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근의 〈나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버린다〉
나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버린다
친구여 나는 시가 오지 않는 강의실에서
당대의 승차권을 기다리다 세월 버리고
더러는 술집과 실패한 사랑 사이에서
몸도 미래도 조금은 버렸다 비 내리는 밤
당나귀처럼 돌아와 엎드린 슬픔 뒤에는
버림받은 한 사내의 종교가 보이고
안 보이는 어둠 밖의 세월은 여전히 안 보인다
(중략)
가을 나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버린다
살아있는 나무만이 잎사귀를 버린다
- 류 근의 〈나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버린다〉중에서
맨날 그렇게 취해 있으면 시는 도대체 언제 써요? 라고 어떤 분이 물었다. 나는 말없이 또 한 병을 비우며 혼자 조용히 천장을 바라봤다. 파리똥 무늬가 고요했다. 술 안 마실 때만 골라 쓰느라 18년 만에 시집을 냈다는 걸 말해주기 싫었다. - 류 근의 산문 〈오늘 서울은 흐리고, 나는 조금 외롭다〉중에서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새와 작별하듯
그대 떠나보내고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눈물 나누나.
그대 보내고 아주
지는 별빛 바라볼 때
눈에 흘러내리는
못 다한 말들
그 아픈 사랑 지울 수 있을까
어느 하루 비라도 추억처럼
흩날리는 거리에서
쓸쓸한 사랑 되어 고개 숙이면
그대 목소리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가을 나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버린다
살아있는 나무만이 잎사귀를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