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달리는 이유와 달리기를 통해 배운 것들 7
9월 20일, 나의 첫 LSD 훈련을 마치고 발목에 느껴진 통증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5일간 몸을 쉬게 하기로 했다. 이 휴식 기간에, 나는 끊임없이 마라톤 준비에 대해 생각했다. 풀코스 마라톤을 준비하면서 신체 능력을 한층 끌어올리기 위한 방법으로, 한 번에 좀 더 긴 거리를 달리는 계획을 세웠다. 10월 8일 예정된 하프 마라톤을 앞두고, 적어도 10km를 세 번은 완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9월 26일, 휴식기를 마치고 첫 10km 달리기에 나섰다. 발목의 통증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1km에 6분 31초라는 느린 페이스를 유지하며, 1시간 5분 동안 조심스럽게 달렸다. 이번 달리기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장거리 달리기의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9월 28일, 긴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다. 연휴의 첫날과 그다음 오전은 나에게 온전한 휴식의 시간을 주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회복에 집중했다. 9월 29일, 추석 당일이 되자 발목의 상태가 크게 나아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날, 나는 두 번째 10km 달리기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저녁 8시가 되자 나는 러닝화를 신고, 몸을 풀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날씨는 18도로 선선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예쁘게 꽉 찬 커다란 보름달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부대에서 가족과 떨어져 보내는 명절은 쓸쓸함으로 가득 찼지만, 그 환한 달빛 덕분에 평소 어두웠던 부대가 한결 밝아 보였다. 나는 그 밝게 빛나는 보름달을 친구 삼아, 1km에 5분 32초의 페이스로 달렸다. 55분 25초 만에 10km를 완주하고 나니, 몸 상태가 점점 좋아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길게만 느껴지던 추석 연휴가 어느덧 끝자락을 향해갔고, 연휴의 마지막 날인 10월 1일에 나의 두 번째 하프마라톤 전 마지막 10km를 달리기를 준비했다. 기나긴 연휴 동안의 휴식 덕분인지 몸 상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발목의 통증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은 컨디션도 좋은 만큼 욕심을 좀 내어 빠르게 뛰어보자고 결심했다. 처음 5km 구간에서 나는 1km에 5분 17초라는 빠른 페이스를 유지했다. 몸이 예상외로 가볍게 느껴지자, 나는 과감히 속도를 올려 1km에 4분 55초의 페이스로 남은 거리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휴대폰에서 10km를 달렸다는 안내 음성과 함께 나의 기록이 나왔다. 51분 43초. 이는 지금까지의 10km 달리기 기록 중에서 가장 빠른 기록이었다. 그동안의 단거리와 장거리 훈련의 효과가 나타나는 듯했다. 10km를 빠르게 완주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힘이 들거나 숨이 차지 않았다. 예전에 비해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실감하며, 추석 연휴의 마지막 달리기를 마무리하였다.
추석 연휴가 서서히 그 막을 내리고, 10월의 첫 주가 시작되었다. 이 기간에 나는 2일, 5일 그리고 6일에 각각 5km를 달리며 두 번째 하프마라톤 대회를 위한 준비를 마무리했다. 그러고는 어김없이, 마라톤 대회 하루 전인 10월 7일 토요일 아침, 서울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대회 전날은 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다음 날 있을 대회를 준비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대회 당일, 10월 8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대회 출발 지점인 광화문역으로 향하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광화문역에 도착할 때쯤, 지하철 안은 이번 대회의 티셔츠인 ‘SEOUL RACE'라는 문구가 박힌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역에 도착한 후, 나는 같은 티셔츠를 입은 수많은 러너와 함께 역 밖으로 나섰다. 세 번째 마라톤 대회 참가였기에, 이제 그 현장의 분위기는 나에게 신기함보다 익숙함으로 다가왔다. 여유롭게 그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광화문역 출구에서 군의관을 만나 환복을 하고 서로의 배번표를 달아주었다. 짐을 맡긴 후, 우리는 청계광장 앞 세종대로의 출발 지점으로 향했다. 기온은 영상 15도로 선선했고,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 해가 내리쬐지 않았다. 뛰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다. 전날 휴식을 취한 덕분에 몸 상태도 좋았고, 강한 자신감이 솟구쳤다. 오늘, 나는 분명 좋은 기록을 세울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출발시간인 8시 정각 5초 전이되자, 커다란 음악 소리와 함께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고, 카운트 다운이 끝남과 동시에 우리는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행사 진행자는 출발 지점을 지나는 참가자들의 이름을 크게 불러주며 응원을 해주었다. 8시 5분쯤 우리는 출발선을 지나 전진하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나는 나이키 러닝 앱을 실행하는 동시에 줄 이어폰을 귀에 꽂으며, 앞으로 힘차게 달렸다.
