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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나 Aug 27. 2024

밤톨머리 어린이를 기다릴 때

주변을 돌아봤을 때 어린이가 보이지 않는 풍경이 문득 낯설게 느껴진다. 의식하지 않은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의 동선이 성인들만 갈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된 것은. 고등학교 졸업 때 까지는 나 역시 어린 축에 속했을 것이다. 주변인이자 미성년으로 살아가는 동안 나는 전력을 다해 어른이 되고자 했다. 그렇게 도달한 어른들의 세계는 서울이었다. 서울에 오자마자 나는 미성년이었던 내가 갈 수 없는 곳들을 쏘다녔다. 홍대 앞과 대학로와 가평 엠티촌 같은 곳. 조금 더 지나서는 맥주집과 호텔과 심야영화관 같은 곳에도 갔지. 유흥이 좋았던 것은 아니고 자유로움이 좋았다. 누구도 나를 구속하지 않는 광활한 활동범위가 내게 있다는 것이 좋았다.  


직장인이 되었고 나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도서관에서 일했다. 저마다 좋아하는 책을 읽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여 보드게임도 하고 간식을 가져와 먹고 종이를 접고 때로는 노래도 불렀다. 나는 그런데 어느순간 아이들을 볼 수 없었다. 바이러스가 창궐한 뒤로 아이들은 집에 있었다. 돌봄이나 학원에 있을 때도 있었겠지만 도서관에는 오지 않았다. 이후로 나는 아이들을 볼 수 없었다. 지하철에도 핫플레이스에도 번화한 상권에도 아이들은 없었다. 주택가 골목을 기웃거릴 때도 아이들을 마주치기는 어려웠다. 아이들은 여전히 존재했을 것이므로 나는 다른 세계를 사는 것 같았다. 그들은 존재했을 것이다. 휘발되지 않는 곳에,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에. 


이십대 초반에는 부러 시간을 내 여행을 했다. 여수와 보성과 대구와 제주도와 원주를 오갔다. 다른 곳도 있었고 못가본 곳도 있었다. 그 시절은 가끔 그리웠다. 직장을 그만둔 나는 전주행 버스에 올랐다. 긴 여행 중에 잠깐 휴식처럼 들른 한옥마을에서, 나는 어린이를 보았다. 따뜻한 빛이 집마다 모여있고, 사람들은 저마다 원하는 간식거리를 사기 위해 줄을 섰다. 나와 일행은 해가 지기 직전에 숙소에서 나왔다. 이것저것 먹거리를 포장했다. 그가 먹고 싶다고 했던 것은 떡갈비와 바게트피자, 그리고 문어꼬치.


떡갈비를 포장하는데 어린이들이 잔뜩 줄을 서있었다. 이상하게도 아이들이 많은 날이었다. 머지 않아 어린이 날이고 그 날은 대체휴교를 하는 학교가 많았다고 한다. 떡갈비집 사장님이 말해주었다. 밤톨머리를 한 남자애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아주 어리지는 않았지만 초등학생이었다. 떡갈비 포차 앞에 진열된 오렌지맛 슬러시를 주문하는 중이었다. 이런저런 캐릭터 장난감이 길다란 슬러시 컵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오리와 고래와 문어와 당나귀 중에 무엇으로 고를까 고민하느라 한참 계산대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그 밤톨머리 아이의 뒷통수를 보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금방 해가 졌고 그래서 또 금방 어두워졌다. 낮에는 온화하고 아늑한 분위기에 취해서 전혀 추운 줄 몰랐는데 깜깜해지고나니 그렇게 춥더라. 사람들도 어떻게 그렇게 사라지는 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길을 걸었다. 빛이 꺼진 밤에는 역시 어린이가 없었고 나는 아까 본 어린이 손님의 뒷통수를 떠올리며 생각한다. 나는 언제부터 어린이가 아니게 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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