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
세상은 보면 볼수록 새롭고, 사람도 만나면 만날수록 새롭다. 그런데 그 새로움은 다름에서 나온다. 다름을 포착하는 방식에 따라 새로움이 되기도 하고, 똑같은 일상이 되기도 한다. 결국, 새로움은 다름을 감각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 같은 풍경도, 같은 얼굴도, 같은 하루도 어떤 날은 지겹고, 어떤 날은 생경하다.
다름은 때론 거슬리고, 때론 미소 짓게도 한다. 어떤 이는 혀를 찰 만큼 세상에 예민하고, 어떤 이는 말 한마디로 그 세상을 다르게 끌어안는다. 익숙한 얼굴도 어느 날은 낯설게, 익숙한 길도 어떤 날은 다르게 다가온다.
다름은 살아가는 모든 것에 깃들어 있다. 그리고 그 다름으로부터, 새로움이 피어난다. 다름은 새로움의 씨앗이다. 그날은 아침부터 다름으로 가득한 날이었다.
서울로 향하는 버스 안. 늘 그랬듯이 앞쪽 3번에 앉았다. 빠르게 바뀌는 풍경을 큼지막한 유리창 너머로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필 프리미엄 버스라 앞이 꽉 막혔다. 할 수 없이 졸다 깨다 옆 창문으로 세상 구경하는데 버스 기사의 한 마디가 내 모든 감각을 사로잡았다. ‘쯧’이다.
앞서가는 차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기사님이 쯧하고 혀를 찬다. 버스가 코너를 돌며 좌석 테이블에 얹어 둔 물건 하나가 바닥에 떨어지며 뒹굴자 기사님이 또 쯧하고 혀를 찬다. 뭘 또 했다가는 다시 쯧소리 들을까 봐 조심조심하고 있는데, 눈 앞에 나타난 주민센터를 보고 놀랐다. 우리 동네 행복센터 두 개는 될 만큼 높고 넓고 길었다. 이 놀라운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며 ‘찰칵’하자, 기사님이 또 쯧한다. 이쯤 되면 그냥 삶의 리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끊임없이 세상을 혀끝으로 밀어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어떤 이 한마디는 행복 호르몬을 솟게 만든다. 터미널에 내려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복권 당첨’이라고 눈이 번쩍 띄게 붙여 놓은 전단이 보였다. 8월 9일에 이곳에서 1등이 두 번째로 나왔다고 한다. 순간, 여기서 복권을 사면 나도 당첨될 듯한 무한한 ‘자신감’이 솟아났다. 그래서 딱 5천 원만 사보자 생각하고 줄을 섰다.
줄이 줄지 않아 앞을 보니, 한 손님이 복권을 잔뜩 뽑아간다. 저 정도는 사야 하나 요모조모 머리를 굴리는데 내 차례가 되었다. “5~ “하며 입술을 오므렸다 피려는데 여성 한 분이 내 앞으로 헐레벌떡 뛰어든다.
“저~ 버스가 출발 직전이라 먼저 사면 안 될까요?”
안되긴요, 안 될게 뭐 있나요. 그래도 된다고 손까지 앞으로 내밀며 양보했다. 아가씨도 5천 원을 내밀더니 한 세트 사 간다. 그러며 나를 보고 웃는데, 그 모습이 귀엽고 복스럽다. 그녀가 아주 작은 소리로 내게 속삭인다.
“복 받으세요~~~^^”
그 순간, 가슴에 시원한 바람이 거침없이 불어오더니 뭔가를 뻥 뚫고 지나갔다. 정말 복이 어마어마하게 몰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복권 당첨과 진배없다.’
지하도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앞 ‘그 꽃집’에 카탈리나 미니장미가 꽂혀 있다. 꽃말은 영원한 사랑 그리고 우정이라는 메모지가 붙어 있다. 마치 오늘 그대의 하루에는 ‘영원한’과 ‘우정’이라는 키워드가 함께 할 것이라는 신호(sign)처럼 보였다.
