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여행기 시리즈는 매주 금요일 저녁 8시에 연재 예정입니다.
The English Rose Cafe and Tea Shop. N이 런던의 괜찮은 로컬 tea room이라며 추천한 곳이다. H와 내가 가게 앞에 도착하자 이미 다섯 팀은 넘게 대기를 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한국 사람을 찾으려고 대기열의 사람들 얼굴을 차례로 훑자, N이 동행이냐며 우리에게 먼저 물어왔다. N은 프로필 사진으로 얼굴을 미리 볼 수는 없었는데, N의 첫 인상은 우선 목소리가 크고 명료했고, 직원에게 대략의 대기 시간을 물을 때는 영국식 발음과 함께 차분하지만 자신감 있는 어조가 느껴졌다.
Tea room이다 보니 느긋하게 수다를 떠는 사람도 있을 테니, 여기서 더 기다리는 것보다는 근처의 다른 카페를 가기로 했다. N은 근처에 가본 카페가 있다며, 베이커리를 여러 종류 파는 그 곳으로 가자고 했다. 빵이 가게 내부의 인테리어의 일부인 듯, 제조가 완료된 빵이 벽에도 진열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편한 곳에 자리를 잡아서 앉으면 되나요?"
"그럼요."
N이 점원에게 자연스레 물으며 자리를 잡았다. 그녀의 억양, 발음은 마치 영국인들의 일상적인 대화를 듣는 듯 했다. 우리는 연어 파니니, 닭고기 파니니, 각자의 음료를 시켰다. 나는 따뜻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다들 다른 여행지는 어디 가실 계획이에요?"
"저는 영국에 있다가 내일 핀란드로 넘어가요."
"저도 내일 영국을 떠야 하는데, 아이슬란드 동행이 취소되어서 지금 어디로 갈지 얼른 정해서 비행기 티켓을 사야 해요."
H는 지금은 여행지를 정해 비행기 티켓과 숙소를 예약해야 할 것 같다며, 잠시 둘이서 대화를 하고 있을 수 있냐고 물었다. N은 자신이 오늘 늦게 된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실은 제가 친구랑 둘이서 중국 여행을 가기로 했거든요. 저는 중국어를 할 줄 알고, 그 친구는 아예 못 해요. 그런데 제가 영국에서 비자 관련해서 급히 해야 하는 일이 생겨서 그 친구 혼자서 중국을 가게 되었어요. 오늘 아침에 그 친구가 중국 호텔에 도착했다는데, 아니 거기 호텔 데스크 직원들 중 영어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 아예 없다지 뭐에요? 그래서 제가 대신 전화로 얘기를 하며 해결하려고 하는데, 또 그게 해외로 전화를 하는 거다보니 전화 요금 문제도 있고 해서... 아무튼 이런 일이 있었어요. 그래서 박물관을 못 가고 늦게 합류하게 되었네요."
N은 요즘 MZ 예능인으로 주목받으며 TV에 자주 출연하는 한 여자 연예인과 겹쳐보이는 면이 있었다. 쾌활하고 높은 텐션에 말투도 시원시원한 면이 그랬다. 친구 J의 인간관계 에너지 이론에 비추어보면 (Day 2 여행기에 언급되었다), 나보다는 최소 몇 단계 이상 에너지가 높은 것 같았다. 그렇지만 말을 끊는다든가 혼자 대화 방향을 고집스레 이어간다든지 하는 면은 없었고, 기본적인 매너와 배려심을 갖춘 사람이었다. 대신 에너지 높은 사람이 풍길 수 있는 빠른 템포의 유머나 유쾌함을 지니고 있어, H까지 세 명의 동행 조합이 나름 균형있게 꾸려진 듯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내 얘기를 굳이 먼저 많이 꺼내기 보다, 그녀에게 여러 화제를 던지며 얘기를 좀 들어보기로 했다. 이어서 그녀의 런던 방문에 대해서도 물었다.
