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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나 Aug 27. 2024

더 넓은 상식의 차원


나에게 자유란 곧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와도 연결된다. 그것은 나의 대표적인 성격과도 맞닿아있다. 진취적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놀랍게도 성인이 된 이후였다. 스무살 무렵, 사회참여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비영리단체에서 봉사하고 촛불집회에 참석하며 민주화에 관한 논쟁을 즐기를 나를 보고 누군가 말했다. "너는 진취적"이라고. 사실 그는 나의 행보를 비꼬아서 말하기 위해 그런 단어를 사용한 것이었으나, 나는 새로운 단어를 알게 되었다는 것에 진심으로 신이 나고 기뻤다. 그래서 당시에는 그의 속을 헤아리지 못했고 오히려 "고맙다"고 말해 복잡한 상대의 심경을 더욱 헤집어 놓았던 기억이 있다.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더 생긴 뒤에, 나는 그 단어를 가르쳐 준 사람의 미운 마음이 어쩐지 익숙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앞장서서 무엇인가 목소리를 내려고 할 때 마다 자석처럼 나에게 달라붙던 어떤 세력에 대한 감각이었다.  

 

초등학교 육학년 때의 일이었다. 학교에서 보건검사 같은 것을 하던 시절이었는데, 학교 근처에 있는 중견 병원으로 반 아이들이 흩어져 신체검사를 받는 날이었다. 응급실처럼 침대가 죽 늘어져 있는 곳에 한 학급의 인원이 모두 들어갔다. 가슴둘레를 재는 시간이 오자, (한 사람이 하나의 침대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한 침대에 서너명이 함께 들어가 웃통을 벗고 가운을 입어야했다. 이제 막 2차 성징이 시작되는 아이들은 커튼 뒤에 숨어 쭈뼛거렸다. 항상 또래보다 작은 축에 속했던 나는 당시 급격하게 키가 크는 중이었고, 자연스럽게 발육도 성숙해졌다. 반에서 브레지어를 하는 사람이 한두명 밖에 없을 때 나는 이미 스포츠 브라의 종류에 대해 알고 있었고, 직접 속옷 매장에 가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골라오는 것에도 별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그날도 자연스럽게 브레지어를 벗고 옷을 갈아입었는데, 같은 커튼 안에 들어와있던 한 친구가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는 어떻게 그렇게 더러운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냐고 조롱하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했다. 신체검사를 받기 위해 지정된 곳에서 마땅히 해야하는 행동을 한 것이 어떻게 더러운 것이 될 수 있냐고 물었는데, 그 친구는 답을 하지 못하고 나를 쏘아보았다. 그 뒤로 얼버무린 내용과 그의 표정을 도합하여 추측하자면, 마땅히 숨겨야 하는 것을 드러낸 것에 대한 죄의식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도 그 수치스러운 일을 친구들 앞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득한 듯 보였다. 네가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서 옷을 갈아입는 것이 불편하다면 이미 옷을 갈아입은 내가 밖으로 나가있을게, 하고 나는 커튼을 빠져나왔다. 그런 뒤에도 한참동안 친구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우리동네 남자애들은 얼마 전까지도 고추를 내놓고 물병에 오줌을 쌌는데, 왜 나는 병원 커튼 안에서도 브레지어를 벗으면 안되는걸까? 그것은 오랫동안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성장의 무수한 변화를 겪을 때 마다 해결되지 않은 궁금증은 끊임없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십대가 끝날 때 까지 답을 해주는 어른이 없었다. 어쩌면 시대적 배경이, 노출에 존중을 얻고 싶었던 친구를 배려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꼭 내가 맞다는 말을 듣고 싶은건 아니었지만, 그때의 내가 조롱을 받아 마땅했던 것이 아니었음은 확실하다. 

 

전통적인 교육 안에서 쉬쉬된 것들이 많다는 생각에는 의심이 없다. 존 듀이는 자유의 본질이 지성의 자유에 있다고 말하는데, 내재적인 가치를 지니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면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가 책에서 자유의 개념을 설명할 때, 그것이 '행동을 내 본능이 치닫는 대로 돌진하게 두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인간성을 성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군분투하는 것'임을 독자가 생각할 수 있게끔 글을 썼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추구하는 인간성과 가치란 오히려 다양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유란 더 넓은 상식의 차원이지, 비범주화된 일탈의 현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몸의 변화와 호기심에 대해 적절히 다룰 수 없었던 친구들은, 불과 1-2년 사이에 많은 범죄에 노출되었다. 랜덤채팅과 번호 헌팅으로 만난 사람들에 의해 많은 것을 착취당했다. 착취당하면서도 그것이 폭력인 줄 알지 못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더러운' 면모가 스스로에게도 있음을 안 순간 그 충격과 공포는 갑절로 더해져서 더이상 일상을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동시대를 살았으므로 나에게도 그런 유혹은 많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스스로의 마지노선을 긋는 수줍음 같은 것이 있었다. 끝장을 보겠으나 위험해지지는 않겠다는 의지라고 해야할까. 나는 나를 본능적으로 방어해서 무사히 살아남았다. 그렇다고 해서 피해입은 친구들을 탓할 수 없는 것이다. 불과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으로 올라가는 시절이었음에도, 지금껏 언급되지 않는 변화 속에서 아이들을 둘러싼 움직임의 에너지는 극단적으로 치닫았다. 그래도 이건 약 15년 전의 이야기라 수위가 덜한 편이다. 현 시대를 사는 아이들에게는 N번방, 몸캠을 비롯하여 수많은 성착취물이 도처에 있다. 

 

아이들이 그 현장에 다가설 수 있도록 두는 것이 과연 자유일까, 안전한 공간에서 자신이 경험하는 변화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유일까. 이렇게 두고 보면 답이 너무나 명확한데, 아이들은 대안을 찾지 못해 폭주하는 것으로 자기를 표현한다. 비단 성적인 것에서만 문제가 될까? 아이들의 일상이 자유롭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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