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반 May 20. 2024

카페, 마음

연재 소설

 으아아악! 내가 쓰레기통이야?

 몸까지 들썩이며 잠결에 비명처럼 부르짖었다.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이 등으로 가슴골 사이로 주르륵 흘렀다. 전력 질주라도 한 듯 턱까지 찬 숨을 고르느라 천장을 응시했다. 꿈, 꿈이었나. 윤희는 여전히 불규칙하게 요동치는 가슴을 부여잡고 콧숨을 쉭쉭거리며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한동안 이쪽저쪽으로 몸을 모로 세워가며 뒤치락거렸다. 무슨 꿈을 꾼 건지 머릿속을 더듬었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거릴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반송장 상태로 눈꺼풀만 깜빡였다. 제멋대로 뛰던 심장 박동이 조금씩 제 속도를 찾아가고 눈꺼풀이 스르르 완전히 감겼다. 

    

 우라지게 추운 날이다. 윤희는 코트 깃을 여미고 한껏 몸을 웅크린 채 빌딩 숲 사이로 종종걸음을 쳤다. 매서운 바람이 빌딩 사이를 넘나들며 휘파람 소리를 낸다. 간밤의 꿈에서 파생된 긴장의 여운이 아직 남아있다. 마음자리가 어수선하고 음울하다. 한없이 바닥을 파고드는 마음의 소용돌이가 다시 시작됐다. 윤희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조급함이 또다시 마음에 달라붙어 자신을 옭아매고 있음을 의식했다.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옷깃에 파묻은 얼굴에 따스한 입김이 스며들었다. 그 찰나의 온기가 주는 감각이 살갗을 타고 윤희의 비루한 마음으로 흘러든다. 윤희는 숨을 몇 번 더 아주 길게 몰아 쉰다. 방문 예약도 없이 부지불식간에 불청객처럼 불쑥 찾아오는 이런 불안은 달갑지 않다. 윤희는 마음을 단단히 동여맨다. 풍랑에 휩쓸려 가지 않도록 닻을 내리고 부두에 정박한 고깃배처럼.     


 ‘카페, 마음’


 종로 내수동 빌딩 숲 사이에 생경하게 자리하고 있는 오래된 단독주택을 개조해 만든 카페다. 윤희는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간다. 2인용 야외 테이블 두 개 정도 놓을 수 있는 크기의 마당 가장자리를 따라 사철나무가 뿌리 내리고 있다. 윤희는 퇴근하면서 마당으로 들여 두었던 입간판을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에 잘 띌 수 있도록 카페 문밖의 적당한 자리에 내놓았다. 입간판에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공간입니다. 

 상대와 음성 대화를 원하시는 분은 카페 이용이 어렵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윤희는 문을 열고 카페 내부로 들어서 창을 열고 밤새 혼탁해진 공기를 환기했다. 마당 쪽으로 난 통창을 뚫고 들어온 아침 햇살이 부서져 카페 바닥에 내려앉았다. 한쪽 벽면에 통으로 해 넣은 책장에 윤희는 자신이 소장해 온 책들을 가져와 꽂아두었다. 어림잡아 오백 권은 넘지 않을까. 통창을 따라 세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바 형태의 기다란 테이블과 양쪽 벽면 가까이 푹신한 소파와 작은 테이블 네 개씩을 짝으로 두었고, 공간에 비해 적은 자리 대신 허전해 보이는 곳에 중간 크기의 실내 식물 화분을 놓아 안온감을 채웠다. 책장의 맞은편 벽에는 다양한 종류의 찻잔과 티팟으로 장식했다. 카페에 머무는 손님들에겐 따뜻하게 데운 사기 찻잔에 차를 담아낸다. 안에 담기는 차는 같을지라도 투박한 머그잔과 예쁜 찻잔에 담긴 차 맛은 다르다. 마음의 손님을 대하는 사장의 신념이랄까.

 윤희는 벽시계를 올려보았다. 시간은 아홉 시. 오픈까지 삼십 분 정도 여유 시간이 있다. 냉장고를 열어 판매용 샌드위치 재료가 충분한지 재고를 확인한 후, 외투를 벗고 두툼한 니트카디건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어제 새로 들여온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렸다. 진한 커피 향이 은은하게 퍼지기 시작하자 윤희는 열어둔 창문을 닫았다. 온풍기를 틀어 썰렁해진 카페 내부를 포근하게 데우고 잔잔한 피아노 연주곡을 틀었다. 귀에 거슬리지 않는 단조로운 연주곡들이 오늘도 손님들의 침묵과 침묵 사이를 메꿀 것이다. 

 윤희는 갓 내린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창밖으로 흐리멍덩한 시선을 내 던지며 곱씹었다. 비명처럼 부르짖으며 잠에서 깼던 그 말. 깊숙한 내면으로 물려 덮어두었던 상흔이 아물지 못하고 덧나고 있는 탓이리라, 윤희는 입술을 비틀어 처연하게 웃었다. 혼란한 상념이 마음을 헤집기 시작하려는 순간, 윤희는 문을 열고 나가 마당을 가로질러 나무 대문 양쪽을 활짝 열었다. 열린 대문 사이로 살을 파고드는 찬 바람이 쑥 밀고 들어와 윤희를 휘감고 돌아 나갔다.      


 윤희가 마음을 운영한 지 벌써 일 년이 되었다.

 “누가 이런 데 와서 돈 주고 커피를 마셔? 모름지기 카페는 친구들이랑 떠들어 대려고 오는 곳인데! 말하면 안 된다고 하는 카페엘 누가 와?”

 일 년 전, 카페 오픈을 앞두고 제작한 입간판 문구를 보고 윤희 엄마가 대뜸 한 말이다. 일 년도 못 가서 망할 거라고 얼음을 입에 머금었다가 뱉어내는 투로 덧붙이는 엄마의 말들은 묘하게 윤희의 신경을 긁었다. 윤희는 엄마와 마주할 때면 알 수 없는 무력감에 휩싸였다.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고, 입 밖으로 나온 말은 그 사람의 성품이다. 윤희는 목구멍으로 쓴 침을 삼키며, 울컥 치미는 감정을 구부리며, 목소리를 다듬어 또박또박 차분하게 말했다.

“조용하게 차 마시고 책 읽고 생각하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쉬었다 가는 곳이야, 여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