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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ELJAZZ Oct 16. 2024

난기류 2

이태원, 집으로

   내가 발을 딛고 서있는 곳, 사람들이 고함치며 이야기를 나누는 곳, 내가 의미없이 스텝을 밟으며 춤을 추고 있는 장소는 지금 이 곳이었다. 나는 머릿속의 잡념을 떨치려 고개를 흔들었다. 귀와 눈에 혼란스러운 자극이 들어왔다. 한과 나는 다시 춤을 추었다. 팔을 흔들어대었고, 발을 동동 굴러대었고, 열심히 뛰어대며 어지러워했다.

    민은 술에 거나하게 취해있다 싶었더니, 금세 곯아떨어졌다. 그는 클럽의 간이 비계에 앉아 고개를 떨구고 졸았다. 그의 몸이 호흡에 맞추어 움직였다. 나는 한과 눈을 맞추고 동시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꼼짝없이 취한 민을 챙겨야 했다.

 나는 순간 고민하였다. 민은 원래 졸아가면서 클럽에서 논다고 말했었다. 그렇지만 그가 실제로 조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를 두고 갔다간 길거리에서 졸다가 파출소로 끌려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나는 그를 어떻게 해야 할지 천천히 생각해보았다. 그는 근처에 친구가 많았다. 그를 근처 친구에게 인계하고 나는 집에 갈 수도 있었다. 나는 지나치게 피곤했다. 새벽의 이태원은 낮의 홍대, 강남보다 붐볐다. 클럽 안은 출근길 2호선처럼 발 디딜 틈 없었다. 나는 더는 이태원에 있고 싶지 않았다. 내 베개와 침대가 그리웠다. 시원한 바람을 불어주는 에어컨이 그리웠다. 그렇지만 우선 민을 어떻게 처리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나는 잠시 시간을 벌기 위해 한과 민을 데리고 피자집에 갔다. 피자를 거대한 한 조각으로 팔고, 새벽에도 사람들이 붐비는 피자집이었다. 나는 페퍼로니, 한은 카프리제, 민은 핫 치킨을 주문하였다. 내가 선뜻 지갑을 열었다. 나는 골치아픈 문제 앞에선 지갑을 쉽게 여는 버릇이 있었다.

 피자와 제로 콜라가 나오고, 우리 셋은 피자를 먹었다. 주변의 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취할 대로 취해버린 사람들 사이에서 깔깔깔 웃는 소리와 음담패설이 들려왔다. 창 밖에서는 어떤 여자가 나를 향해 휘청거리며 다가오더니, 곧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며 거리를 향해 떠나갔다. 나는 피자를 먹으면서 우리의 거취에 대해 논의했다. 한은 경기도에 있는 집으로 택시를 타고 돌아가야 했다. 그와 같이 집에 갈 친구와 연락이 닿아 얼마 후면 돌아가야 했다.

 나는 밤에 운행하는 N버스나 택시를 타고 집에 가면 되었다. 우리집은 택시로 20분 정도밖에는 걸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문제는 새벽의 이태원은 택시가 잘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민을 어딘가에 데려다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게 민의 집이 되었든, 혹은 또 다른 클럽이 되었든 말이다. 나는 민을 독촉해 근처 친구에게 연락하도록 했다. 민은 인스타그램을 몇 번 보고, 전화를 두 번 정도 하더니 근처 클럽에 있는 그의 친구와 연락이 닿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정해진 것이다. 나는 한과 작별 인사를 하고, 민을 그의 친구에게 데려다 주고, 택시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 되었다.

 나는 우선 한을 보냈다.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다는 말과 함께 사람좋은 미소를 유지한 채로 그와 인사하였다. 한은 끝까지 민을 걱정하였다. 나는 내가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말로 그를 안심시켰다. 한을 보내고 난 뒤, 나는 민과 함꼐 교차로를 건넜다. 클럽과 클럽 사이를 이어주고, 향락과 향락 사이를 이어주는 이태원 역 앞의 교차로는 느리게 걸어가는 취객들을 위한 다리였다. 나는 민과 함께 교차로를 건너, 바로 앞 건물 2층에 있는 클럽으로 갔다. 이미 입장용 팔찌를 받아둔 클럽이라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클럽 안은 복잡하고, 시끄럽고, 사람들로 가득하여 그의 친구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친구가 출입구 바로 앞에 마중을 나와있었다. 나는 작은 목례로 그에게 인사하고 홀가분하게 클럽을 나섰다.