광활한 세종대로를 따라 우리의 달리기가 시작됐다. 눈앞에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우뚝 서있었고, 동상을 지나자 곧 웅장한 광화문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 달리기 2023‘이라는 대회의 이름에 걸맞게, 정말 서울을 달리는 기분이 물씬 났다. 초반에는 사람들이 많아 1km에 5분 43초라는 페이스로 광화문을 향해 천천히 달렸다. 광화문에서 우회전하여 경복궁 돌담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왼쪽에는 고궁의 돌담길이, 오른쪽에는 현대적인 상가가 늘어서 있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독특한 공간 속을 달리는 듯했다. 주행코스가 다른 대회보다 약간 좁았기에, 사람들 사이를 뚫고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욕심을 버리고 다른 이들의 발걸음에 맞춰 천천히 달렸다. 그렇게 우리는 청와대 방향으로 계속 나아갔다. 청와대로 가는 경사진 길은 힘들 것으로 생각했지만, 부대의 언덕길을 수백 번 오르내리던 것이 도움이 되었는지 전혀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돌담길을 따라 계속 달리다 보니 어느덧 3km 지점에 도달했다. 우리는 다시 세종대로로 진입하여 숭례문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때까지의 평균 페이스는 1km에 5분 42초였다. 초반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나는 서울의 거리를 내 발아래 느끼며 달렸다.
숭례문을 향해 광활한 세종대로를 따라 달리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이전보다 넓어진 주행코스는 우리에게 조금 더 여유롭게 달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다시 이순신 장군 동상을 지나며, 우리는 넓은 대로를 따라 힘차게 나아갔다. 주말에 나들이를 떠나던 시민들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우리들의 질주를 지켜보며 열렬히 응원해 주었다. 그들의 응원 소리가 내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5km를 지나가며 숭례문이 점점 더 가까워졌다. 초등학생 때 견학으로 잠깐 들린 적 외에는 오랫동안 본 적이 없던 숭례문을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달리기를 하면서 마주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숭례문을 지나, 우리는 왼쪽으로 꺾어 한국은행 방향으로 계속 달리기를 이어나갔다. 조금 달리자, 왼편으로 급수대가 보였고, 나는 재빠르게 다가가 이온음료가 든 컵을 왼손으로 들고는 조금씩 목을 축이면서 달렸다. 조금 더 달리자, 한국은행이 보였고, 우리는 다시 한번 왼쪽으로 꺾어 청계천 방향으로 향했다. 6km 지점에 도달하자, 시청 건물이 저 멀리 보였다. 우리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을지로 입구역 쪽으로 향했다. 을지로 입구역에 다다르니 주행코스 양옆으로 고층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고, 지난번 하프마라톤 대회에서 여의도 도로 한복판을 달릴 때의 느낌이 다시금 살아났다. 그렇게 우리는 종로의 대표적인 역인 을지로 입구역, 을지로 3가역 그리고 을지로 4가역을 지나면서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반환점을 지나 왼편으로 달리는 또 다른 러너들이 큰 소리로 화이팅을 외치며 지나갔고, 우리도 같이 화이팅을 외치며 계속 전진했다.
역전을 따라 이어지는 이 주행코스는, 사람들의 일상과 맞닿아 있었다. 보도를 따라 달리며, 수많은 시민이 발걸음을 멈추고 우리의 행진을 지켜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러닝크루의 멤버들은 자신의 크루원이 달리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열정적으로 응원했다. 과잠을 입은 대학생들의 응원도 눈에 띄었다. 그 어느 대회보다 일반 시민 그리고 크루 멤버들의 응원 소리를 많이 들을 수 있어 좋았다. 그 순간 누군가를 저렇게 열렬히 응원할 수 있는 그들의 열정이 부러웠다. 나는 달리면서, 과연 나도 누군가를 저렇게 열정적으로 응원한 적이 있었는지 생각에 잠겼다. 7.5km 지점에 도달했을 때, 급수대가 보였지만 목이 마르지 않아 그냥 지나쳤다. 을지로 5가 사거리에서 우리는 반환점을 돌아 반대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주행코스 우측에는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킨 듯한 빛바랜 간판을 달고 있는 점포들이 오밀조밀 모여있었다. 화려한 서울 중심가를 지나 다른 모습의 서울로 이동하는 것은 마치 다른 세상을 오가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좁은 길을 벗어나 대로로 다시 진입했을 때, 우리는 이미 10km 지점에 도달해 있었다. 6km부터 10km 구간까지의 평균 속도는 1km에 5분 15초였다. 초반보다 빨라진 페이스였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다. 새로운 하프마라톤 기록을 세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설레기 시작했다.
