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을 받아보거나 사용해보았던 경험을 더듬어보자, 선생님 한 분이 떠올랐다. 그는 중년의 여성이며 내가 일했던 직장에 봉사자로 온 어른이었다. 내가 가르치던 학생의 어머니였고, 그는 한달에 한두번쯤 기관을 방문해서 다양한 클래스를 열었다. 자애롭고 따뜻한 미소, 겸손하고 느린 말투, 집중하는 눈빛. 그런 것들로 인해 나는 선생님을 좋아했다. 나는 재기발랄한 활동가였고,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살갑게 준비했다. 매일 성실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에 열두시간씩, 벌써 몇 달째. 성실했다.
그 날은 토요일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하루종일 아이들의 활동공간에서 청소를 하다가 오후 느즈막히 한숨을 돌리던 참이었다. 이상했다. 식은땀이 났고, 어지러웠다. 입술 안쪽에서 피맛이 느껴지는 것 같다가 곧 코에서 피가 났다. 그것을 먼저 발견한 것은 선생님이었다. 내가 너무 놀라지 않게 휴지를 가져다주셨다. 나는 코피를 닦았다. 선생님이 말했다. "안색이 안좋아요, 선생님." 나는 대답했다. "아, 괜찮습니다. 감사해요."
난 세수를 하고 돌아왔고, 선생님은 자리에 돌아가지 않고 내 안색을 한 번 더 살폈다. 그 자리에는 대표도 함께 있었다. 선생님을 앞에 두고 한참 자신의 사업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중이었다. 선생님이 "괜찮으세요?" 하고 물었고, 내가 대답하기 전에 대표가 말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했으니 하늘에 상급이 있을 겁니다." 나는 마음이 상했다. 하지만 웃었다. 불과 2년 전인데,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 웃어야 하는 줄 알았다. 직원이니까, 일하는 사람이니까, 특별한 사명감이 있으니까 그래야 한다고. 그 때 선생님이 정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냈다. "아뇨. 지금 당장 쉬어야 할 것 같은데요." 대표의 표정이 굳어졌다. 선생님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을 더했다. "또 코피 나면 어떡해요." 나는 그 목소리가 정말 반가웠다.
그곳에서는 종종 무리하게 됐다. 더이상 더할 수 없이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더 열심히 해야한다는 목소리를 마주했다. 그럴 때 나는 잠시 멈추고 선생님의 단호한 말투를 흉내내 봤다. "아뇨. 지금 당장 쉬어야 할 것 같은데요." 꽤 말맛이 있었다. 하지만 밖으로 뱉어보진 못했다. 나에게는 그렇게 훌륭한 딕션이 나오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짧은 문장에 담긴 에너지는 기억할 수 있었다. 그 힘을 빌려다가 조용히 읖조렸다. 누군가에게 그런 일을 당하는 걸 목격했을 때 나도 모르게 말하게 되면 좋겠다, 그리고 뒷 문장에 덧붙여야지. 생각하면서. 아직은 그런 말을 뱉을 만한 일이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하게 되었다. 지금, 당장, 쉬어야 할 것 같다고.
퇴사 후 선생님 댁에 초대받아 간 일이 있다. 나의 제자를 포함한 세 자매가 사이좋게 둘러앉아 불판을 뒤적거렸다. 스위스 요리 라끌렛을 준비해주셨고, 함께 앉은 식탁에서 식사 기도를 했다. 나는 기도 내용을 잘 기억해뒀다가 그 날 일기에 내용을 적었다. "사랑하는 하나님, 우리가 좋아하는 선생님을 초대했어요. 함께 먹는 교제속에서 우리의 관계가 더욱 가까이 아름다워지기를 소원합니다." 나는 알았다. 문득 알 것 같았다. 선생님이 베푸는 사려깊은 마음은, 언젠가 만난 나같은 사람의 마음에 자리잡는다는 걸. 그리고 언젠가 나는 또 만나겠지. 선생님의 딸들과 같은, 그리고 또 그때의 나와 같은 어떤 어린 사람을. 또 알 것 같았다. 그런 과정의 반복에 의해 하나의 사회가 이루어 진다는 것을. 가끔 무리하는 나를 만날 때, 그 기도의 문장을 꺼내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