손 벌여서 내 돈이 아닌 걸로 큰 일 하려고 하지 말고…. 내 말은 돈을 좇아서 살진 말라고.”
말을 마친 오 씨는 내 어깰 가볍게 툭툭 치더니 잠깐 쉬고 오겠다며 영안실과 이어진 작은 사무실로 들어갔다.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가 윤수와 엄마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말.
돈을 좇으며 살진 말라는 그의 위로에 암담했던 처지가 조금 나아진 기분이었다.
어느 날부턴가 그는 내게 술을 권하지 않았다. 소주 몇 병을 비워도 적응이 어렵던 오래 전과 달리 이제는 딱히 술을 마실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 대신 나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일하기 시작했다. 여러 시체를 닦을 때마다 매번 아버지를 대하는 느낌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애증을 무마시키고 싶었던 걸 지도 몰랐다.
여전히 아버지의 마지막 잔상은 내 머릿속을 부유하곤 했다. 119를 부른 이후에도 아버지에게 다가가 목에 걸린 넥타이를 끌어낼 수가 없었다. 무서웠다. 뒤집어진 눈동자는 탁했고 더 이상 나를 바라보지 않았으니까.
“하여튼 넌 이상한 놈이야.”
오 씨는 이 일을 하면서 술 대신 여유롭게 커피 마시는 것도 이상하고 시체 상반신을 집중해서 닦는 것도 이상하고 그냥 청춘을 다 포기한 채 기계처럼 일만 하는 나란 녀석이 이상한 놈이라고 했다. 이런 놈은 처음 봤다면서. 이제는 그 말에 그냥 하하 웃을 줄 아는 여유도 제법 생겼다.
더 이상 아메리카노는 씁쓸하지 않았다. 이제는 아메리카노쯤은 소주 한 궤짝처럼 익숙하게 마실 줄 아는 어른이 된 걸지도 모르지.
아르바이트는 전부 그만두었다. 대학병원의 경비직 합격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계약직보단 정규직으로 일해야 한다며 여러 차례 면접을 권해준 오 씨 아저씨 덕분이었다.
윤수는 시험에 떨어졌다. 노량진으로 들어가서 일 년만 더 기회를 달라는 동생에게 아무 말 없이 고갤 끄덕여주었다. 영에게도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는데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주제로 동화책을 쓰고 있는 중이라 했다.
아버지의 부재를 받아들이지 못한 아들은 어떻게 자라나는가.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내용이었다. 나의 이야기. 카페에서 영에게 들려준 이야기였다. 그 해답을 책에서 찾을 수 있을까.
오 씨는 마지막 근무날 웬 소포냐며 택배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영이 보낸 책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일을 마친 후 읽어볼 요량이었다.
“자, 취업 선물이다.”
오 씨가 검은색 상자 하나를 건넸다. 담백한 남색빛 넥타이 하나가 들어있었다.
거울에 서서 오랜만에 넥타이를 맸다. 지퍼형 식이 아니라 직접 매야 하는 방식에 서툴러 하자 오 씨는 말없이 넥타이를 매어주었다.
“이렇게 보니 뉘 집 아들인지 근사하네. ”
오 씨가 어깨를 탁 치며 넥타이를 조여 주었다. 순간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긴장감이 나를 붙잡았다. 적당히 기분 좋은 긴장감이었다. 넌 앞으로도 잘할 거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나중에 술이나 사라며 사무실을 나섰다.
한 손엔 오 씨가 마시다 만 소주병을 다른 쪽엔 다 마신 커피와 동화책을 그리고 목에는 넥타이를 맨 채로 잠시병원 앞을 서성거렸다. 분리수거통에 소주병과 아메리카노를 버린 채 장례식장에 들어서는 근조화환을 바라보았다. 아득히 먼 곳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망자를 위한 애도의 소리였다.
그 소리들이 모인 곳에 오래 전의 내가 있었음을 떠올려본다. 아버지. 저는 당신처럼 가족만을 위해서는 살지 않겠습니다. 스스로를 위해 살아볼 작정입니다.
어느덧 아버지의 첫 번째 기일을 앞둔 제법 코끝이 시린 계절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