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달리는 이유와 달리기를 통해 배운 것들 11
군의관의 컨디션에 대한 우려와 함께,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얼굴은 더욱 붉어지고 기침 소리도 빈번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려 나갔다. 이 페이스는 우리의 목표 달성에 알맞았고, 그가 조금만 더 버텨준다면 4시간 내 완주도 가능할 것 같은 희망이 솟았다. 길을 따라 뻗은 논밭과 비닐하우스는 우리에게 농촌의 신선한 풍경을 선사했고, 짙은 흙 내음이 미묘하게 코끝을 자극했다. 이 평화로운 풍경은 24km 지점까지 이어졌고, 곧 우리는 서상대교로 오르는 경사길에 도달했다. 군의관은 얼굴의 열이 쉬이 가시지 않는지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왼손으로 들고 뛰기 시작했다.
25km 지점을 지나며, 우리는 급수대에서 이온음료를 집어 마시고 다시 달려 나갔다. 서산대교 오른편에서는 몇몇 러너들이 걷거나 다리를 주무르며 잠시 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26km를 조금 넘었을 때, 군의관이 갑작스레 멈춰 섰다. 그는 종아리에 쥐가 난 듯하다며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훈련이나 대회에서 경험하지 못한 증상이었다. 이는 그의 컨디션이 심각하게 악화되었음을 시사했다. 간단한 스트레칭 후, 우리는 약 300미터를 걸었다. 이후 느린 속도로 다시 달리기 시작했지만, 약 700미터 후 군의관이 다시 걷자고 요청했다. 종아리의 통증이 가시지 않았다며, 조금 더 걷기를 원했다. 우리는 200미터를 더 걷고 나서 다시 달리기 시작했으나, 28km 지점에서 군의관은 얕은 신음을 내며 다시 멈춰 섰다. 그는 자꾸 멈춰 서게 되어 준비한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게 되었다며 미안함을 표했다. 세 번째 정지 후, 나는 군의관이 초기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무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혼자서 빠르게 달려 나의 목표를 달성하거나,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군의관과 함께 이 여정을 완주하는 것. 오랜 시간 함께 준비한 첫 풀코스 마라톤이었기에, 한 사람만 완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느꼈다. 우리는 함께 완주하여 그 기쁨을 나누기로 결정했다. 군의관의 몸 상태가 더 이상 달릴 수 있을지는 불투명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 완주할 것이라는 굳은 다짐을 했다.
우리는 서서히 숨을 가다듬으며 걸었다. 시선을 돌려보니, 오른쪽에 단풍이 든 산맥으로 둘러싸인 춘천댐의 웅장한 모습이 펼쳐졌다. 천천히 걷는 동안, 주변의 절경을 더 여유롭게 감상할 기회를 가졌다. 약 500미터를 걸은 후, 군의관이 다시 달릴 수 있다고 말했고, 우리는 천천히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달릴 때는 1km에 7분 10초 페이스로, 조깅하듯 느린 속도로 전진했다. 약 500미터를 더 달린 후, 군의관은 잦은 기침으로 목이 매우 마르다고 했다. 하지만 급수대까지는 1.5km가 남아 있었다. 나는 급수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며 그를 독려했지만, 그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이때, 코스 옆에서 한 시민이 땅에 물병과 종이컵을 두고 러너들에게 물을 권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빠르게 종이컵에 물을 채워 군의관에게 가져다주었고, 그의 얼굴에는 활기가 돌았다.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한 순간이었다. 우리는 시민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다시 천천히 여정을 이어갔다. 어느덧 30km 지점에 도착하여 급수대에서 군의관은 물을 충분히 마셨고, 나는 기다리는 동안 테이블 끝에 놓인 바나나를 집어 먹었다. 그 바나나는 내 평생 먹어본 어떤 바나나보다 부드럽고 맛있었다. 군의관이 충분히 수분을 보충한 후, 우리는 다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햇빛이 반사된 푸른 물결을 감상하며 달리던 우리는 군의관의 갑작스러운 멈춤과 함께 다시 걷기 시작했다. 300미터를 걸은 후, 우리는 기록에 구애받지 않고 완주를 목표로 끝까지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하고는 다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500미터를 더 달린 후, 군의관은 다시 멈춰 섰고, 우리는 완주를 위해 뛰고 걷기를 번갈아 가며 나아가기로 결정했다. 