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따가웠다. 점심시간에 산책을 하며 걸어다니는 길은 견디기에는 지나치게 뜨거워졌다. 나는 점심의 짧은 휴식을 곧 그만둘 수 밖에는 없었다.
장마철이 시작되니 비가 자주 왔고, 검은 우산을 바닥에 탁탁 치고 다니며 걸어다니는 나는 회사에서 빌붙을 곳 없는 존재로 느껴졌다. 나는 파견직이니까,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어른이고, 일단 계약직 이상이니까, 나는 말을 걸 사람이 없었고, 같이 웃을 사람이 없었다. 나는 그렇게 우울을 머금고 세금계산서를 계속 발행하였다.
여름은 해가 길어 퇴근하고 난 뒤에도 날이 쨍쨍하였다. 나는 횡단보도 사이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파란 버스를 기다렸다. 파란 버스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나는 백팩을 앞으로 매고 사람들 사이에 낑겨서 이동했다. 물류창고에서 컨베이어 벨트 위로 물건들이 이동하듯 나는 자동적으로 집으로 향했다.
버스 안은 후덥지근했고, 사람들이 내뿜은 이산화탄소는 졸음을 불렀다. 사람들은 다들 검은 가방에 검은 옷을 입고, 검은 표정을 지으며 사람들 사이를 항해하였다.
나는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와서는 집에서 음식을 퍼먹는 버릇이 생겼다. 편의점에서 초콜릿 매대에 있는 초콜릿을 하나씩 사들고 집에 들어와 까먹었다. 어떤 초콜릿은 불량품 맛이 났고, 어떤 초콜릿은 풍미가 있었다. 나는 그렇게 초콜릿에 대해 여러 취향을 가지게 되면서 살이 쪘다. 점차, 바지가 맞지 않게 되었고, 벨트를 느슨하게 매게 되었다. 나는 이런 내 외모와 건강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기분이 안 좋은 날에는 먹을 수 밖에 없었다. 먹지 않으면, 나는 방구석의 찌꺼기가 되어 침잠해있을 것이었다.
나는 초콜릿을 먹었고, 살이 쪘고, 술자리에 자주 나갔다. 술자리에 나가서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으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하하호호 웃으면서 스스로의 괴리를 실감했다.
하루는 그렇게 일하는 와중에 본가에 내려갔다. 경기도 안산이었다. 아빠의 검고 큰 승용차 뒷좌석에 앉아 창 밖에서 펼쳐지는 산과 강의 파노라마를 보며 멍을 때리고 있었다. 내가 말하는 '멍을 때리다'는 '각종 생각을 하며 시간을 흘려보내다'에 더 가까웠다.
"동호야, 요즘은 어떻게 지내나?
엄마 혹은 아빠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나는 난감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같이 있을 때면 긴장하였다. 도무지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정말 사실대로 그들에게 '응 요즘 남자랑 동거하고 클럽에 다니고 게이들이랑 어울려서 술자리에서 남자 얼굴을 보며 속닥거리면서 다녀.'라고 이야기 한다면 분위기에 얼음물을 붓는 꼴이었다. 그래서 나는 거짓말을 했다. 그냥 잘 지낸다고, 컨디션도 괜찮고, 기분도 괜찮은 요즘이라고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거짓말에 능하지 못했다. 내가 어릴 적부터, 나는 표정으로 모든 것을 말했다. 기분이 좋다고 이야기하면서도 표정을 일그러져서 '나는 네가 싫어'라고 이야기 했으며, 이런 나를 사람들은 불 같다고, 혹은 투명하다고 이야기하였다. 나는 이런 나를 알고 있었다.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은 나를 알고 있었고, 거짓말에 능숙하지 못한 나를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은 나를 알고 있었다.
그 당시에 나는 솔직함이 미덕이라고 생각했었다. 진실된 마음만 있다면, 일그러진 관계도 다시 잘 헤쳐나갈 수 있으며, 오해는 풀리기 마련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 아빠에게 거짓말을 하는 나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내가 더 솔직하지 못해서, 내가 거짓말을 해야 해서, 그들에게 예의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 아빠는 나를 더 부끄럽게 만드는 말을 가끔 하셨다.
"너는 여자친구 안 데려오니, 여자에 관심이 별로 없니?"
"내 친구 아들 누구누구는 여자친구랑 몇 년이 되었다더라."
등등 의 이야기는 물론,
"내 친구 누구누구랑 얘기를 하는데, 이런 일이 있었던 거 있지."
같은 말도 나를 힘들게 하였다. 나는 부모님께 사실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내 친구에 대해서도, 내 남자친구에 대해서도, 내 삶에 대해서도, 나는 가장하고, 긍정적으로 과장할 뿐이었다.
나는 이런 내가 싫었고, 엄마 아빠와 더욱 친해지고 싶었다.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부모와 자식 간의 사이는 요즘 부쩍 가까워졌었다. 엄마 아빠와 같이 외식을 하고, 웃고, 친구처럼 약속을 잡고 만나기도 하는 관계의 진전이 나는 자랑스러웠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 아빠에게 솔직해지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만 했다.'
커밍아웃은 어려운 일이다. 내가 처음 커밍아웃한 사람은 내 대학동기 정이다. 정이 공부를 위해 잠시 본가에 내려가 있는 동안, 나는 정과 길게 통화를 할 일이 생겼다. 평소에 긴 통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정과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에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 빌어먹을, 솔직해지고 싶다는 감정 말이다. 나는 솔직해지고 싶었다. 나는 세상에 더 다가가고 싶었다. 언제까지나 연애 이야기가 나올 때에 사람들에게 수줍게 나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거짓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정에게 이야기했다. 정은 여자였고, 내가 게이라는 것에 대하여 절대 거부감을 가지지 않을 친구였다. 나는 이를 이미 알고 있었기에 통화를 하면서 정에게 먼저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근데, 나 사실 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