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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장인이지우 Feb 10. 2024

나의 불안은 엄마로부터?

상담일지 #4

 어느덧 12회기 상담에 접어들었다. 2주 전 상담에서는 내가 너무 많은 것을 한다고 지금은 습관을 유지하는 것에 집중하자고 하셨었다. 2주 만에 본 선생님은 내게 에너지가 떨어진 거 같다고 말씀하셨다. 인정했다. 빨래도 밀리고 습관도 겨우겨우 해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상담을 시작하면서  불안과 어릴 때 이야기를 했다. 항상 실수하고 어리바리했지만 의지 하나만큼은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어린 나. ADHD 증상과 불안, 환경을  극복할 수 있을 리 만무했고, 나는 더 노력하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강박이 되었다. 상담 선생님도 2주 동안 고민해 주셨다고 하는데, 나를 보면 아무것도 안 하면 안 된다, 뭘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거 같다고 하셨다. 공감했다. 2주 동안 중요한 것 외에는 안 하려고 하니까, 꽤나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원래도 그런 편이었지만, 루틴을 잘 지키고 무언가를 해서 해소가 되면 기분이 괜찮았다. 하지만 의식해서 안 해야지 하니 오히려 더 눈에 들어오고, 그럼 정리를 조금만 해야지 하다가 일은 더 커지고... 누군가 뭐 하냐고 물어봤을 때, 정리하고 있다는  대답만 수두룩하게 했었던 거 같다.


 나는 왜 노력하고 뭔가를 해야만 했던 걸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들 중 답이 있었다. " 엄마가 지우 씨의 불안 같아요"


선생님 : 엄마도 ADHD가 있으셔서 적극적인 대처를 못 하셨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면서 엄마의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었을 거 같아요.

 나 : 맞아요. 음, 그리고 엄마는 이상한 데서 관심이 많고 정작 중요한 것에는 아무 생각이 없으셨어요. 똑 부러지시지도 못했고, 말도 더듬으셨죠. 고등학교 때 엄마에게 자해를 한다고 털어놨을 때도 한마디 타박했을 뿐 깊게 고민하시는 거 같지 않았어요. 내가 뭘 입었는지, 어딜 가는지, 뭘 먹었는지는 그렇게 집요하게 물어보면서 미래에 뭐가 될지, 뭘 하면 좋을지, 또 뭐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으셨어요.

 선생님 : 이 전에 지우 씨가 엄마가 경계선 지능에도 가까워 보인다고 했었는데 지금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확실히 경계선 지능이 실수도 있겠어요. 그런 엄마를 보면서 엄마 같은 삶을 살지 않으려면 나는 노력해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거 같아요. 엄마 같은 삶을 안 사려면 뭘 해야 하지? 계속 고민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불안하기 시작한 거죠. 지우 씨의 불안은 엄마였던 거 같아요.

 나 :... 그런 거 같아요. 엄마를 보면서 엄마도 젊었을 때는 똑똑했을까? 나도 엄마처럼 되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친언니는 똑똑하고 나도 언니만큼 잘하고 싶은데 증상 때문에 잘 안되니까 자존감은 낮아지고, 완벽주의가 생긴 거 같아요. 똑똑한 사람이 되고 싶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실천이 안 되니까... 나는 게으른 사람이구나, 미루는 사람이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엄마'가 나의 불안이라니. 선생님과 상담할수록 공감되는 이야기가 많았다. 가족들이 어색하고 불편해진 이유도 알 거 같았다. 엄마가 나의 불안이라면,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딱 맞아떨어졌다. 엄마가 어리바리하게 구는 걸 보면, 나도 엄마처럼 될 거 같고 짜증이 났다. 엄마, 아빠에게 짜증 내는 내가 더 싫었다. 그래서 그냥 안 보고 사는 게 더 편할 거 같았다. 예전에 쓴 메모 중 이런 글도 있었는데 상담 중 엄마 아빠의 환경을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로, 원망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을 들으니 선생님께서 나를 잘 보셨구나 싶었다. 괜히 울컥하고 그랬다.



2022년 12월 19일 카톡 내게 쓰기

아빠에 대한 기억이 솔직히 좋지 않고 신경 쓸수록 짜증 나는 일들만 일어나서 만날 때도 어색하고 기분이 좋지 않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빠에 대한 걱정이 많이 든다. 그래 종합심리검사 보고서 내용처럼 아빠에 대한 양가감정으로 나는 너무 혼란스럽다. 아빠가 싫고 보기 싫지만 걱정은 된다. 엄마, 아빠에 대한 원망이 있어서일까? 나도 나의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걸 알고, 엄마 아빠도 그랬을 거라는 걸 안다. 그렇다고 나의 상처를 무시하고 싶지는 않다. 아빠랑 잘 지낸다고 그런 일들이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으니까, 그런 상황에 노출되었던 감각들은 내 뇌에 깊숙하게 각인이 되었으니까. 집에서 무기력하게 보냈던 시간들이 습관처럼 자리 잡았으니까. 억울함을 표출할 곳은 없고 결국은 자신을 탓하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엄마 아빠와 마주하는 것이 이제는 편하지 않다. 사실은 괜찮지 않았으니까.