 나는 카카오 택시를 호출했다. 아무 택시도 잡히지 않았다. 무응답이 곧 답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호출 취소와 호출을 반복해가며, 카카오 블루가 잡힐 때까지 기다렸다. 카카오 블루는 웃돈을 내야 하지만, 무조건 호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좋은 방안이었다. 나는 3,000원 정도를 추가로 내고 택시를 잡았고,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기다렸다. 택시를, 집으로 가는 동안의 휴식을 기다렸다. 새벽이라 택시는 빠르게 오고 있었다. 한산한 차도를 달려오고 있는 택시를 생각하니 기운이 났다.

 전화벨이 울렸다.

 예감이 왔다. 택시 기사의 전화였다. 카카오 택시의 안내멘트가 나오고, 택시 기사의 난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택시 잡으신 분 맞죠?”

 “네네, 왜 전화하셨나요?”

 “아 그게, 죄송하지만, 취소를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짜증이 났다. 새벽의 이태원에서 기껏 잡은 택시를 놓치면 다른 택시를 잡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나는 화가 났다.

 “왜죠?”

 그의 목소리는 웅얼거림으로 변해갔다. 작아졌고, 의미는 불분명해졌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은 요약하자면, 기존 손님이 하차하자마 웬 취객이 차에 올라탔는데, 너무 술에 취해 말이 통하지 않으며, 두고 내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화가 났다.

 ‘하필’ 이런 일이 ‘하필’ 나에게, ‘하필’ 웬 취객이, ‘하필’ 내가 타려던 택시에 올라탄 이 상황에 대하여 화가 났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미 택시기사는 취객을 태우기로 노선을 정했고, 나에게 전하려던 말은 허락이 아니라 통보였다. 나는 침묵을 지켰다. 이 상황이 허탈하여 할 말을 찾고 있었다. 나는 계속하여 침묵하였다. 전화기를 타고 취객의 술기운과 클럽 앞의 열띤 공기가 교환되었다. 나는 알았다고 말할 수밖에는 없었다. 곧 내 앞 도로를 통해, 내가 잡았던 택시가 지나갔다. 나는 너무나도 화가 났다.

 나는 그 날 어떻게 집에 돌아왔을까? 정말 작정한다면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이기도 했다. 나는 피곤하긴 했지만 완전히 맨정신이었고, 따릉이를 타고 왔을 가능성도 있다. 어쩌면 얌전히 배차시간 40분의 심야 버스를 기다리다가 결국 40분을 걸려 버스를 타고 집에 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부정적 기억을 내 머릿속의 공동에 쳐박아버리는 습관이 다시 발동한 것지도 모른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집에 어떻게 돌아왔는지, 내가 무엇을 타고 왔는지,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내 다음 기억은 바로 집 앞으로 이어졌다. 나는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에 돌아왔다. 센서등이 나를 인식하고 노란 불빛을 발하였다. 나는 조심히 집에 들어가 옷을 벗어제꼈다. 침실에서 준호가 자고 있었다. 몸을 대자로 뻗은 채였다.

 그는 잠시 눈을 떠, 졸음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잠시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다시 뒤돌아 잠에 빠졌다. 나는 그의 넓은 등을 보았고, 아까 전까지 있던 클럽을 생각했다. 그리고 내 손을 잡아주던 준호의 큰 손을 생각하였다. 그 손을 붙잡고 살아온지 어느새 2년이 넘어버렸다.

 나는 씼지도 않고 침대에 누워 준호의 품에 안겼다. 준호는 잠결에 자연스레 나의 어깨에 손을 둘렀다. 나의 안락한 집이었다. 귀는 멍멍해졌고, 체력은 다 빠져버려 잠에 들기에도 힘이 부칠 지경이었지만,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오직 그의 품 안에서 나는 진실로 숨쉴 수 있었고, 나는 세상을 등 질 수 있었다.

 나는 눈꺼풀을 가볍게 내리고, 어둠 속에 비춰오는 빛을 보았다. 빨간 배경에 보랏빛과 파란빛이 보였다. 빙빙 도는 도깨비불도 보였다. 나는 정신을 아득히 넘겨 시끄러운 나의 눈꺼풀 속 그 너머의 진정한 어둠을 보았다. 진정한 어둠은 나의 의식 안에 있었다. 내 의식 속에서 나는 휴식하였다. 준호의 품 안에서 나는 따뜻하게 있었다. 밖에서는 눈이 오더라도 난로를 켜면 따듯하게 있을 수 있는 것처럼, 어떤 풍파도 나의 단잠을 깨뜨릴 수 없었다. 나는 곤히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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