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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는 제임스 Mar 06. 2024

첫 풀코스 마라톤 완주 (1/2)

내가 달리는 이유와 달리기를 통해 배운 것들 10

언제나 그렇듯이,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나의 첫 풀코스 마라톤 하루 전인 10월 28일이 다가왔다. 큰 검은색 스포츠 가방에는 군복과 군화, 그리고 내일 대회에서 입을 옷들을 담아 춘천행 기차를 타기 위해 용산역으로 향했다. 춘천에서 홀로 자취하는 군의관의 집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춘천 마라톤에 나서기로 했다. 용산에서 춘천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는 군부대로 향할 때와는 다른 긴장과 설렘이 함께 어우러졌다.


춘천역에 도착하여 역을 나오자마자, 역 앞에서 차를 세워놓고 기다리던 군의관을 만났다. 차에 몸을 싣고, 우리는 내일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대회 코스를 미리 탐색해 보기로 했다. 대회 하루 전이라 도로에는 교통 통제를 위한 고깔들이 세워져 있었고, 밤늦게까지 준비에 힘쓰는 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큰 행사를 준비하는 분들의 노고를 보며, 이렇게 큰 대회에는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수반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고, 이렇게 잘 준비된 곳을 달릴 수 있음에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꼈다. 대회의 초반 코스를 둘러보니 듣던 대로 언덕이 많은 코스였다. 그동안 수백 번의 부대를 오르내리며 쌓아온 훈련이 과연 내일 대회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 의문과 기대가 교차했다. 그렇게 대회 코스를 간단하게 둘러본 후, 우리는 군의관의 집으로 가, 내일 있을 대회를 대비하여 일찍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였다. 군의관이 며칠 전부터 몸 상태가 많이 좋지 않다고 했기에, 약간 걱정이 되었다. 그는 가끔 기침도 하였기에, 제발 내일 자고 일어나면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되기를 바랐다. 그렇게 우리는 잘 준비를 마치고는 나는 방에서, 그리고 군의관은 거실에서 누워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대회를 앞둔 긴장 때문인지, 아니면 새로운 환경에서의 취침 때문인지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거실에서는 군의관의 메마른 기침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의 기침 소리를 들으며, 내일 그의 몸 상태가 많이 좋아지기를 바라며, 새벽 1시가 넘어서 잠에 들었다.


새벽 어스름 속, 오전 5시 30분의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군의관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기에 먼저 씻고 그를 깨웠다. 여전히 마른기침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의 몸 상태를 물었을 때, 전날에 비해 크게 호전된 것 같지 않았다고 했다. 오늘의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을까 약간 걱정이 되었다. 준비를 마치고 7시 30분쯤, 군의관의 차를 타고 마라톤이 열리는 공지천교로 향했다. 선선한 10도 정도의 날씨였지만, 하늘은 짙은 안개로 덮여 있어 가시거리가 좋지 않았다. 춘천역에서부터 이미 마라톤 대회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참가자들의 평균 연령대가 서울 대회보다 확연히 높아 보였다. 출발 장소에서 차를 댈 곳이 마땅치 않아 춘천역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대회장으로 향했다. 아직 쌀쌀한 날씨에 반바지를 입은 나는 조금 춥게 느껴졌지만, 러너들과 함께 대회장에 도착한 순간, 첫 풀코스 마라톤의 긴장과 설렘이 추위를 잊게 했다.


대회 장소는 이미 도착한 수많은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현장은 축제의 분위기로 가득 찼고, 각양각색의 부스들이 먹거리를 제공하며 장날의 시장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다. 우리는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짐을 맡길 물품 보관소를 찾아 나섰고, 긴 줄의 끝에 서서 기다리는 동안 이곳의 축제 같은 분위기에 젖어 들었다. 이번 춘천 마라톤은 서울의 마라톤 대회와는 달랐다. 참가자들은 자신만의 색깔로, 개성 넘치는 복장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한 러너는 자신의 칠순을 축하하는 옷차림으로, 다른 이는 오랜 달림이 남긴 흔적이 엿보이는 수많은 구멍이 있는 낡은 나시를 입고 있었다. 물품 보관소 앞에서 기다리던 중, 우리의 바로 뒤에 서 계시던 한 러너 분과 짧은 대화를 하였다. 그분은 여든에 가까워 보이시지만, 달리기를 통해 청춘을 간직한 듯한 활기찬 에너지를 발산하고 계셨다. 우리의 첫 풀코스 마라톤 참가에 격려의 말씀을 해주시며, 자신은 벌써 천 번 넘게 완주했다고 하셨다. 그 말에 놀라 나는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물었고, 그분은 매주 꾸준히 42km를 완주하면 가능하다고 하셨다. 단순 계산으로도 20년 가까이 뛴다면 가능한 횟수였다. 그분의 탄탄한 체격과 진실된 미소는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는 듯했다. "기록에 연연하지 말고, 천천히 즐기면서 달리라"는 그분의 조언에서 달리기를 정말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것이 느껴졌고, 나도 훗날 무엇인가를 저렇게 진심으로 사랑하며, 또 즐기며 사는 삶을 살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잠시 후, 우리는 보관소에 짐을 맡기고 출발선으로 향했다. 몸을 풀며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나의 마음은 기대와 두근거림으로 가득 찼다.


