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EELJAZZ Oct 16. 2024

난기류 1

클럽, 공동과 비행기

   어두운 공간에서 레이저들이 춤을 추었다. 웅웅 울리는 시끄러운 음악이 내 고막을 크게 쳤고, 나는 다리를 의미없이 움직이며 춤을 추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춤추는 모습으로 보이는지 의식하며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이 더 올바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였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사람들이 많은 곳에 왔고, 더더욱 사람이 많은 곳으로 비집고 들어왔지만, 나는 내 몸을 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기가 다 빨려 버렸다. 나는 입꼬리를 살며시 내린 채 춤을 계속 추었다. 나보다 5살 더 많은 민은 술에 취하더니 애교가 많아졌다. 자꾸 어깨에 기대고 내 손을 잡고 춤을 추는 모습이 그의 취한 모습이었다.

 나는 민의 손을 잡고 같이 춤을 추어주었다. 초등학교 여자아이들이 쎄쎄쎄를 하듯, 단순한 동작을 반복했다. 발을 굴렸고, 손을 움직였다. 어차피 우리가 춤에 조예가 깊어 클럽에 간 것은 아니었다. 누구는 향락에 취하기 위해, 누구는 잘난 얼굴들을 보기 위해, 또 누구는 별 의미 없이 주말을 보내기 싫어서 이 곳에 왔다. 민 옆의 한은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애초에 성격이 나와 비슷한 한이었다. 그는 그를 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파도에 짜증이 난 모양이었다. 초반의 흥이고 재미는 모두 증발해버리고 우리에게 남은 것은 피로와 고민이었다.

 새벽의 이태원에서 과연 택시가 잡힐까? 혹은 취해버린 민을 챙겨야 하는데 어찌 해야 할까? 등 우리에겐 할 일이 생겼다. 할 일이 지나치게 많았고, 무거웠다. 민은 점차 눈이 감겨오는 모양이었고, 한은 이제 곧 집에 가야하는 모양이었다. 한은 계속 스마트 워치를 쳐다보며 친구의 연락을 기다렸다.

  민은 담배갑에서 연초 하나를 꺼냈다. 반쯤 감긴 눈으로 민은 연초에 불을 붙이고, 담배를 빨아들였다. 연기가 클럽의 천장을 향해 퍼져나갔다. 나는 담배를 피우는 민의 모습을 보았다. 민은 입을 앞으로 쭉 빼고 얇은 연초를 집게손가락으로 잡고 있었다. 나의 시선은 담배의 앞을 향해 직선으로 나아갔다. 흰 담배는 클럽의 레이저 속에서 여러 색깔로 빛났다. 내 시선은 점차 앞으로 나아가다가 담배의 머리 부분에서 멈췄다.

  작은 주황색 불이 담배끝을 붙잡고 있었다. 나는 작은 주황불을 계속 쳐다보았다. 마치 반딧불이를 보는 사람처럼, 혹은 최면에 걸리기 전에 어떤 사물을 계속 바라보는 사람처럼, 나는 주황불이 흔들릴 때마다 동공을 움직였다.

 주황불은 나를 이끌어주었다. 길고 긴 터널에서 바깥과 연결된 작은 창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나는 주황 불빛을 바라보며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갔다. 날마다 프로작을 80mg 복용하며 외향적이고 무모하게 변한 내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황 불빛이 안내해주고 있었다. 나는 주황 불빛을 따라 내 마음 속의 깊은 곳으로 돌아갔다.

 항우울제니 항불안제가 나의 생각을 쓰레기통에 쳐박아버리기 전에, 나는 공허와 같이 살았었다. 내 오래된 친구, 공허, 나는 끝도 없는 싱크홀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공허를 바라보면 현기증을 느꼈다. 나는 공허를 두려워했다. 깊은 공동이 내 마음 속에서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두려웠다.

  공동은 살아있었다. 그리스 신화의 타르타로스처럼, 굶주려서 나를 잡아먹으려 애를 썼다. 나는 공동에 빠지지 않기 위해 병원에 다녔고, 상담 치료에 열중했고, 여러 일들을 하며 다양한 경험을 하려고 했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생각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경험과 감각에 집중한 것이다.

