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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는 제임스 Feb 28. 2024

풀코스 마라톤 준비3 - 출전 준비 완료

내가 달리는 이유와 달리기를 통해 배운 것들 8

두 번째 하프 마라톤을 마무리 지으며, 나는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자신감을 안고 부대로 돌아왔다. 풀코스 마라톤 완주라는, 한때는 꿈만 같던 목표가 이제는 현실로 다가올 것만 같았다. 달리기 직후에 흔히 느꼈던 발목과 발의 통증은 이번에는 찾아오지 않았다. 생활관에 도착해 짐을 푼 뒤, 간단히 정리하고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의무실에서 군의관과 앞으로 20일간의 훈련, 즉 풀코스 마라톤까지의 준비 계획에 관하여 이야기하였다. 우리는 풀코스 마라톤을 2주 앞둔 10월 15일에 장거리 훈련, 즉 LSD 훈련을 35km 달리는 것으로 우리의 훈련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 나는 그전까지 매일 5km를 달리며 달리기의 감각을 유지하였다. LSD 훈련의 전날에는 다가올 장거리 달리기를 위해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10월의 어느 화창한 일요일 오후 3시, 나와 군의관은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긴 거리와 시간을 달리기 위해 의무실 앞에서 모였다. 이날의 도전은 단순한 훈련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마치 진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것처럼, 우리는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허리에는 장거리 달리기에 필요한 필수품을 담을 수 있는 러닝 벨트를 차고, 그 안에는 에너지를 보충할 파워젤 네 개와 포도당 캔디 몇 개를 챙겼다.


의무실 건물 앞에는 우리의 장시간 달리기를 지원할 작은 책상 하나를 가져다 놓았다. 책상 위에 커다란 물통과 음료수를 가져다 놓았고, 중앙에는 군의관이 가져온 크리스피 도넛 한 박스를 두었다. 그 도넛은 장시간 달리기로 인해 찾아올 허기를 달래줄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스트레칭으로 몸을 충분히 풀어낸 후, 우리는 새로운 기록을 세우기 위하여, 그리고 첫 풀코스 마라톤에 앞서 마지막 장거리 훈련을 위해 발을 내디뎠다. 19도의 포근한 날씨와 부드러운 햇살이, 마치 우리의 도전을 응원하는 듯 완벽한 달리기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우리는 1km당 7분 10초의 페이스로, 가벼운 조깅을 하듯 천천히 달려 나갔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달리니, 시간은 눈 깜짝할 새에 흘러 1시간 11분 만에 10km 지점에 도착했다. 이제 10km는 우리에게 장거리가 아닌, 또 다른 시작점으로 느껴졌다. 15km를 지나며, 나는 러닝 벨트에서 파워젤 하나를 꺼내 먹었다. 그 작은 에너지 보충제가 나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우리는 초반의 느린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려, 2시간 23분에 20km를 주파했다.


20km를 넘게 달려 허기가 몰려왔을 때, 우리는 미리 준비해 둔 도넛 박스로 향했다. 도넛 두 개를 급하게 입에 넣으며, 이온음료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 짧은 휴식 후, 우리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배가 조금 차니 다시 힘이 솟구치는 듯했다. 부대를 40바퀴나 돌며 같은 풍경을 바라보니 점점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방향을 바꿔 반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가뭄에 단비처럼 반가웠던 내리막길이 이제는 힘겨운 오르막길로 변했다. 춘천마라톤의 악명이 자자한 언덕길들을 떠올리며, 이 힘든 오르막길이 우리를 춘천마라톤의 언덕들에 더 잘 대비하게 해 줄 것으로 생각했다.


저녁 6시가 되어가면서, 우리의 달리기는 3시간을 향해갔다. 지금까지의 달린 거리는 25.5km에 이르렀다. 서서히 해가 지고, 부대는 저녁의 어둠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어둠 속에서도 끊임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6시를 조금 넘어서면서, 저녁 식사를 마친 병사들이 하나둘씩 모여 풋살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풋살장의 환한 조명이 부대의 어둠을 밝혀주었다. 병사들이 지나가며 외치는 '화이팅' 소리는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우리는 그 힘으로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 달려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병사가 우리와 함께 달리겠다며 합류했다. 가끔 혼자 풋살장 주변을 뛰어다니던 병사였다. 우리에게는 또 다른 동지이자 대화 상대가 생긴 듯하였다. 그 병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달리기를 마치고 생활관으로 돌아갔고, 우리와의 짧은 동행은 끝이 났다. 그사이 풋살 경기도 막을 내렸고, 환하게 빛나던 풋살장의 조명도 꺼져 다시금 부대는 어둠에 휩싸였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3시간 40분이 흐르고, 우리는 30km에 도달하였다. 러닝 벨트 속 파워젤은 이미 바닥이 났다. 하지만, 우리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어둠이 깔린 부대 속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30km 지점에 도달했을 때, 나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들어선 것만 같았다. 이제 나의 의지가 아니라, 몸이 스스로 장시간 반복된 동작을 통해 나를 앞으로 이끌고 있었다. 그동안 괜찮다고 여겼던 왼쪽 발목에서도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앞으로 5km만 더 가면 된다는 생각에, 나는 이를 악물고 달리기를 계속했다. 이제 1km가 10km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불안정한 자세로 달리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32km 지점에서, 우리는 실성을 한 채로 서로 아무 말이나 뱉으며 달렸다. 그 순간의 고통을 잡담으로라도 조금이나마 경감시키고자 했다. 33km를 지나며, 34km까지 어떻게 달렸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마치 무의식중에, 자동으로 앞으로 나아간 듯했다. 페이스는 1km당 7분 40초로 현저히 느려졌다.


