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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나 Aug 27. 2024

우리반에 있었던 일


언젠가 교육학 관련수업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개론수업 첫시간부터 나는 충격을 받았다. 교육자가 스스로의 분야를 정의할 때 '교육'은 '사람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하는 모든 의도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나는 의도를 가진 행위는 나쁜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의도'라는 말에서 오는 전략적인 어감 때문이었다. 어딘가 진실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문장을 마주한 뒤 한참 고민하다가 나는 그 정의를 받아들였다.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은 어렵고 그것이 긍정적이게 되려면 그건 훨씬 더 어려운 게 아닌가. 한 끼 밥상을 준비할 때도 여러가지 옵션과 과정을 준비하는데, 하물며 성장과 필연적으로 연결된 교육에 그런 과정이 없으면 안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이 정말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비교육적인 경험에 대해 예시를 들어보자면 역시 성장과정에서 만났던 공교육 현장이 떠오른다. 중학생이었고, 어느 날이었고, 한여름의 찌는 더위를 모두가 느끼고 있을 때였다. 오후였고, 기술과목이었고, 중년의 남자 선생이 수업에 들어왔다. 나는 쉬는 시간을 이용해 틈틈히 책을 읽고 있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붉은 손가락』. 아직 수업이 시작되기 전 교사가 교실에 들어오는 것을 봤고 곧이어 종이 쳤고 나는 책을 덮었다. 그리고 책상 위 교과서들을 쌓아놓은 탑 가장 윗자리에 그 소설을 쌓았다. 교사는 수업을 시작했고, 학생들은 졸기 시작했고, 교사가 버럭 화를 내더니 근거 없는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나는 약간 경직되었고, 눈치를 봤고, 그러다가 교사와 눈이 마주쳤다. 몇몇 친구들이 잠에서 깼고, 나는 교사의 눈을 피했다. 교사는 내 자리로 성큼성큼 다가와 붉은 표지의 소설책을 집어들더니 갑자기 온힘을 다해 책을 던졌다. 책은 칠판에 정통으로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당황했지만 가만히 있었다. 교사는 교탁 앞으로 가서 책을 주웠고 갈피를 끼워놓은 페이지를 중심으로 몇 장을 주욱 찢어버렸다. 친구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교사가 했던 말은 생생하다. "니가 나를 무시하고 이걸 봤잖아." 나는 상처받았고, 독서를 비롯한 여러 자율적인 행위를 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고등학생이었고, 어느 날이었고, 국어과목을 가르치는 담임의 수업시간이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전날 야간자율학습 때, 그 수업을 기대하며 지문을 먼저 읽었다. 글을 쓰고 싶었다. 담임은 말했다. 오늘은 체험하기가 있네, 진도는 다 나갔고, 시나 소설중에 골라서 이어쓰는거, 해보고 싶은 사람 있나? 나는 실망했다. 당연한 것이 아니니 특별한 요청이 없으면 활동을 생략하겠다는 뜻이었다. "저는 하고 싶은데요." 나는 요청했다. 그러자마자 친구들의 원성이 있었다. 교사가 잠시 우물쭈물 하는 사이 직접적으로 내게 짜증내는 친구도 있었다. "나대지 마라." 교사는 잠시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업을 일찍 끝내자고 말했다. 교실은 금방 시끄러워졌고, 나는 기분이 안좋았다. 혼자서 「체험하기」를 채워넣었다. 조금 더 마음이 맞는 사회교사에게 그 글을 가지고 갔다. 사회교사는 내 글이 좀 염세적이라고 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었니?" 나는 교실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떠올렸다. 그리고 교실로 돌아왔다. 나중에는 후회했다. 떠올린 일에 대해 이야기 할 걸, 기분이 안좋았다고 말해볼 걸. 물론 그것은 졸업을 하고도 한참 이후의 이야기이다.


그 시절 나는 경험한 것에 대해서는 맹신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도 지나가면 다 도움이 되겠지'. 하지만 아니었다. 상처받고 회복되지 못했던 순간들은, 평생 그의 그림자가 되어 약간의 한계를 만들고, 예상치 못한 에너지를 쓰게 한다는 것을 깨달게되었다. 어떤 경험은 슬프거나 충격적이지만 교육이 될 수가 있고, 또 어떤 경험은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듯 보이지만 실상 영양가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 역시 뒤늦게 알았다. 사람의 인생에서 교육적이지 않은 경험이란, 존재의 여부를 따질 것이 아니라 그 총량이 얼마나 되느냐는 것으로 이야기를 해도 모자라다는 생각까지 들곤 한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나쁜 가능성을 뚫고 안전하고 건강한 성인이 되었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빈틈사이로 주어진 선량한 교사들의 사랑이, 나의 마음밭에 충분히 자리잡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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