"N은 여기서 멀지 않은 소도시에 살고 계시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런던으로 여행을 오신 거에요?"
"네. 친구랑 같이 가기로 한 중국 여행 일정이 틀어지면서 저 혼자서 가까운 런던 여행을 가기로 한 거죠."
"그래서 같이 다닐 한국인 동행을 구하신 거군요?"
"맞아요. 예전에 다른 유럽 국가를 여행할 때도 유랑에서 구한 동행들과의 좋은 기억이 있거든요. 또 제가 영국에 살고 있으니, 같이 여행하는 한국인들에게 영국에 대해 소개해줄 점들도 있을 것 같고, 아무튼 그들에게도 영국에 대한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N이 영국이라는 나라를 좋아하고, 또 사람들에 대한 정을 기본적으로 지닌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대기 때문에 가지는 못 했던 tea room, 지금 방문해있는 카페 모두 N의 추천으로 정한 동선이고, 중간중간 점원과의 필요한 소통은 그녀가 유창한 영국식 영어로 자연스레 맡은 덕에 나는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영국에서 사는 건 어떤가요? 한국과 비교해 지낼 만 한가요?"
"저는 쉐어 하우스에서 살았어요. 다른 외국 친구들과 집을 공유하는 건데, 방이 세 개 쯤 있고, 각 방에는 두 명씩 지내는 거죠."
"재밌을 것 같기도 한데, 여러 사람들과 항상 같이 산다는 건 아무래도 좀 불편한 것도 있을 것 같네요. 게다가 또 외국이잖아요."
"네 맞아요. 그 친구들, 집안 청소에 대한 관념이 좀 달라서 그게 저는 제일 불편했어요. 왜 청소는 얼마에 한 번씩 하고, 설거지는 어떻게 하고 이런 것들 있잖아요."
"저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본 적은 없는데, 그게 좀 부딪히는 지점일 것 같아요. 저는 설거지는 무조건 그 끼니를 먹고 나서 직후에 하자는 주의에요."
"저는 꼭 그 끼니까지는 아니어도 최소 그 날은 해야 한다는 주의거든요. 그런데 이 친구들은 부엌에 그냥 아무렇지 않게 쌓아두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가족들을 보러 잠시 떠나 있는다고 하고, 그 전에 자기가 어질러 놓은 것들을 제대로 안 치우고 갔지 뭐에요? 그래서 그건 제가 한 마디 했죠, 하하하. 이제부터 제대로 안 치우면 아예 버릴 수도 있으니, 각자의 것들은 적당히 잘 치우자고 말이죠."
"효과가 좀 있었나요?"
"실제로 갖다 버린 것들이 좀 있긴 합니다, 하하하"
유학을 결심하고, 낯선 나라에서 잘 버티며 정착할 생각까지 하는 모습에서 N은 스스로의 삶에 대해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것 같았다.
"그러면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유학을 결심하신 건가요?"
"네, 저는 H 대학을 다녔어요. 통번역 쪽으로 대개 진로를 택하는 학과에 다녔었죠. 저는 출판 쪽 업계에 관심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한국보다 미국이나 영국이 시장도 훨씬 커서 유학 고민을 하게 되었죠. 그러다가 코로나 시기에 유학을 결심하게 된 거 같아요."
"그나저나 발음이 거의 영국 현지인 같은데요?"
"아유, 아니에요. 저도 부족해요."
"한국에서부터 그런 발음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고, 따로 와서 연습을 하신 건가요?"
"네 연습을 하긴 했어요. 근데 그거 아세요? 유럽 내 국가 중에는 영국식 발음이 아니라 미국식 발음을 하면 은근 무시하고 놀리는 경우도 많아요. 제 친구랑 프랑스에 갔을 때의 이야기인데요, 길가에서 먹을 걸 사려고 친구가 미국식 영어로 말을 했더니, 그 사람이 비꼬듯이 제 친구 발음을 따라하며 되묻는 거 있죠? 그래서 저도 영국식 발음을 익히려고 의도적으로 연습을 했어요."