34km 지점에 이르러, 남은 거리가 1km뿐이라는 사실에 모든 힘을 짜내어 조금이나마 속도를 높였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발을 제대로 들어 올릴 수 없었고, 러닝화는 바닥에 질질 끌리는 소리를 내며 부대를 울렸다. 마지막 500m에서는 엄청난 고통과 함께 신음을 내며 달렸다. 그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뱉으며 달릴 때, 몸속의 고통이 어느 정도 같이 흘러 나가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렇게 우리는 고통과 힘겹게 투쟁하며, 4시간 11분 만에 35km라는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이 긴 여정의 끝에서,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그 한계를 넘어섰다는 자부심을 안고 서 있었다.


우리는 다리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주저앉지 않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4시간 넘게 지속된 달리기 후에 걷는 것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졌다. 풀코스 마라톤에서는 오늘 달린 거리보다 7km를 더 뛰어야 하지만, 완주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사라졌다. 그 길고 긴 달리기를 마치고 나니, 풀코스 마라톤은 꼭 4시간 안에 완주해야겠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졌다. 풀코스 마라톤에서는 오늘보다 더 빠른 페이스로 달려야 하므로, 4시간이 넘어가는 순간 고된 도전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장거리 훈련(LSD)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 긴 여정을 끝내고, 우리는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서 우리는 낮에 미리 준비해 둔 컵라면을 꺼내 물을 부었다. 라면이 익어가는 동안, 그 구수한 냄새는 공간을 가득 채웠고, 장시간 달림으로 인해 느껴진 허기를 더욱 부추겼다. 라면이 다 익었을 때, 우리는 젓가락으로 면발을 조심스레 입안으로 옮겼다. 그 순간, 그 어떤 음식보다도 맛있는, 인생 최고의 라면 맛을 경험했다. 우리는 라면 국물에 밥까지 말아 먹으며, 오늘의 훈련과 그간의 고된 훈련을 되돌아보았다. 그리고는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눈 뒤, 생활관으로 돌아가 하루를 마무리했다. 길고 고통스러운 한 주의 마지막 날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작은 성취를 찾은 기분 좋은 하루였다.


회복 속도가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것이 느껴졌고, 나는 다음 날에도 5km를 달리며 몸 상태를 조금이라도 향상하려 애썼다. 그 후 나흘 동안 꾸준히 달리기를 이어갔다. 10월 25일, 나는 5일간의 휴가를 내어 서울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휴가 중 가장 먼저 한 일은, 풀코스 마라톤을 위한 새 러닝화를 구입하는 것이었다. 군의관이 지난 하프마라톤 때 ‘아디다스의 아디오스 프로 3’를 신고 퍼포먼스가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이 보였기에, 신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했었다. 지난 하프마라톤을 돌이켜보며, 더 긴 거리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다리에 부담을 덜 주면서도 가벼운 러닝화가 필수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래서 나도 풀코스 마라톤 대회에서 나의 발이 되어줄 러닝화로, 군의관이 추천한 ‘아디다스 아디오스 프로 3’를 선택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신발을 찾기 어려워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4시간 동안의 달리기로 발이 많이 부을 것을 예상해, 평소보다 한 사이즈 큰 280사이즈를 선택했다.


며칠 뒤, 새로운 러닝화가 도착하였다. 나는 새로운 카본화 신발을 발에 신고, 지난 시간 동안 쉼 없이 이어온 훈련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첫 풀코스 마라톤 출전을 위한 준비를 끝마쳤다. 이제 남은 건 그날을 기다리는 일뿐. 새로운 도전 앞에서 느껴지는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찬 채, 나는 대회 날짜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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