*그 꽃집..."사랑: 타월과 장미와 영화" 참조
역삼동 사무실에서 “OOO ADVANCED 과정”을 마치고 지인들과 저녁 식사를 했다. 오랜만에 찾은 강남역 근처의 식당과 술집과 상가는 아련한 추억이 살아나 반가웠는데 한편으로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여전히 분주한 사람들, 좁은 도로를 꼭 지나가야겠다며 고개를 들이미는 외제차, 번쩍번쩍한 조명과 시끌벅적한 소음. 서울 떠난 지 5년도 안 되었는데 강남은 벌써 다른 세상이 되었다. 덕분에 군산 구도심의 조용한 밤풍경과 대비되어 소란스러움이 다시 새로웠다.
정신없음과 새로움은 이미 교육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지정된 사람에게만 전송된 QR코드를 뒤져야 하고, 최첨단의 엘리베이터 운영 방식에 헤매느라 탔다 내리기를 세 번 한 뒤에야 겨우 9층 교육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신없고 빠듯한 시간 때문에 1층에 있는 스타벅스는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그 어렵게 만난 스타벅스를 말이다.
*스타벅스... "스타벅스가 없다니" 참조
강남역 맛집도 새롭기는 마찬가지다. 놀랍게도 ‘맛있는’ 맥주가 300ml에 1900원이다. 여기에 안주를 네 개나 시키고 연태 고량주 작은 것으로 두 개를 시켰는데도 값은 군산보다 저렴했다. 강남 땅값이 얼만데, 이런 가격이 나오나 싶어 놀랬다.
더 놀란 것은 옆집 잘 나가는 맥주 가게에서 운영하는 특별한 '규칙?' 같은 거였다. 입구에 붙어 있던 안내문을 거들떠도 안 보고 입장한 우리 일행 앞에 가게 사장님이 나타나서야 ‘피크 타임제’를 알았고, 그 덕분에 우리는 쫓겨나듯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나오면서 보니 손님들 중 우리가 제일 나이가 많았고, 내 앞에 서있는 형님이 최고령 손님이었다. 혹시 형님이 쯧하는 줄 알고 입술을 노려봤는데 그러지 않았다. 술집에서 피크 타임제라니… 쯧!
오랜만에 공장 이야기, 옛날이야기,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벌써 혀가 꼬부라진 친구 같은 사회 친구가 말한다.
“우리 오래오래 만납시다.”
오래오래가 얼마나 될까부터, '살자'가 아니라 '만나자'라는 참신함까지 생각하니,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명료한 그 한마디에 복잡한 생각은 사라지고 흩어졌던 감정이 한데 모였다. 그래 우리 오래오래 만나자. 더 수다 떨고, 서로 술값 내겠다고 티격태격하고, 군산도 수시로 놀러 가자며 목소리를 높였다. 술 먹고 괜히 하는 소리는 아니라는 진심이 느껴졌다.
세상은 보면 볼수록 다르고, 사람도 만나면 만날수록 다르다. 그 다름 속에 새로움이 피어난다. 익숙한 곳에 머물든, 익숙한 그곳을 떠나든, 일상에는 언제나 작고 놀라운 새로움이 숨어 있다. 장소도, 사람도, 감정도─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이 곧 특별한 날이다.
다름은 종종 불쑥 찾아오고, 새로움은 그 다름을 포착하는 우리의 감각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 특별한 틈을 감지하고, 삶을 조금 더 풍부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매일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시간에 도착하고, 같은 자리에 앉는다. 그런데 그날은 창밖의 하늘이 조금 더 높아 보이고, 누군가의 말이 조금 더 따뜻하게 들렸다. 아무 일도 없던 하루가 그렇게, 아주 조용히 달라졌다.
삶은 익숙해서 새롭다.
그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이 특별한 날이다.
그 하루, 오늘에는 또 어떤 특별함이 숨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