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온 듯 했다. 밤마다 잠 못드는 나를 위해 엄마는 늘 머리맡에서 동요를 불러주곤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요는 과수원길. 엄마는 고운 목소리로 내게 과수원 길을 불러주었다. 그러면 나는 엄마의 목소리를 따라 아카시아 꽃이 핀 동구 밖 과수원 길로 향하는 꿈같은 상상을 했고 그 끝에는 과수원길이 아닌 밤색의 큰 장롱이 문을 열고 나를 기다리곤 했다. 그러면 나는 또다시 비명을 내지르며 눈을 떴고 할머니를 찾았다.
*
“청이가 아주 효녀네”
큰엄마는 심부름으로 창고에서 꿀단지를 가져온 나를 보며 칭찬을 했다. 온종일 심부름으로 부지런히 움직이느라 쉬지도 못한 내게 큰엄마의 말은 보상이 되었다.
“우리 순정이는 속만 썩이다가…….”
한동안 침묵하던 큰엄마는 습관처럼 내게 엄마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순진한 아이의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네, 라고 순순히 대답하곤 했다. 어른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하다 싶으면 가까이에, 쓸모없다 싶으면 멀리 두는 것 같았다.
그래서 구년 째 사법고시를 준비 중이라던 혁수 오빠는 저 멀리 산 속 절간 어딘가에, 작년에 돌아가신 작은할아버지의 표현으로 하룻밤 불장난을 한 순정언니는 가출한지가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 소식도 없어 대한민국, 어쩌면 이 나라 밖 어딘가 먼 곳에 있는 지도 몰랐다. 그런 경험을 보며 나도 쓸모가 없어지면 또 다시 장롱에 갇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군말 없이 시키는 대로 말 잘 듣는 아이 행세를 하곤 했다.
큰엄마는 순정언니가 나간 이후 늘 내게 엄마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강요했다. 하지만 큰엄마가 순정언니를 장롱에 가둬두지 않았음에도 순정언니는 큰엄마의 말을 듣지 않았으니 장롱에 갇혔던 내가 엄마의 말을 잘 들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엄마에 대한 애증은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 되어 가슴에 박혔다 . 나를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던 다정한 엄마와 그런 딸을 장롱 안에 가두어 방치하던 엄마. 어쩐지 복잡한 감정이었다. 엄마를 사랑하긴 하는데 사랑하지 않기도 했다.
엄마는 고모와 함께 솟아오른 뒷모습만 보인 채였다. 멍하니 서 있던 내게 엄마가 깔때기를 가져오라고 했다. 고모와 엄마가 매실액을 담아가려는데 그놈의 깔때기가 없어서 페트병에 담아갈 수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군소리 없이 다시 창고로 가 더듬거리며 유일한 희망인 전등 스위치를 켰지만 그 희망마저도 수명이 다해 깜빡깜빡 거리며 소멸해가는 중이었다.
이내 픽- 하고 꺼져버린 전등은 남아있던 빛을 앗아가 버렸다. 주위가 어두워진 덕분에 여름용 레이스 커튼을 투과하고 희미하게 새어 들어오는 빛과 창고를 가득 채운 먼지들이 둥둥 떠다니며 춤추는 모습이 보였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답답한 공간은 장롱을 연상케 했다. 최소한 저 망할 커튼이라도 떼어낸다면 밝은 빛이 들어와서 환할 텐데, 라고 생각할 정도로 커튼에 대한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이 방을 창고로 만들면서 쳐놓았던 커튼은 잡동사니의 무덤 건너편에 먼지가 뒤덮인 채로 있어서 뜯어내기도 힘들고 세탁하는 것 보단 버리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바래고 후줄근해 보였다. 문제의 곰팡내는 벽지가 아니라 저 커튼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창고에 있는 무언가의 정체를 알아내면 엄마는 나를 쓸모 있는 아이라고 인정해줄까. 신경질적으로 잡동사니 무덤을 파헤치자 김치 국물이 밴 깔때기가 나타났다. 할머니가 입원하시기 전에 멍한 표정으로 페트병에 깔때기를 놓고 김치 국물만 담아 한통을 채운 일이 있었는데 깔기에 밴 김치 국물처럼 그날의 할머니는 내 기억 속에 짭조름한 소금기가 되어 남아있다.