2023년 1월 22일 카톡 내게 쓰기

 가족에게는 왜 말투가 곱게 안 나갈까? 나는 아빠가 불편하다. 엄마는 편하지만 불편하다. 언니는 엄마 아빠를 잘 챙기려고 하는데 나는 관심이 없다. 엄마 아빠랑 만나면 짜증을 내는 내가 싫은데 그냥 안 만나는 게 서로한테 낫지 않나? 언니를 보며 비교하는 것도 싫다 과거의 일들에 상관없이 언니는 엄마 아빠를 일부 이해하고 안타까워하고 챙기지만 나는 이해하고 싶지 않다. 아빠가 옆을 스쳐 지나가는 것도 싫고 나에게 말을 거는 것도 싫다. 아빠에 대한 양가감정은 엄마 아빠를 대하는 언니를 보며 더 선명하게 느껴지고 불편하게 만든다. 그래서 본가에 가는 게 싫다. 언니가 가지 않았다면 나는 본가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혼자 운전하는 것도 혼자 본가에 가는 것도 나는 너무 싫었다.



나 : 예전에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거든요. 그림으로 무언가를 할 거라고 생각하고 꿈을 꿨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친구는 학원도 다니고 대학도 디자인과를 갔는데 나는 노력도 잘되지 않고 점점 안 그리게 됐어요. 그림을 놓지 못하겠는데 하지도 못하겠는 거예요. 지금은 뭘 그리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그림으로 뭘 하고 싶지도 않은 거 같아요. 그래서 그냥 놓으려고요. 할 수 있는 게 다양하니까요. 재봉틀도 배우고 영어회화도 하고...

선생님 : 지금 봐요, 지우 씨가 모닝콜도 하고, 너무너무 잘 지켜주고 있는데 2주 전에 너무 많은 걸 시작한다고 했죠? 아무것도 안 하라는 말은 아니었지만 그 후 모닝콜 하는 시간이 조금씩 늦어졌죠. 아무것도 안 하려니 불안하고, 루틴이 끝나고 나서 할 일이 없으면 루틴도 무너지는 것 같아요. 지우 씨는 뭔가를 하는 내 모습에 안심을 하는 거 같아요. 노력해야 해, 뭔갈 해야 해, 하면서 이것저것 충동적으로 시작하면 너무 힘들어요.

 나 : 맞아요... 요즘은 패션에 관심이 있어서 재봉틀을 배우려고 한 건데 수업을 두 개까지 신청할 수 있어서 영어회화도 하게 된 거거든요. 거기까지는 굳이 신청 안 해도 되는데 그냥 하면 좋겠지 하고 신청했어요. 항상 자기개발에 집착하고...  그래도 재봉틀 배우는 건 너무 재밌더라고요. 옛날부터 손으로 뭔가를 하는 걸 좋아했었어요. 내년에 사이버대학교도 고민 중이에요!

 선생님 : 좋네요! 아마 그림은 실체 화가 없어서 더 목표하기 힘들었을 거 같아요. 그래도 수업 너무 열심히 고민해서 하지 말고 즐기면서 해요,  습관이랑 집 비우기를 우선순위로 둡니다..  조금만 더 자신을 믿어봐요. 지금도 잘하고 있어요.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당연히 작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ADHD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어릴 적부터 생긴 만성 우울이 내 발목을 잡았던 것일까. 누구보다 꿈이 많고 재능 있다며 칭찬받았지만 정작 나는 그 무엇도 되지 못했다. 나보다 앞서가는 친구들을 보며, 나는 열등감을 느껴야 했다. 그림을 놓지도, 하지도 못하겠는 상태가 됐다. 제대로 시작도 못했던 꿈은 그렇게 저물어갔다.


 이번 주 선생님과의 약속은 집 비우기와 습관 유지를 우선순위로 두기다. 상담 선생님께서는 든든하고 참 감사하다. 다시 또 2주를 살아내야지. 아직도 자주 만나지 않는 사람들은 내가 그림을 그리는 줄 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다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했던 나의 어린 꿈. 혹시나 싶어 모아놓은 색연필과 파스텔들. 이제는 정말 안녕해야겠다. (뭐야 왜 오글거려. 당근 해야지, 오늘도 집 비우기의 굴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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