"인종 차별 같은 게 요즘도 여전히 있는 거군요?"
"그럼요. 저도 영국 와서 몇 번 당했었어요. 최근에 영국 정부에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비자 발급 조건을 보다 엄격하게 바꿨거든요. 영국 내에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반감도 은근히 있어요. 제가 한 번 버스를 타서 앉아 있는데, 할아버지 한 명이 서서 제 자리를 보며 뭐라고 중얼거리며 욕을 하는 거에요. 저는 자리를 양보해야겠다고 생각해 얼른 비켜드렸는데, 외국인 노동자들이 나가야 한다며, 당신이 비킨 자리는 앉기도 싫다며 소리를 치고 계속 욕을 해대는 거 있죠. 옆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겨우 말리고 저는 이내 내려서 자리를 피했죠. 한 몇 번 당하다 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대응에 익숙해진 거 같네요. 뭐 물론 기분이야 유쾌하지는 않지만요."
N의 자신감 있는 태도, 유창한 영국식 발음 뒤에는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느라 겪어왔을 여러 어려움들이 있었겠구나 싶었다. 나는 따뜻한 커피에 우유를 조금 붓고, 설탕을 여러 차례 부어서 마셨다. 한국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신 적이 거의 없기도 하지만, 이곳의 따뜻한 커피는 유독 쓴 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저는 일단 내일 갈 여행지를 정했어요. 독일 뮌헨이에요."
H가 핸드폰으로 탐색을 계속 하다가 결론을 내린 듯 말했다.
"오 좋네요. 독일도 너무 좋은 여행지에요."
"그런데 비행기가 내일 아침 6시네요. 오늘 밤에 공항으로 가서 공항에서 대충 잠을 자고 비행기를 타야겠어요."
나라면 절대 그렇게 무리한 일정을 안 잡았을 텐데, H는 여행에서 감당 가능한 고생의 범위를 나보다 훨씬 넓게 잡고 있는 듯 했다. 거기에서 얻는 것이 분명 많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비행기와 숙소를 잡았으니 다행인 거겠죠? 제 기준으로는 그래도 너무 힘든 일정인 거 같아 보이네요, 하하하."
"뭐 그렇긴 하죠. 그래도 저는 여행에서 이런 고생을 좀 해도,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게 많다는 입장이에요. 뭔가 어려움이 닥쳐도 또 결국 어찌어찌 해결을 해서 여행을 해나가게 되긴 하거든요. 어쨌든 뭐 무사히 살아있고, 오늘 먹을 거랑 잘 곳은 있는 거잖아요? 하하하. 뭐 한 번 여권도 아예 잃어버려서 대사관도 가보고, 그러면서 인생을 배우는 거죠 뭐. 하하하하."
내 말에 H가 웃으며 답했다. 나는 유럽 내에서도 비교적 치안이 좋다는 영국, 핀란드로 여행을 왔고, 여기서는 항상 패딩 안에 조그만 힙색을 항상 메고 그 안에 여권과 지갑을 넣고, 중간중간 제대로 잘 있는지를 확인한다. 길가에서 핸드폰을 꺼내 지도 검색을 할 때면, 혹시나 누가 빠르게 나에게 접근해와 핸드폰을 낚아채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양손으로 꼭 핸드폰을 움켜쥔다. H와 비교해보면 나는 여행으로 정의하는 범위 자체가 더 한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에서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고생이나 불확실성, 손해의 범위 측면에서 말이다. 예를 들어, 내가 며칠 전 레바논 식당을 방문한 것은 내가 감당 가능한 불확실성이었다. 설령 음식의 간이 너무 강해서 배를 제대로 채우지 못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 손해보다는 레바논 음식을 새롭게 도전해보자는 쪽에 걸었던 것이다. 하지만 예를 들어 영국 입국, 핀란드 출국 일정만 미리 잡아두고, 유럽 내에서의 이동을 현지에 가서 즉흥에 맡기는 것은 내게는 감당하고 싶지 않은 불확실성이다. 설령 비행기 표가 없다거나, 있더라도 H가 구한 것처럼 새벽에만 있거나, 그래서 예상치 못하게 공항에서 밤을 지새워야 한다든지 이런 상황 말이다. 다른 사람의 그저 그런 패키지 해외 여행 이야기는 듣는 것이 다소 지루할 때도 있는데, H의 여행 얘기를 듣는 것은 재미있는 지점이 있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 면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에 나름 주관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저녁은 Aphrodite Taverna라는 그리스 식당에서 먹기로 했고, N이 전날 미리 전화로 예약을 해두었다. 저녁을 먹기까지 약 2시간이 남았다. 나는 맡겨둔 세탁물을 찾고, 새 숙소 객실 체크인을 한 뒤에 저녁 식사를 하는 식당으로 바로 합류하겠다고 했다.