깔때기를 엄마에게 넘겨주며 할머니는 언제 보러가, 라고 묻자 큰엄마와 고모 그리고 엄마는 처음 들어보는 낱말을 배우는 아이마냥 할머니? 라며 되물었다. 엄마는 넌 어려서 안 돼, 라고만 했다. 이곳엔 내 편이 없다. 아니, 이곳엔 할머니 편이 없다. 이제 어른들은 필요 없어진 할머니를 멀리하려고 한다. 그리고 필요 없어진 할머니의 물건들도 멀리하려고 한다. 어른들은 할머니의 창고를 비우기로 결정했다.
*
엄마는 때때로 할머니와 통화하는 듯 했다. 어머님, 이라고 말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청이도 어머님 많이 보고 싶어 해요, 라는 식의 대화를 보면 확실했다. 대체 할머니가 어떻길래 나는 전화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걸까. 엄마에 대한 반발심은 갈수록 커졌다. 할머니 댁에 다녀온 다음 날 엄마 몰래 핸드폰을 빼내오는데 성공했다.
길고 긴 신호음 끝에 달칵, 하는 전화 연결이 성공했음을 알리는 신호가 들렸다.
“할머니?”
수화기 너머에선 그르릉 거리는 가래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한 번 할머니를 불렀지만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잘못 걸었나 싶어 전화기를 살펴봐도 어머니라는 이름이 정확했다.
“저 청이예요.”
“청....이?”
할머니의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억세고 아이같이 꾸며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괴할 정도로 낯선 목소리에 놀라 핸드폰을 놓쳤는데 엄마가 잠에서 깼는지 쿵쿵거리며 바닥이 울릴 정도로 빠르게 다가와서 핸드폰을 앗아갔다.
“너 어디다가 전화를...청아! 너..엄마가 할머니 보고 싶어도 참으라고 했어 안했어!”
“엄마, 할머니 목소리가... 무서워. 할머니 아닌 거 같아.”
“이리 와. 말 안 들으니까 그렇지!”
놀라서 엉엉 우는데도 엄마는 황급히 통화를 종료하더니 나를 달래주지 않고 엉덩이를 때렸다. 장롱 안에 갇혀있던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며 설움이 복받쳐왔다.
“할머니 왜 그래? 응? 엄마. 우리 할머니.. 할머니..”
엄마는 한숨을 내쉬더니 무릎을 굽혀 나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리곤 내게 오렌지주스가 담긴 머그컵을 쥐어주었다. 애써 터져 나오는 눈물을 억누르며 딸꾹질하듯 가쁜 숨을 내쉬고는 주스를 한 입 머금었다. 꿀꺽. 주스가 넘어가는 소리인지 아니면 뭔가 단단히 결심한 표정의 엄마가 침을 삼키는 소리였는지 알 수 없는 목 넘김 소리가 들렸다.
“청아. 할머니는 조금 어려지셨어.”
“할머니가 젊어졌다고?”
엄마는 내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너 동생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었지? 라고 물었다. 엄마에게 동생이란 단어가 나온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엄마가 할머니 댁에서 다시 나를 찾은 이후 우리가족에게 ‘동생’이란 단어는 이 세상에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엄마는 지금 정확하게 동생 이라고 말했다.
“할머니가 네 동생처럼 어려진거야. 만약 네게 동생이 있었다면 지금 너보다 한참 어린 아이였겠지?”
아아.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너무 일찍 철이 들었고 엄마는 마냥 나를 아이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보다 내가 아는 게 더 많다는 것은 어쩌면 엄마에겐 유감스러운 일일지도 몰랐다. 대충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더 이상 아무 말하지 않은 채 주스를 더 달라고 했다. 엄마는 냉장고에서 오렌지주스를 꺼내 남은 내용물을 다 따라준 뒤 텅 빈 페트병을 분리수거 통에 넣었다. 할머니와 내가 꼭 저 페트병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엄마는 내게 어느 정도 설명했다고 생각했는지 어쨌든 먼저 할머니한테 전화하지 말라, 고 경고하곤 안방으로 들어갔다. 닫힌 문을 보며 분리수거통에 있던 페트병을 꺼내 남은 주스를 따라 넣었다. 그리곤 냉장고에 넣었다. 아무때나 따라마실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