걷다가 다시 달릴 즈음, 우리는 어린 학생들이 물에 젖은 스펀지를 나누어주는 구간에 도달했다. 군의관은 머리 위로 스펀지의 물을 짜내며 열을 식혔다. 계속된 기침과 열로 인해 군의관은 목이 매우 마르다고 호소했다. 아직도 급수대까지 2.5km나 남아 있었고, 우리의 느린 페이스로는 급수대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 분명했다. 나는 "조금만 더 가면돼요"라며 격려하며, 우리는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코스 왼쪽의 스프레이형 파스를 뿌릴 수 있는 곳에서는 많은 러너들이 파스를 분사하며 다리의 통증을 달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35km 지점에서 드디어 급수대가 눈에 들어왔고, 나는 급수대에서 1.5L 물통을 받아 들고 중간중간 군의관에게 물을 공급하기로 했다. 300미터 걷고 500미터 뛰기를 반복하며, 군의관에게 수시로 물을 건네주었다. 중간중간 수분을 보충하니 군의관의 표정이 훨씬 나아졌고, 우리는 그렇게 천천히, 하지만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춘천의 시내로 접어들면서, 우리는 커다란 환호와 응원의 소리로 가득 찬 길을 마주했다. 인도는 응원하는 시민들로 빼곡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플라스틱 의자 두 개를 가져다 놓고 그 위에 앉아 열정적으로 박수를 치던 6~7살로 보이는 남매의 모습이었다. 그들의 순수한 눈빛과 환한 웃음은 지친 우리에게 큰 힘이 되었다. 또한, 러닝 크루의 일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거대한 깃발을 휘날리며 크게 화이팅을 외치는 모습도 보였다. 그들의 열정적인 응원 소리는 춘천 시내를 가득 메우며, 힘겹게 여정을 이어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 걷고, 또 뛰며 우리들의 여정을 계속 이어나갔다. 37km 지점에 도달했을 때, 군의관이 한 버스 정류장을 가리키며, 힘겹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우리 버스 타고 갈까?" 그의 말에 진심과 농담이 섞여 있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남은 거리를 의도적으로 줄여 말하며, "거의 다 왔어요, 조금만 더 힘내보아요!" 하며 힘을 북돋웠다. 우리는 다시 한번 서로에게 힘이 되어, 다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의 시선은 잠시 편의점 근처의 인도로 옮겨졌다. 거기에는 테이블이 차려져 있었고, 편의점 사장님이 러너들을 위해 다양한 이온음료와 탄산음료를 정성스레 준비해 두셨다. 그 순간 우리만 달리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춘천의 시민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우리와 함께 동행하고 있었다. 38km 지점에 다다랐을 때, 군의관은 더 이상 뛰는 것이 힘들다며, 남은 거리를 걸음으로도 충분히 마무리할 수 있지 않느냐고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빠르게 계산을 해보니, 걷기만으로는 5시간 내의 완주는 어려울 것 같았다. 나는 전날 '나 혼자 산다'에서 본 기안84의 마라톤 완주 장면이 떠올랐다. 그는 4시간 47분 만에 결승선을 통과했다. 군의관에게 말했다, "우리가 기안84보다 더 오래 준비했으니, 4시간 47분보다는 빨리 들어와야 하지 않겠어요? 나는 걷는 거리를 줄이고, 뛰는 거리를 늘려보자고 제안하였고, 그는 이를 악물며 온 힘을 다해 뛰는 거리를 조금씩 늘였다.
39km 지점에 도달했을 때, 군의관의 얼굴에는 고된 여정의 흔적이 역력했다. 그의 눈빛에서 더 이상 달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스며 나왔다. 바로 그 순간, 우리 곁을 지나가는 중년의 러너 한 명이 눈에 띄었다. 그의 손에는 갈색 액체가 담긴 500ml 생수병 두 개가 들려있었고, 그는 “얼린 믹스커피 필요하신 분?”이라고 외치며 지나갔다. 그 커피가 너무나도 시원해 보였기에 우리는 망설임 없이 그에게 다가가 “저희요!”라고 외치며 그 무엇보다 값진 얼린 커피를 받아내었다. 생수병의 뚜껑을 연 후, 군의관이 차가운 믹스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그의 눈빛이 번쩍였다. “조금 더 달릴 수 있을 거 같아!” 그가 활기차게 말했다. 나도 호기심에 그 맛을 보았고, 그 순간 왜 고된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믹스커피를 즐겨 마시는지 이해했다. 카페인의 강렬한 힘이 전신을 감돌았다. 1.5L의 생수통을 든 나와 얼음 커피가 든 500ml 생수통를 쥔 군의관은 다시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차갑고 강렬한 카페인의 힘 덕분에, 군의관의 모습은 점점 더 활력을 되찾아갔다.
