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안부를 묻는 카톡이었고, 오히려 친구들과의 단톡방이 훨씬 재미있었다. 친구들과는 실 없는 농담을 던지고, 그들이 메신저를 보지 않으면 심심해했다. 허송세월을 보내고만 있었다.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일은 내 실무감각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가 입력하는 금액이어떻게 분개되고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 건지도 알지 못한채 나는 손가락만 움직이는 기계가 되었다. 그렇게 기계처럼 손가락을 움직이고 기계처럼 밥 때가 되면 밥을 먹으러 가고 기계처럼 퇴근시간이 되면 퇴근하고 버스에 올랐다.
전농동으로 가는 버스는 붐볐다. 사람들은 마트 진열대에 빽빽하게 앞뒤를 다투는 상품들처럼 버스 안에 포장되어 간신히 숨만 쉬며 집으로 향했다. 나는 검은 백팩을 앞으로 매고, 노래를 들으면서 주의를 돌리려고 애를 썼다. 그러지 않으면 내 예민함이 지나치게 올라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그들이 뱉어내는 이산화탄소로 가득한 버스 안에서 시간을 죽이는 것을 혐오하였다. 그렇지만 서울의 생태 안에서 노동자들이란 버스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존재들이었다. 나는 노동자라는 라벨을 달고 버스를 통해 운송되어간다는 생각을 하며 집에 갔다.
집에 가면 준호가 있었다. 팬티바람으로 잡곡밥에 참치를 준비해둔 준호는 내가 돌아오면 며칠 간 보지 못한 사람처럼 나를 반겨주었다. 나는 준호와 껴안고, 침대로 달려가 옷도 제대로 갈아입지 않고 일단 누웠다. 나는 휴식이 필요했다. 하루 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열이 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무실의 시끄러운 소리가, 사람들의 시선이 나의 몸속으로 침입해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런 환경이 서글펐고, 그런 내가 서글펐다. 내가 무진장 예민한 사람이어서, 내가 다른 사람들처럼 여유롭게 잘 살아가지 못해서 나는 슬펐다.
그래서 나는 종로와 이태원에 갔다. 같은 게이들과 어울렸고, 음악을 들었고, 춤을 추었다. 춤을 추었다기보다는 나의 공허를 메꾸기 위해서 삽질을 했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몰랐다. 케이팝 유튜브를 틀면 나오는 안무를 나는 도통 외우지 못하였다. 후렴구에 있는 몇 시그니처 안무들만 기껏 따라하는 나의 앞에는 소위 '스걸' 스테이지 걸들이 있었다. 그들이 진짜 '걸'인지도 차치해야 하지만, 그들에게는 무대를 장악하는 끼가 있었다.
클럽에서는 예전 케이팝과 현재의 케이팝이 번갈아 가며 나왔다. 카라와 소녀시대의 노래는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노래와 같은 고전이 되어 있었고, 트와이스, 블랙핑크, 뉴진스 등으로 클럽의 시간은 케이팝 덩어리가 되어 흘러갔다. 나는 민과 함께 자주 클럽에 갔는데, 민은 항상 인기가 많았다.
민이 '이쪽'세계에서 발이 넓기는 하지만 클럽마다 다른 사람에게 안겨있길래, 나는 민에게 어떻게 그렇게 아는 사람이 많냐고 몇 번인가 물어봤었다. 민의 대답은 나를 정말 놀라게 했다.
"아는 사람은 한 명이고, 저 사람은 처음 본 사람이야."
민의 매력이 뭐였을까? 민의 친구로서 그에게 돌진하기보다는 주변을 돌기를 선택한 나로서는 알기 어려웠다. 그저 '식'의 세계는 다양하니, 다양한 취향이 있기 마련이고, 내가 곰처럼 생긴 준호를 좋아하는 것처럼, 민처럼 생긴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태원에서 금요일과 토요일을 보낸 후에는 주말에 약속을 나갔다. 나는 나름 친구가 꽤 있었다. 남들에게 맞추어주려는 타고난 특성과 학습된 순종이 다른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는 모양이었다. 나는 대학 친구들과, 이쪽 사람들과, 우연히 알게 된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었고, 깔깔 웃어대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텐션이 필요했다. 다른 사람과 마주하지 않을 때의 나의 텐션은 지층을 뚫고 맨틀까지 내려가 있었다. 그런 와중에 메신저로 누가 보자고 한다거나, 준호와 같이 이야기를 한다거나 하면 나는 텐션이 올라왔다. 나는 특히 친구들와 여럿이 보는 상황을 좋아했는데, 아무리 친구끼리 친하다고 해도 여러 명이 있어야 더욱 텐션이 올라가는 법이라고 생각했어서 그랬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을 찾았고, 사람들도 나를 찾았다.
남들이 보기엔 이런 내가 참 신기했을 것이다. 나는 남들이, (준호를 남으로 치지 않는 한이지만), 보기에는 우스갯소리를 잘하는 아이였다. 농담으로 무장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유머를 발휘하는 센스도 있었다. 나는 웃고 다녔다. 가끔은 너무 기분이 좋아 쇳소리를 내며 웃어제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기분이 좋을 때조차 흔들리고 있었다.
하루는 내 대학 동기, 정과 함께 밥을 먹었다. 누군가와 단 둘이 있으면 마음이 긴장되는 나는 일부러 더욱 기분이 좋은 척을 했다. 더욱 농담의 수위를 높였고, 침묵의 범위를 좁혔다.
샤브샤브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학교 정문이 뻔히 내다보이는 창가 자리였다. 나는 학교 앞에 있는 따릉이를 보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였다. 그들 중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정과 함게 확인해 보기도 하였다.
샤브샤브의 채소와 고기를 적절하게 요리하는 것은 정의 몫이었다. 이런 자리에서 나는 항상 가위를 피하지 않으려 들었지만, 곧 나의 저열한 실력을 파악당하고 가위와 집게를 빼앗기기 마련이었다. 정은 채소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 고기를 적당할 때에 적당하게 익혀 나에게 먹으라고 말해주었다. 젓가락에 집중하며 우리는 학교에 대해, 수업에 대해, 동기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지만 별로 진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우리 모두는 이미 마음 속에서 학교를 떠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기들은 다 뭐한대?"
"공부한다는데?"
"그건 나도 알아. 근데 진짜로 공부하고 있는 게 맞을까?"
이런 식으로 궁금하지 않은 동기들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누가 누구와 사귄다느니 헤어졌다느니의 이야기를 다하고 나니 샤브샤브를 다 먹어버려 칼국수 면을 넣을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