"헉! S.H는 부자인가요? 세탁물을 세탁소에 맡기다니요, 하하하."
N이 웃으며 물었다. 안 그래도 어제 세탁소에 세탁물을 맡겼는데, 속옷, 반팔 티셔츠 등 얼마 안 되는 세탁물 양이었는데 한국 돈으로 2만원이 넘었다. 그래서 너무 비싸다 싶으면서도, 나의 여행 일정으로는 어차피 통틀어 한 번만 세탁을 맡기면 되니 그냥 맡기기로 했었다. 그런데 영국에 사는 N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세탁물을 세탁소에 맡기는 것이 사치로 보였던 것이다. 여기서는 세탁을 맡기는 것이 원래 비싸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여행 기간이 길지도 않고, 호텔에서 손빨래를 하는 것도 귀찮은 일이니, 눈 딱 감고 2만원 쓴 셈 치기로 했다.
세탁물을 찾는 과정과 객실 체크인은 순조로웠다. 식당은 호텔에서 버스 타고 약 10분. 호텔에서 나올 때만 해도 비가 안 왔는데, 버스에서 내리니 비가 제법 내렸다. 영국은 이런 날씨가 많다. 패딩 모자를 덮어썼지만, 그래도 패딩 모자가 꽤나 젖을 정도였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N의 이름을 말하고 식당에 먼저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N과 H는 소호 거리에서 쇼핑을 하고 왔다. 나는 소호 거리, 쇼핑 모두에 흥미가 별로 없으므로, 잠깐 떨어졌다가 합류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N은 전에 이 식당을 한 번 방문했었고 좋은 기억이 있었다고 했다. 그녀는 우리에게 자연스레 starter 메뉴를 추천해주었다. 과일과 야채 그 사이 쯤 되어 보이는 음식들 몇 접시가 나왔고, 주문한 스프도 나왔다.
"S.H는 오전에 스타벅스에 미리 와서 책을 읽고 있던데, 원래 책 읽는 걸 좋아하시나봐요?"
"사실 평소에는 잘 못 읽어요. 다른 일들에 우선 순위가 밀려서요. 대신 여행 올 때 소설을 한 권 사와서 읽는 걸 좋아해요. H도 책 읽는 걸 좋아하나요?"
"네 종종 읽어요. 최근에 한국 소설 중에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었네요."
"저도 지난 학기 문학 수업에서 읽었는데 반갑네요."
N도 예전에 읽은 책이라서, 우리 모두 읽은 책이라는 공감대가 하나 생겼다.
"저는 문학 수업에서 읽으라고 해서 읽었는데, 인물이나 스토리야 잘 그려지는 소설이었지만 외국에서도 유명해질 만큼 뭔가가 있었나 싶기는 했어요."
"아무래도 여러 방면의 해석이 가능하다는 게 그런 의미가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외국에 상 종류가 되게 많아요. 각각의 상마다 중요시하는 가치가 다르니, 그 중 잘 맞는 것이 있어 상을 탄 걸 수도 있구요."