41.4km 지점에 이르자, 우리는 작은 다짐을 하였다. 100미터를 걸은 뒤 나머지 700미터는 멈추지 않고 달리기로 했다. 걸음을 옮기는 동안, 아까 마주쳤던 스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두꺼운 승복이 바람에 휘날리며 그의 결연한 달리기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의 꿋꿋한 모습에 감탄하며, 우리는 서로를 향해 "화이팅!"을 외치고 마지막 구간을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군의관의 발걸음은 초기의 가벼움을 되찾았고, 마치 출발 지점에 출발하던 그때로 돌아간 듯했다. 달리는 중, 맨발로 달리던 중년의 러너를 다시 보았다. 발바닥은 벗겨지고 피가 흐르는 상태였지만, 그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주위는 목적지를 향하여 각자의 방식으로 질주하는 수많은 러너들로 가득했다. 모두가 한결같이 자신들의 목표를 향해, 서로 다른 발걸음으로 같은 길을 달려가고 있었다.
결승선이 점점 다가오면서, 오른쪽 도로변엔 응원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늘어났고, 꽹과리 소리가 힘찬 응원과 어우러져 울려 퍼졌다. 이미 풀코스를 마친 이들도, 자랑스럽게 완주 메달을 목에 걸고 러너들을 응원하는 대열에 합류했다. 남은 거리는 불과 200미터. 사람들로 가득 찬 코스 양옆에서는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고, 그 열기는 우리에게 마지막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저 멀리에는 결승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완주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불과 100미터를 남겨두고, 음악과 응원의 함성 소리는 절정에 달했다. 우리는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달리며, 열광하는 군중을 뚫고 결승선을 통과했다. 오른쪽을 향해 고개를 돌려 팔뚝에 찬 휴대폰 스크린을 통해 기록을 확인했다. 4시간 54분 36초! 비록 기안84님의 기록을 넘지는 못했지만, 5시간 이내 완주라는 우리의 새로운 목표를 이룬 것에 깊은 만족감을 느꼈다.
그 순간 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강렬한 전율이 온몸을 휘감았다. 우리는 해냈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순간부터 마지막 LSD 훈련까지, 모든 순간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벅찬 감정이 솟구쳤다. 처음 달리기 시작하며 42.195km를 완주하겠다고 다짐했을 때, 그것이 실현 가능할지는 확신이 없었다. 처음 하프마라톤을 완주했을 때조차, 풀코스 마라톤 완주의 확신은 없었다. LSD 훈련을 시작했을 때도, 완주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두 번째 하프 마라톤과 마지막 LSD 훈련을 통해 완주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었다. 그럼에도 오늘, 21km 지점을 지날 때 군의관의 컨디션을 보며 완주 가능성에 대해 다시 한번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끝까지 달리며, 함께 결승선을 통과했다. 만약 중간에 지친 군의관을 두고 나 혼자 4시간 안에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했다면 기쁨과 함께 어딘가 허전함이 남았을 것이다.
우리는 함께 준비했고, 함께 완주의 기쁨을 맛보았다. 만일 우리 모두가 완벽한 컨디션으로 순조롭게 목표 시간 내에 마라톤을 마쳤다면, 우리의 첫 풀코스 마라톤은 어쩌면 단순한 기억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간에 걸으며, 우리는 주변을 둘러보고 더 많은 경치를 감상할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현장의 생생한 분위기를 체험했다. 만일 우리가 계속해서 달렸더라면, 놓칠 뻔했던 이 모든 것들을 경험할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이 경험은 나에게 깊은 교훈을 남겼다. 삶을 살아가며 끊임없이 앞으로만 나아가려 하기보다는, 때때로 잠시 멈추어 서서 주변을 둘러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 대회를 통해, 정확한 목표를 향해 묵묵히 전진하면 결국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때로는 계획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되고, 예상치 못한 우회로에 들어설 수도 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걸음을 옮기면, 결국 목표한 곳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이렇게 긴 마라톤 여정의 첫 장에 마침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