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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나 Aug 27. 2024

내 안의 어린이와 화해할 때


비가 그치고 하늘은 개었는데 땅은 아직 축축한 그런 날이었다. 주일 오후 늦은 시간이었는데 이제 막 비가 갠 참이라 그랬는지 날이 밝았다. 예배를 마치고 교회 문 앞으로 나왔는데 아이들이 가득하게 모여서 놀고 있었다. 까르르 소리가 하늘까지도 솟을만치 굳센데, 몸집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조그만 아이들이었다. 


뭐가 그리 재미있나 싶어 무리 곁을 기웃거렸다. 놀라운 것을 발견했는데, 나뭇가지를 꺽어다가 숫자판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예전에 땅따먹기라고 종종 불렀던 사방치기 판을 깔아놓았다. 나뭇가지를 박차듯 밟으니 나뭇가지들이 힘껏 흩어졌다.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까르르르 웃으면서 아스팔트 바닥을 박차는 것을 보고 나는 나의 어린 시절 놀이를 떠올렸다. 


약수터에서 물을 길러와 놀이터에 모아둔 모래둑에 콸콸 부어대던 어린 날. 쇠고랑이 주렁주렁 연결된 그네 줄에 손을 다치던 어린 날. 분리수거장에서 레몬향 샴푸를 주워다가 유리공병에 옮기며 칵테일이라 우겼던 어린 날. 정글짐에서 뛰어내리던, 돌맹이를 모아 성을 쌓던, 물구나무 서기를 하던, 혼자 남은 미끄럼틀에서 노을을 감상하던 어린 날.  


그 때 나는 친구들이 하는 놀이에는 잘 끼어들지 못했던 것 같다. 경찰과 도둑, 술래잡기, 얼음땡, 그런 것들은 한사람을 소외시키기 딱 좋았고 그것이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벌벌 떨었다. 걱정하던 어린 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이들은 나를 보며 말했다. 선생님도 같이 하실래요? 나는 어린이들의 선생이었던 적 없지만 그 순간 그렇게 됐고, 그렇게 할 때 마다 어린이였던 나와 친구가 되었다. 웃는 마음으로 땅을 한번 박차보았다. 나뭇가지로 만든 작품을 사진으로 찍었고, 정말 너희들은 천재야, 이렇게도 한번 말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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