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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나 Aug 27. 2024

별명이 없는 어린이를 부를 때


보통 별명이 생기는 시기는 초등학교에 들어가 서로를 마음껏 넘나들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서로에게 가지는 자연스러운 호감과 언어적 유희가 합쳐져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나의 경우 오랫동안 불린 어린 시절 별명은 없다. 별명에 관해 남겨놓은 이야기도 없다. 그래도 한번 기억을 끄집어내본다. 아주 오래전에 살던 아파트의 풍경이 떠오른다. 해가 나직하게 뜬 오후였고, 옆집 살던 친구가 전자사전을 가지게 되었다며 그것을 보여주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우리는 동네 친구들의 이름을 모조리 검색해보았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는 살짝 상기되었다. 떨리는 일이었다. 


내 이름과 비슷한 단어는 없었다. 딱 맞는 검색결과는 찾지 못했지만 참고 자료로 생소한 단어가 등장했다. 도저히 알 수 없는 뜻이었는데, 초등생인 우리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한동안 그 단어를 이야기했다. 중학생 때도 별명을 지어 준 같은 반 친구가 있었다. 당시에 어떤 개그 코너가 유행했는데 그 코너를 맡고있는 개그맨의 이름이 나와 같았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생김새도 비슷해 한동안 성씨가 바뀐 채로 지냈다. 어린 시절의 별명이란 단순하게 이름을 변형시켜 만들거나 외모적인 특징을 포착한 것이니까.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릴적 별명이 많은 사람은 친구가 많았던 사람이라고.  


사춘기 이후에는 친밀한 관계를 맺는 동성친구들로부터 불리는 애칭같은 것이 생긴다. 나는 그런 것을 관찰하고 있었지만 성인이 될때 까지 한결같이 별명이 없었다. 친구가 많아진 최근에는 '인싸' 라는 신분을 얻었고 그것이 별명을 대신하기도 하는가 싶다. 가끔은 생각하게 된다. 내가 진입장벽이 높은 사람이라 모두를 경직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조금 더 만만한 사람이 되고 싶다. 별명이 없던 시절은 외로웠으니까. 외로운 시절의 나를 생각하다보면, 나도 쉽사리 그 애에게 다가갈 수가 없다. 오히려 고민을 하게 된다. 별명이 없는 어린이를, 마음껏 천진할 수 없어 높은 벽을 세우게 된 어린이를 어떻게 불러야하나 그런 고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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