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 무지의 상태에 머무름

모르는 게 죄일까?

by 최정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몰랐다.”라는 말을 쉽게 접한다. 과제 제출을 놓친 학생에게서, 혹은 남의 발을 밟은 사람에게서 말이다, 그것은 일종의 면죄부처럼 여겨져서, 행위에 대한 책임을 낮추거나 없애버린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 남아있는 찜찜함은 결코 지울 수가 없다. 그 무지는 어떤 앎의 결핍 자체라기보다는 사회에서 허용되어 온 행동에 대한 자신감(모른다는 것을 모르거나, 몰라서 행동한 것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음)이 보장된 상황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는 몰랐다’는 주장이 순진함과 동일시되면서 행위자의 책임이 면제되는 양상은 결코 가볍게 생각될 수 없는 문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대상에게 무지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무지 그 자체는 악이 아니며, 무지의 상태에 머무르려고 하는 것이 악이다.


일반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무지 그 자체가 아니라, 무지를 자각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실제로, 무지가 악이라 불리는 모든 경우는 아집(我執)에 의해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할 때이다. 특정 주체가 모른다는 것을 알지 못하며, 알려고도 하지 않는 무지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자녀의 건강을 위해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일명 '안아키') 카페에 가입해 활동하는 부모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그들은 아이가 화상을 입었을 때 40도 온수에 화상 부위 담그기, 재래 간장을 섞은 물로 막힌 코 세척하기 등의 자연치료법을 주장한다. 그들은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행하지만, 이로 인한 아동의 피해는 상상할 수도 없다. 이처럼 신중한 검토와 고려가 필요할 때에, 적절한 비판 없이 옳다고 생각하는 무지는 무책임한 태도로 간주될 수 있다. ‘오해’ ‘편견’ ‘선입견’ ‘독단’ 등이 모두 악의 양상인 이유이다.


무지의 상태에 머무르는 것은 개인의 노력여부에 달려있다. 개인은 유한한 생물학적 존재이고, 그에 따른 제한된 활동으로 인해 앎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인문학적 교육을 받고, 그 분야의 독서에 익숙하며, 그 틀로 사고하는 필자에게 예컨대 물리의 법칙은 관심 대상이 아니고 그 주제의 지식을 갖추는 데 소홀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가 필자를 비난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이라면 모두 어쩔 수 없이 알고자 하는 일부의 지식만을 취하는 무지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지하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무지함 그 자체에 대한 책임을 인간에게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무지에 머무르려고 하는 태도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정보와 지식이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자신의 상태에 대한 반성이나 성찰은 그 어느 때보다 쉬워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검토하거나 비판하지도 않고, 자신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며 무지에 머무르려고 하는 것은 비난의 대상이 된다.


더 나아가, 무지에 머무르는 것은 인간의 행복을 제한한다. 인간은 누구나 지금보다 더 좋은 삶, 행복한 삶을 원한다. 우리가 고민하고 행하는 모든 것의 목적은 결국 더 좋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지에 머무르는 것은 인간의 행복을 제한하는 결과를 낳는다. 삶의 차원에서는 앞서 살펴본 ‘안아키’의 사례처럼, 무지에 머무르려고 하는 태도가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불행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또한, 무지의 상태는 앎의 차원에서 자신이 모르는 것을 향해 배워나갈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를 지닌다. 예를 들어, 내가 완성된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어떤 이의 값진 조언도 비난으로 여기고, 성찰할 의지도 잃게 된다. 반면, 내가 모르는 것이 있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인정하는 이는 발전과 성장을 이룰 수 있다. 무지의 상태인 자신의 상황을 돌아보지도 않고 더 나아가려고도 하지 않는 것은 자신을, 더 나아가 인간의 행복을 방해하는 결과를 야기한다.


무지는 역사적으로 앎의 반대어로 이해되었으며, 이성을 가진 인간이 멀리해야 할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무지는 대개 바람직하지 않은 것 혹은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무지를 단순히 부정적인 것으로 보는 것은 오해의 여지가 있다.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지식 자체가 무지로부터 발생되거나(모르기 때문에 알고 싶다는 의지), 앎의 일부분이거나, 어쩔 수 없이 무지의 상태와 공존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악의 원인은 무지라고 이해되었지만, 현대의 악의 원인은 바르지 않은 신념과 믿음이라는 무지에 머무름이라고 생각된다. 만약, 우리가 무지의 머무름 상태에 있다면 알려고 노력해야 하며, 적어도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비논리적 신념을 버려야 한다. 무지에 머무르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가하는 기만이며, 우리가 무지하다는 것으로부터 행할 수 있는 가장 큰 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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