 그렇지만 주황 불빛은, 내 모든 방어막을 뚫고 다시 나를 되돌려놓았다. 나는 하루살이처럼 그의 담뱃불을 향해 나아갔다. 그 불빛은 나에게 위해가 될 것이었다. 나는 이를 알고 있었고, 나아가면서도 스스로에게 멈추라고 명령하였다. 그렇지만 내 몸은 주황 불빛의 관성에 이끌려 계속해서 끌려갔다. 나는 그렇게 내 오랜 친구, 공허와 마주했다. 불빛은 어둠과 맞닿아있었고. 내가 빛의 끝에서 볼 수 있던 것은 다시 나의 공동이었다. 내 공동, 내가 과거를 버린 곳, 내가 다시는 쳐다보고 싶지 않았던 오랜 친구, 내 동반자. 나는 공동을 쳐다보며 다시 공포에 휩싸였다. 그동안 행복을 가장하고, 완치를 가장하였던 세월이 무색하게 나는 자연스럽게 움츠러들었다.

 공동을 바라보면 검은 어둠이 나를 쳐다보았다. 어둠은 짙었고, 어둠은 검었고, 어둠은 숨을 쉬고 있었다. 나는 살아숨쉬는 공동을 쳐다보다가, 공동이 뱉어내는 숨을 느꼈다.

 거친 바람이 공동에서 불어왔다. 따뜻했지만, 불쾌한 숨이었다. 마치 양치를 하지 않은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나는 그의 숨결에 불쾌함을 느꼈다. 그 감각은 나를 흔들었다. 나는 속이 울렁거렸고, 시야가 흔들렸고, 우울에 잠식되었다. 나는 난기류에 흔들리고 있었다.

 난기류,

 난기류라는 관념이 순간 나의 기억에서 떠올랐다. 3년도 더 된 일이었다. 답답한 공기, 빽빽한 좌석. 나는 다시 그 날의 비행기로 되돌아갔다. 엔진소리가 찢어질 듯이 크게 들렸고, 내 옆에는 처음 본 그, 준호가 있었다.

 준호는 나를 보고 웃었다. 나의 왼손을 그의 두툼한 오른손으로 잡아주었다. 나는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울렁거렸고, 두려웠고, 스스로에게 종언을 고하고 있었다. 처음 경험한 난기류였다. 내 손을 잡아준 그의 모습은 혼란 속을 비집고 들어오지 못했다.

 나는 먹구름이 가득한 창밖을 보지 못하고, 그저 웅크리고 있었다. 웅크리며 나를 어둠으로부터 숨겼다. 내 오래된 공허가 나를 잡아먹기 위해 나를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창밖의 어둠이 나를 본다면, 나는 꼼짝없이 잡아먹힐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덜덜 떨었다. 비행기는 익숙하지 않았다. 난기류는 괴물이었다. 난기류는 내 모든 과거였고, 마침내 나를 잡으러 온 사신이었다. 나는 두려웠다. 나는 시간을 잊은 듯 두려워했다. 앞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나의 생이 떨리고 있었다. 나의 작은 마음은 바람 앞 등불처럼 위태로웠다.

 준호는 아마 내가 안타까웠을 것이다. 준호는 내 왼손을 잡은 오른손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거의 손이 아파올 지경이었다. 나는 갑자기 찾아온 고통에 고개를 왼쪽으로 휙 돌렸다. 준호가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순간 난기류를 잊고,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갈색 눈동자에는 부정적인 기색이 없었다. 나에 대한  한심함, 귀찮음 등 어떤 감정도 그의 눈동자에선 비쳐오지 않았다. 내가 느낄 수 있던 것은 왼손에서 느껴오는 찌릿찌릿한 고통 뿐이었다. 나는 난기류를 잊었고,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때는 준호와 내가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저 내 손을 붙잡고 있는 그에게 고마우면서도, 의아했을 따름이었다.

 기장의 방송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그 날의 비행기와 클럽의 레이저가 내 기억을 교차해서 돌아온다. 나는 준호의 눈을 바라보고, 준호의 동공을 깊이 쳐다본다. 준호의 동공에는 주황 불빛이 흔들리고 있다. 담뱃불이다.

 주황 불빛은 나를 다시 새벽의 이태원 클럽으로 데려간다. 주황 불빛은 점차 담배를 잡아먹어치우고는, 한숨 한 번에 꺼져버렸다. 작은 불씨가 꺼지자, 주변의 공간이 다시 보였다. 시끄러운 EDM과 현란한 레이저쇼, 웃통을 벗은 몸 좋은 사람들로 가득한 이 곳은 현실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