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 Our Souls at Night>
요 며칠 잠을 자지 못했다. 하긴 내가 잠 못 자는 게 뭐 어제오늘 일인가. 지인들은 이런 내게, 커피를 좀 작작 마셔라, 운동 부족이다, 노화의 증거다, 라고들 말한다. 맞다. 그 세 가지 다 맞다!!! 그 세 가지 모두를 갖춘 내게, 그래서 불면은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숙면해도 피곤이 풀릴까 말까 하는 나이에 불면이라니! 잠이 오지 않는 밤은 참 곤혹스럽다. PC의 전원을 껐는데도 여전히 CPU가 돌아가고 있는 느낌. 피곤에 지친 몸은 침대에 늘어붙어 이미 기절했는데도, 쓸데없는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가증식... 밤새 천장을 내달리는 쥐새끼들처럼, 대환장파티를 한다.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 라벤더향이 나는 발열안대를 한 채, 천천히 478 호흡을 반복해도, 잠.은.오.지.않.는.다. 오른쪽으로 누웠다가 똑바로 눕는다. 아냐, 왼쪽으로 누웠을 때 잠을 더 잘 잤던 것 같아. 이번에는 왼쪽으로 돌아눕는다. 양을 세야 하나.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아냐, 양 세는 건 숙면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어. 그럼 뭘 해야 하지....? 새벽 6시 반에 일어나려면 대체 몇 시간 잘 수 있는 거야... 4시간, 그래 4시간이라도 푹 자면 되지. 3시간... 숙면한다면 3시간도 뭐 괜찮지. 잠.은.오.지.않.는.다. 지금 몇 시지? 아냐아냐, 자.꾸.시.계.보.지.마!!
<밤에 우리 영혼은 Our Souls at Night>(리테시 바트라 감독, 2017)은 그런 내가 어느 불면의 밤에 본 영화다. 원작은 켄트 하루프 소설, 주연은 로버트 레드포드와 제인 폰다가 맡았다. 각각 1936년생과 1937년생이니, 둘은 80세쯤 이 영화를 촬영했겠다. 와우, 댄디하고 우아한 사람들.
영화의 첫 장면은 식탁에서 혼자 식사하는 남자(루이스)의 뒷모습이다. 사방은 어두컴컴. 소박한 저녁식사가 끝나자 남자는 바로 설거지를 하고, 돋보기를 쓴 채 신문을 본다. 그러는 사이 TV는 내내 켜진 상태. TV가 켜져 있는데도 실내엔 이상하리만치 무겁고 적막한 공기가 흐른다. 그때 한 여자가 그의 집앞을 서성대며 망설인다. 잠시후 울리는 벨소리. 찾아온 사람은 이웃집에 사는 애디다. 그녀는 루이스에게 제안을 하나 하겠단다. “청혼은 아니고, 청혼 비슷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며 꺼낸 그녀의 수상한 제안은 바로 이거.
괜찮으시다면 언제 제 집에 오셔서 같이 주무실래요?
우리... 둘 다 혼자잖아요. 오랫동안 혼자 살아왔죠. 그래서...
난 외롭거든요. 당신도 그럴 것 같은데요. 섹스를 하자는 게 아니에요. 그쪽으로는 흥미 잃은 지 오래예요. 그런 게 아니고...
밤을 견뎌보려고 그래요. 그냥... 침대에 함께 누워서 잠들 때까지 얘기하면서 밤을 보내자는 거죠. 밤은 정말 끔찍하지 않아요? 그래도 누군가 곁에 있으면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둘 다 배우자와 사별하고 아이들을 출가시킨 싱글, ‘혼자’다. ‘혼자’들은 잘 안다. 잠 못 자는 게 어떤 것인지. 밤이 얼마나 길고, 밤에 혼자 그 시간을 견디는 게 얼마나 곤혹스럽고 끔찍한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밤의 끔찍함은 정비례할 게다.
영화는 사실 애디의 이 수상한 제안이 스토리의 전부다. 루이스는 애디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둘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끔찍한 불면의 밤을 함께 견뎌나간다. 4,50년 간 같은 동네 이웃으로 살면서도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던 그들은 이제 고해성사하듯 천천히 자신의 스토리를 서로에게 풀어낸다.
그동안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마음속에만 묻어두었던 스토리. 하고 싶었던 것, 되고 싶었던 것, 가장 슬픈 이야기부터 후회에 가득 찬 흑역사까지. 밤마다 들려주는 세헤라자드의 이야기가 결국 왕의 증오를 가라앉히고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듯이, 그들은 그렇게 서로의 스토리로 고독과 불면으로 가득찬 밤의 공기를 서서히 데워나간다.
밤의 끔찍함을 견디기 위해 시작한 그들의 대화는 각자 마음속 깊은 우물을 들여다보게 하고 가족간 오해와 갈등을 해소시켰다. 스토리들이 모여 히스토리가 되고, 서로의 삶을 이해한 그들의 영혼은 이제 낮보다 훨씬 따뜻하고 환한 밤을 맞이할 것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따뜻함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체온보다 더 뜨거운 건, 숨결 섞인 대화인지 모르겠다. 오래 묵은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 누군가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그저 각자가 살아온 날들에 조용히 고개 끄덕여주는 것, 그것보다 더 큰 치유는 없을 것이다.
밤은 길고, 인생도 길다.
그리고 인생, 외롭다.
"그래도 누군가 곁에 있으면" 좀 낫지 않나.
그렇다면!
난 오늘밤, 누구 집앞에 가서 서성대야 하나... 하아.... ♣
* 사진 출처 : 다음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