N이 생각을 덧붙였다. 우리는 starter와 스프를 어느 정도 다 먹고, 다진 고기에 튀김 옷을 입힌 요리, 닭고기와 구운 야채, 소고기와 감자 요리를 main 요리로 시켰다. <채식주의자> 제목에서도 알 수 있지만, 소설의 주요 설정 중 하나가 주인공이 갑자기 채식을 하게 된다는 것이어서, 우리의 대화 화제는 자연스레 식성에 대한 것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한국보다 비건 이슈가 심하죠?"
"네. 여기는 국가 단위에서도 그런 걸 신경 쓰죠."
H가 물었고, N이 답했다.
"그런데 저는 동물 보호를 이유로 채식을 한다며 그걸 떠벌리고 다니고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채식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좋게 보이지는 않아요. 한편으로는 육식을 하는 사람들의 식성도 존중받아야 하는 건데, 무슨 나쁜 짓을 하는 것 마냥 몰잖아요."
흥미롭게도 H는 며칠 전 동행했던 Y와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N이 이어서 덧붙였다.
"그것도 그렇지만, 저는 그걸 전략적으로 돈벌이에 이용하는 사람들에 특히 부정적이에요. 일명 스피커 (speaker)라고 하죠. 예를 들어 육식은 동물을 해치는 행위이니 채식을 해야 한다는 다소 과격한 발언으로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 인플루언서가 돼요. 지지자도 있고 욕도 먹겠지만, 일단 관심을 많이 받으니까요. 저는 출판업계에 있다 보니 그런 사람들이 인플루언서 지위를 이용해 책을 쓰는 것들도 보게 되거든요. 그런 책들은 제법 잘 팔려요. 그런데 이게 맞나 싶죠. 세상에 진정 도움이 되는 일이기는 한지. 그런데 그에 비해 돈은 쉽게 버는 것 같고. 인플루언서라는 게 직업처럼 되는 것에 저는 부정적이에요."
H는 이어서 식성에 대한 규제에 대해서도 말을 꺼냈다.
"최근에 정부에서 개고기 식용 금지를 추진하려던 거 봤어요?"
"저는 개고기를 먹어보지는 않아서 그런 뉴스에도 별 관심은 없었던 것 같네요."
나는 개고기를 먹어본 적도 없다보니 그런 뉴스 자체가 별로 눈에 안 들어왔었는데, H는 주의깊게 본 모양이었다.
"저도 개고기를 특별히 좋아해서 그런 건 아닌데, 좀 더 근본적으로 개인의 식성을 국가 차원에서 규제하는 게 맞냐는 얘기죠. 이거 생각해보면 굉장히 위험한 거 아닌가요?"
"유럽에서는 더 해요. 영국 사람들도 강아지는 애완견이자 동반자이라며, 그걸 먹는 걸 아주 야만적으로 보죠."
"만약 이런 제도가 생긴다면, 그 다음에는 또 다른 음식이 금지의 대상이 자연스레 될 수도 있고, 그래서 저는 좀 위험한 문제라고 봐요."
며칠 전 Y도 그렇지만, H와 N도 여러 사회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또 대화에서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내가 지내온 환경에서는 이런 대화 주제가 화제에 오른 적이 거의 없었다. 여러 학과가 섞인 동아리 모임에서도 그렇고, 평소에 자주 보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렇고. 한국 사회가 최근에 이런 논쟁적인 대화를 하는 것에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볼 수도 있고, 아니면 여행 동행은 한 번 보고 안볼 수도 있는 사이이니 좀 더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해보는 것일 수도 있다. 다행인 것은 의견을 펼친 동행들 모두 큰 틀에서 내가 수용 가능한 범위의 의견을 주장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는 다행이었고, 그 덕에 흥미로운 대화 흐름이 이어졌다.
