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기자 (2) + 휴재 공지

기자로 살아가는 것에 관하여

by 화니와 알렉산더

잘난 체 한다며 빈축을 살 게 번연하지만, 이상한 말을 하려고 한다.


나는 공부하는 걸 좋아한다.


가사문학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으로 사후 400년이 넘은 시점에 중고등학생들을 괴롭히는 송강의 작품에 모든 시어에 동그라미를 치고 ‘강요된’ 의미를 외우는 공부 말고, 부여, 고구려와 동예의 제천 행사 이름과 시기를 외우는 공부 말고, 진정한 의미의 공부를 좋아한다. 하등 쓸모없는 암기식 교육 말고 인간과 사물과 세상을 공부하는 공부를, 나는 사랑한다.


공부는 기자의 책무다. 부단히 공부하지 않으면 결코 훌륭한 기자가 될 수 없다고 믿는다. 영미권의 훌륭한 기자들은 특정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선배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오랜 세월 동안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여럿 저술한다. 박사 학위 소지자도 많다. 미국에서 뉴스나 강연에 기자가 참석할 때 그를 “기자 겸 역사학자”처럼 언론인이자 학자로 소개할 때가 적지 않다.


내가 가장 자주 통화하는 사람들은 교수들이다. 교수 집단은 가장 접근하기 쉽고 언론에도 꽤 친화적인 전문가 집단이다. 한때 대학원에 발을 담갔던 사람으로서 박사 학위를 받는 일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잘 안다. 오랜 학문적 훈련을 받고 오랫동안 특정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의 학식에 나의 학식은 한참 못 미친다. 그러한 수준에 다다를 수도 없다. 다방면을 취재하는 기자가 모든 분야에서 박사 학위 소지자 수준의 학문적 수준에 오를 수는 없는 법이다. 다만 적어도 - 상대가 반도체를 연구하는 교수이든, 아르헨티나 정치를 연구하는 교수이든, 프랑스 철학을 연구하는 교수이든 – 내가 인터뷰하는 교수와 말은 통해야 한다.


인터뷰를 준비하며 질문지를 작성하고 인터뷰의 주제에 관해 공부한다. 인터뷰 대상을 섭외하기 위해 문자나 메일을 작성할 때에도 공부는 필수다. 교수를 인터뷰한다고 하면, 이 사람이 학사, 석사, 박사 학위는 각각 어디서 받았는지, 어떤 논문을 썼고, 어느 매체에 어느 칼럼을 썼는지 확인한다. 교수가 쓴 칼럼을 최소한 몇 편이라도 읽어 두고, 그와 이야기할 때 알은체하면 반기지 않는 교수 없다. 인터뷰이 공부도 기자에게 중요한 공부다.


기사를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인터뷰용 공부 이상의 공부가 필요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자의 근무 시간은 공부 시간과 취재 시간과 기사 작성이 뚜렷한 경계 없이 혼재된 채 구성된다. 공부하는 시간이 곧 일하는 시간이고, 일하는 시간이 곧 공부하는 시간이다. 공부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 자연히 일하는 걸 즐기게 되었다.


PS, 앞으로 한 달 동안 글을 휴재할 예정입니다. 신춘문예에 제출할 소설을 쓰기 위함입니다. 너른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구독자 129명 모두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6화기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