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빠르게 흘러갔다,
세상에. 숨어지내던 혁수오빠도 해외로 도망간 줄 알았던 순애언니도 어떻게 알았는지 할머니 장례식장에 나타났다. 나와 엄마 아빠처럼 검은 옷을 입고. 특히 순애언니는 할머니의 영정 앞에서 펑펑 울었다. 나보다도 더 어린아이처럼. 가방 속에 숨겨두었던 비녀를 할머니가 가실 때 머리 못 묶으실라 꺼내놓자 아빠는 짐짓 놀란 표정이다가 기특하다며 내 머릴 쓰다듬어주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순애언니도 혁수오빠도 다 제자리로 돌아왔다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다. 나를 제외하곤.
다시 악몽을 꾸며 잠을 자지 못하자 엄마가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다른거 불러주세요. 과수원길이요. 할머니처럼 나른한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또박또박한 목소리 너머로 나는 다시 꿈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카시아꽃이 가득하던 그 길 끝에 굳게 잠긴 장롱 하나가 열려있었는데 할머니의 창고처럼 끝없이 깊은 어둠 속 같았다. 영영 사라지지 않을 나의 도깨비 무덤.
“엄마, 나한테 미안한게 없어요?”
눈을 감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머릴 쓰다듬던 엄마의 손길이 멈췄다.
“응?”
“엄마는 내가 잊어버렸으면 좋겠지만 나는 하나도 잊지 않았어요. 엄마가 그 노래를 불러줄 때마다 장롱 속에서 울던 때가 생각나.”
엄마는 꼭 고장난 로봇처럼 입술만 옴쌀달싹햇다.
“그걸..아직 기억하고 있다고?”
엄마의 표정을 보자 어쩐지 죄책감이 밀려왔다. 모른척 했어야 하는걸까. 엄마는 나를 학대했다는 사실을 들켜서 슬픈건지 학대당한 기억을 가진채 자라난 나를 보며 미안한건지 입을 틀어막고는 잠깐만, 하며 자리를 떠났다. 굳게 닫힌 화장실 문 너머로 수돗물 틀어놓은 소리가 오래도록 들렸다.
*
할머니의 49재 날이 되었다. 그게 뭐냐고 묻자 돌아가신지 49일이 지났다는 의미라고 했다. 내게는 할머니의 자장가가 사라진지 49일이란 의미였다. 할머니의 무덤가에서 엄마는 내 손을 가만히 붙잡고는 울어도 된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한번도 울지 않았었다.
“눈물이 나지 않는걸요.”
내 말에 엄마는 손을 더 꽉 쥐었다. 반대쪽에 서있던 아빠는 내 어깰 붙잡고는 토닥여주었다. 할머니의 무덤은 창고와 달리 작고 봉긋했다. 내게는 할머니의 아담한 새 집이 퍽 좋아보였다. 할머니는 이제 푹 쉴 수 있는걸까.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까무룩 잠이 들었다. 엄마 아빠의 대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아직 기억이...병원...검사를... 대충 나에 대한 이야기였다.
“평생 미안해서 어떻게 살아. 다 내 잘못이야... ”
엄마는 또 울었다. 이제는 안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고는 있음을. 나 또한 엄마를 사랑하고는 있다. 사랑하지만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도.
엄마의 사과는 아직 없다. 엄마에게도 시간이 필요한 걸지 모르지. 어쨌든 나는 엄마를 사랑했기에 잠시 더 기다려주기로 했다.
살짝 열린 차창 너머로 달콤한 꿀향기가 콧구멍 안으로 훅 들어와 퍼졌다. 어쩐지 졸음이 몰려왔다. 할머니의 자장가가 들리는 것처럼 눈에 선연하던 그 풍경. 흰 아카시아 꽃들이 조롱조롱 매달린 아찔한 풍경에 나는 꿈 속에라도 들어간 듯 나른한 기분이었다.
어디선가 달뜬 목소리가 들렸다.
“봐봐. 아카시아 꽃이 활짝 피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