드넓은 대로를 벗어나, 우리는 청계천으로 향하는 오른쪽 길목으로 들어서며 달리기를 이어나갔다. 청계천 입구의 좁은 길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들은 줄을 지어 서서 우리를 열렬히 응원했다. 우리는 청계천을 왼쪽에 두고, 그 좁은 길을 따라 나아갔다. 청계천의 물길을 따라 펼쳐진 길은 그 자체로는 특별한 특색이 없었지만, 양옆으로 응원하는 사람들의 열기가 길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12km 지점. 여기서 미리 준비해 온 파워젤을 하나 까서 조금씩 베어 물며 달리기를 이어나갔다. 이 보조 식품 덕분인지는 몰라도 별다른 힘듦을 느끼지 않고 계속 달리기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주행코스 우측에 시장의 상인으로 보이시는 몇몇 분들이 나와 우리의 달리기를 지켜보며 대단하고 멋있다며 엄지를 치켜세워주셨다. 답례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어느덧 15km 지점. 우측으로 급수대가 보였고, 물이든 컵을 집어 들어 재빨리 마시고는 다시 달리기를 이어나갔다. 페이스를 확인해 보니 1km에 5분 10초의 페이스로 달리고 있었다. 이 지점에서 별 무리 없이 이 정도 페이스로 달리고 있는 나 자신이 신기했다. 15.5km 지점에서 청계천을 따라 반대 방향으로 반환하고 달리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왼쪽 보도에는 러닝 크루 멤버들이 크루명이 새겨진 커다란 깃발을 흔들며 화이팅을 외쳐주었다. 그들의 응원 속에서, 우리는 청계천을 따라 이어지는 직진 코스를 계속 달려 나갔다.
나는 컨디션이 평상시보다 많이 좋다는 것을 느꼈고 속도를 좀 더 높여 달리기 시작했다. 18km 지점에 도달했을 때, 나의 페이스는 1km에 5분 4초였다. 이전 대회와는 다르게 이제 더 이상 신발에 몸을 맡긴 채 앞으로 겨우 나아가는 그런 고통스러운 순간은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달리고 있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허벅지와 발바닥에 전해지는 감각을 온전히 느끼며 나의 의지대로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고 있었다. 19km 지점에 이르렀을 때, 오른쪽에 광장시장이 보였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서울의 유명 관광지를 이렇게 달리며 마주하니 반가웠다. 어느덧 20km 지점. 나의 페이스는 5분 06초였고, 군의관은 앞으로 더 빨리 나아갈 수 있다며 먼저 앞서 나갔다. 주행코스 양옆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이전 하프마라톤 대회와는 달리, 죽을 듯한 고통은 더 이상 없었다. 과연 지난 대회보다 기록이 얼마나 단축될지 생각하며 설렘을 안고 달렸다. 20.5km 지점. 양옆으로 응원하는 사람들이 빼곡히 줄지어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이제는 이 분위기를 즐기며 앞으로 나아갔다. 남은 거리 100m 남짓, 저 멀리 결승선과 이미 완주를 한 러너들이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며, 두 번째 하프 마라톤의 마지막 순간을 핸드폰 동영상으로 기록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두 번째 마라톤을 완주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오른쪽 팔뚝에 매달려 있는 휴대폰으로 기록을 확인해 보았다. 1시간 51분 4초! 지난 대회보다 무려 5분이나 단축된 기록이었다. 기록 단축도 기뻤지만,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이번 대회에서 힘들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 기세라면, 나는 풀코스 마라톤도 거뜬히 완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4시간 이내에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하는 서브 4를 달성할 수도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에 가슴이 뛰었다.
이번 대회를 통하여 내가 많이 성장했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한여름 밤 무더위 속에 이어진 수많은 달리기와 고통스러웠던 LSD 훈련의 결과가 눈으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 매일 달릴 때, 그리고 3시간 동안 부대 50바퀴를 고통 속에서 달릴 때,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것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에 대해 의심했었던 순간들이 간혹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연습과 이번 대회를 거치며, 나는 인내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긴 인고의 시간을 보내며 성장하기 위해 애썼던 과정은, 당장 눈에 띄는 결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러한 노력이 결국 언젠가 분명한 결실을 맺게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렇게 우리의 풀코스 마라톤을 향한 여정은 점점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