전반적으로 N이 이야기를 하는 비중이 높기도 하고 또 상대의 반응을 적절히 보며 재미있게 대화를 풀어나가는 능력도 지니고 있어 당연히 외향적인 성향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N은 MBTI 성격 검사를 해보면 내향형이 나온다고 했다. 자신이 평소에 아주 외향적이지는 않은데, 이곳에서는 한국에서 온 동행들에게 영국에 대한 좋은 기억을 남겨주고 싶어서 여러 이야기들을 들려주기도 하고, 식당 예약, 주문 등 소통도 도맡아서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N은 유학을 떠난 날 가족들의 반응에 대한 에피소드도 들려주었다.
"저희 부모님이 웬만한 성향들이 정반대에요. 어머니는 기독교, 아버지는 무교이죠. 어머니는 전라도 분, 아버지는 경상도 분이라, 흔히들 말하는 지역 감정이 심한 두 지역 출신이시죠. 또 교육관도 어머니는 비교적 자녀들 뜻을 들어주려 하시는 것에 반해, 아버지는 확실히 보수적이세요. 가부장적인 면도 약간 있으시고요. 성인이 되어서 귀를 뚫으려는 것에 대해서도 뭐라고 하셨죠."
"그 정도면 두 분이 결혼을 하시게 된 게 신기한 거 아닌가요? 하하하. 요즘도 많이 싸우시나요?"
"뭐 크고 작게 갈등은 있으시죠. 그래도 오래 같이 살다 보니 또 맞춰가며 사시는 것 같아요. 아무튼 그래서 제가 유학을 간다고 하니 아버지가 반대를 하셨어요."
"아무래도 혼자 나가서 사는 것에 대한 걱정인가요?"
"네, 그렇죠. 영국으로 가는 날 가족들이 모두 공항으로 배웅을 나왔는데, 나중에 어머니께 전해들으니 그 날 집으로 돌아가서 아버지가 밤에 소주를 그렇게 드시면서 눈물을 흘렸더라죠?"
"역시 마음 속에서야 자녀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던 거네요. 다만 그 표현 방식이 조금은 과도한 통제로 이어진 것 같지만요."
밖에는 비가 계속 조금씩 내리고 있었고, 테이블이 10개 정도 있는 식당에는 우리를 포함해 세 테이블 정도만 차 있었다. 덕분에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하며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H는 바로 반대 방향으로 가느라고 먼저 헤어졌다.
"오늘 즐거웠어요. 내일 새벽에 비행기 무사히 타고 가세요. 뮌헨에서도 즐거운 여행 되시고요."
"네, 고마워요. 다들 덕분에 즐거웠어요."
나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고, N과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아 참, 아까 S.H는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한 번 드셔보고 싶다고 했죠? 패딩턴 근처의 괜찮은 곳이 있는지 한 번 저도 찾아보고 카톡을 드릴게요. 보통 누군가의 이름을 따서 OO's house 뭐 이런 이름들이 좀 괜찮아요, 하하. 가게 안에 신문을 보는 영국 할아버지들이 보이면 그 집 괜찮게 하는 집이라는 뜻이죠."
버스 정류장 앞 횡단보도에 금방 도착했고, 나는 패딩 모자를 덮어쓰며 N에게 인사를 건넸다.
"내일 아침에 브런치 카페를 꼭 가봐야겠어요. 오늘 하루 동행 즐거웠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저도 즐거웠어요. 내일 핀란드도 잘 다녀오세요."
10분 정도 버스를 타고 2성급 호텔의 객실로 들어와서 영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맞았다. 누워서 잠을 청하려고 보니, 이곳의 단점 두 가지 정도가 느껴졌다. 옆 방과 복도와의 방음이 거의 안 된다는 것이어서 말 소리, 발걸음 소리 등이 꽤 선명하게 들렸다. 또, 커튼이 완전히 창문을 가려주지는 못해서 패딩턴의 밝은 가로등 불빛이 깜박일 때마다 그 깜박임이 침대에까지 느껴졌다. 그래도 위치가 좋고, 객실 내부에는 별다른 단점이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없었고, 이 정도면 가격 대비 훌륭한 숙소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