출발신호는 주위의 수많은 러너의 분주함에 파묻혀 잘 들리지 않았고, 사람들이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것을 보고 출발신호가 울렸음을 인지했다. 그렇게 우리는 흐르는 인파에 몸을 실으며 천천히 출발선을 향해 나아갔고, 9시 15분쯤 그 선을 넘었다. 초반 1km는 아무런 특색 없는 도로였지만, 가을이 깊어져 가는 것을 알리는 노란색과 빨간색으로 물든 가로수가 길가를 아름답게 수놓았다. 나는 1km에 6분의 일정한 페이스로 달려 나갔다. 2km를 지날 무렵, 많은 사람이 한 할아버지에게 화이팅을 외치며 지나가는 광경을 목격했다. 궁금증을 안고 다가간 그곳에서는 '최고령 마라토너 96세 김종주'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할아버지가, 자신만의 느린 리듬으로 묵묵히 달리고 계셨다. 그분의 모습은 며칠 전 뉴스에서 본 바로 그 마라토너였다. 2022년 춘천 마라톤 대회에서 11시간 20분에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 하셨다고 했다. 그분의 도전은 그 어떤 것보다도 숭고해 보였고, 그 순간 나의 도전이 그저 작은 발걸음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오늘 내가 세운 목표를 반드시 이루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 햇살이 살포시 내려앉은 코스 위로, 우리는 마치 시간의 흐름을 잊은 듯 순식간에 5km 지점을 지나쳤다. 우리의 발걸음은 처음에 계획했던 1km에 5분 30초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었다. 군의관의 기침 소리는 아침보다 잦아들었고, 그의 발걸음도 가벼운 것으로 보아 컨디션이 어느 정도 회복된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5.5km를 넘어서며 경사진 내리막이 시작되었고, 먼 산맥은 안개에 싸여 몽환적인 절경을 펼쳐놓았다. 이 순간, 도심의 달리기와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주변의 풍경은 내 눈앞에 자연의 걸작을 펼쳐 보이며, 발걸음마다 신선한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짧은 터널을 지날 때마다 터널 안에서 러너들의 화이팅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울림은 터널을 벗어난 후에도 멀리까지 이어졌다.


7.5킬로미터를 달리며 의암댐을 지나고 나니 신연교 위로 이어진 길이 러너들을 맞이했다. 눈앞으로 펼쳐진 의암호의 푸른 물결과 단풍으로 물든 산들이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그 푸르른 풍경은 나의 마음까지 시원하게 만들어 주었고, 발걸음은 저절로 가벼워졌다. 9.5km를 지나며, 나는 러닝 벨트에서 에너지 젤을 꺼내 입에 넣었다. 달콤한 액체가 온몸으로 퍼지는듯한 느낌을 주면서 나의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10km 지점을 지날 때, 짧은 수면에도 불구하고 나의 컨디션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이 상태로 계속 달린다면, 목표했던 4시간 이내 완주를 달성할 수도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솟구쳤다. 급수대에서 물 한 모금을 마신 후, 나는 다시 달리기를 이어나갔다. 주행 코스는 푸른 호수를 오른편에 두고 계속 이어졌다. 그 길을 따라 달리는 동안, 달리기는 단순한 운동을 넘어 하나의 여행이 되었다. 우리를 둘러싼 절경은 힘든 순간들을 잊게 만들어 주었고, 이러한 아름다움 속에서 달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 아름다운 길은 15km 지점까지 이어졌다. 15km의 표지판을 지날 무렵, 다채로운 모습의 러너들이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줄넘기를 하며 경쾌하게 발을 옮기는 러너가 보였고, 맨발로 대지를 밟으며 굳은 의지를 드러내는 러너도 보였다. 심지어 승복을 휘날리며 달리는 스님의 모습도 보였다. 이들 모두가 각자의 이야기와 방식으로 마라톤 완주라는 여정을 함께하고 있었다. 길 위의 작은 축제처럼, 코스 곳곳에서는 물에 젖은 스펀지를 든 학생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러너들에게 힘찬 응원과 함께 스펀지를 건네주었다. 그들의 힘찬 "화이팅!" 소리는, 러너들의 발걸음에 새로운 에너지를 더해주었다.


16km의 지점을 넘어서자, 작은 마을이 우리를 맞이했다. 이곳의 주민들이 거리로 나와 우리를 향해 열정적으로 박수를 보내며, 힘찬 화이팅을 외쳐주었다. 그들의 응원이 우리들의 발걸음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이윽고 나타난 급수대에서 나는 시원한 이온음료로 잠시 갈증을 해소하고, 다시 달리기를 이어나갔다. 마을을 관통하는 좁은 2차선 도로를 따라 달리는 동안, 마을의 식당 주인과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우리의 여정을 격려해 주었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 한마디가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마음속 깊이 이 소중한 순간들을 새기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어느덧 20km 지점에 도달하였고, 여기서부터 신매대교의 끝을 찍고 돌아오는 1km 남짓한 짧은 코스가 이어졌다. 대교 위로 진입하자, 큰 소리의 음악과 환호로 가득 찬 러닝 크루들의 열정이 우리를 맞이하였다. 대교 양 끝에서, 그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러너들을 응원하며 마라톤의 열기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그 밝은 분위기 속에서, 몇몇 크루원들과 나눈 하이파이브는 나의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만들었다. 이 경치 좋은 다리 위에서, 응원의 목소리와 함께하는 이 순간이 마라톤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 대교의 끝에서 반환점을 지나, 21km 이정표를 통과했다. 평균 페이스는 1km에 5분 38초였고, 이제 절반이 남았다는 사실에 마음은 한층 더 가벼워졌다.


절반의 지점을 넘어서면서, 군의관의 기침은 더욱 거세고 건조해졌고, 그의 얼굴은 열기에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고통스러워 보이는 그의 눈빛과 찡그린 표정은, 그의 컨디션이 악화되고 있음을 알렸다. “이제 절반만 더 가면 돼요.”라고 나는 그에게 격려의 말을 건넸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이 한 발 한 발 전진했다. 그렇게 우리는 남은 절반의 여정을 향해 계속 앞으로 힘차게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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