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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반 May 27. 2024

첫 손님

연재 소설

 길을 지나던 사람들이 카페 앞에 세워둔 입간판의 문구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열린 대문 안으로 몸을 반쯤 들이밀고 쓰윽 훑어보다가 뒷걸음질로 가던 길을 재촉해 간다. 하루에도 열댓 명은 복사해서 붙여넣기라도 한 듯 같은 패턴으로 카페 안을 탐색한다.

 카페가 위치한 내수동 주변은 주거와 상업시설, 주한 외국 대사관과 업무시설들이 산재 되어 있어 상권은 좋은 편이다. 번화한 서울의 중심에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모습이 생경한 곳이다. 현대적인 빌딩 숲 사이 옛 고궁과 돌담길, 그 사이로 난 골목의 정취들이 한데 어우러져 풍기는 고즈넉한 느낌에 윤희는 묘한 편안함을 느꼈다. 그래서 이곳에 카페를 차렸다. 

 조금 독특한 규칙을 지켜야 하는 ‘카페, 마음’을.

 카페를 오픈하고 한 달 정도는 정말 손님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카페에 머무는 손님이 없었다. 새로운 카페가 오픈했나 하고 들어오는 손님들이 입간판 문구에 고개를 한 번 갸우뚱, 카페 내부로 들어서서 보이는 정면에 ‘이곳은 무언(無言)으로 운영되는 카페입니다. 잠시 말을 머금어 보세요.’라고 쓰인 문구에 다시 고개를 갸우뚱, 카운터에 멀뚱히 서서 카페 이용 안내서와 메뉴판, 그리고 말을 대신할 메모지와 볼펜을 내미는 사장을 보고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다가 대부분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 이왕 들어온 거 그냥 나가기도 뭐하니 음료만 주문해 들고 나가거나 아니면 별 이상한 곳 다 본다는 표정으로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그냥 나가거나.

 윤희는 개의치 않았다. 손님이 없더라도 일 년 정도는 버틸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해 두고 벌인 일이었다. 그녀의 엄마 말대로 일 년도 못 가서 망할 일은 없었다. 적어도 일 년은 이 공간에서 비루하고 헐거운 마음을 채워야겠다는 나름의 사욕을 담은 일이었으므로 윤희는 손님이 있든 없든 상관없었다. 그렇게 두 달, 석 달이 지나고 신기하게 카페를 주기적으로 찾는 손님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윤희는 나무 대문을 활짝 열어 오픈을 알리고 카운터에 앉아, 읽다가 접어둔 책의 페이지를 펼쳐 본다. 종이에 인쇄된 글자가 주는 심리적 안정감이 있다. 마음과 머릿속이 어지러울 때 윤희는 오래된 습관처럼 책 속으로 도피한다. 그리고 글을 쓴다. 일기처럼 휘갈겨 쓰는 글들은 그 순간마다 드는 느낌의 충동을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세상을 모두 불태울 듯한 열기 속을 꾸역꾸역 걸어서 윤희는 지금 이곳에 있다.



 카페 문이 열리고 손님이 들어왔다. 윤희는 책에서 시선을 거두고 출입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목도리로 입과 코까지 꽁꽁 싸매고 살을 에는 찬 바람에 실려 온 여자는 지원이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출근 도장 찍듯이 음료 쿠폰의 도장을 채우며 통창의 기다란 테이블 구석진 자리에 머물다 간다. 윤희는 지원과 눈이 마주치자 옅은 미소로 인사를 대신했다. 지원은 카페 이용이 익숙한 듯 카운터에 비치된 메모장에 끄적이더니 윤희에게 내밀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부탁드립니다.’

 윤희는 가벼운 고갯짓으로 주문을 받았다. 여자는 제 자리를 찾아간다. 카페 내부에 흐르는 피아노 연주곡과 커피 머신이 작동하는 소리가 묘하게 화음을 이뤘다. 활짝 핀 장미꽃 무늬 찻잔을 골라 데우고 갓 내린 커피를 담아 멍하니 마당만 내다보고 있는 지원 앞으로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새하얗고 투명한 피부를 가진 지원의 얼굴엔 청회색 옅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흐리멍덩한 두 눈의 초점은 무척 지쳐 있었다. 윤희는 고맙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여자에게 입꼬리를 올려 좀 더 환하게 웃어 보이고 카운터로 돌아왔다.     



 봄기운이 완연한 삼월의 어느 오후였다. 지원은 ‘카페, 마음’의 첫 손님이었다. 테이크아웃 손님을 제외하고 석 달째 머무르는 손님이 없어 윤희는 혼자서 조용한 사색을 즐기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마당 가장자리를 따라 사철나무가 줄지어 있는데 그 앞으로 두둑을 내어 작은 화단으로 꾸미고 형형색색의 꽃모종을 심느라 윤희는 대문 안으로 사람이 들어오는걸, 눈치채지 못했다. 한참 뒤에야 그림자가 어른거려 뒤를 돌아보니 말끔한 정장 차림에 긴 생머리를 한 삼십 대 초반 정도 돼 보이는 여자가 서 있었다. 윤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슬며시 웃어 보였다. 그리고 얕은 계단을 올라 카페 안으로 지원을 안내했다. 테이블과 지원의 눈을 번갈아 보며 편한 곳에 앉으라는 눈짓을 하자, 지원이 창가 구석으로 찾아들었다. 윤희는 카페 이용 안내서와 메뉴판을 지원에게 내밀었고, 지원은 한참 동안 정독했다. 그리곤 테이블에 비치된 메모지에 무언가 적기 시작했다. 그리곤 카운터에 있는 윤희에게 메모지를 내밀었다.

 ‘자스민 차 주문할게요.’

 윤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원은 자리로 돌아가 앉아 봄날의 오후 햇살이 가득한 마당을 멍하니 바라봤다. 윤희는 꽃무늬가 적당히 들어간 찻잔과 티팟을 골라 찻잎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쿠키 두 개와 우러난 차를 쟁반에 받쳐 들고 지원에게 갔다. 한 걸음, 두 걸음 옮기던 윤희는 멈춰 섰다. 지원의 어깨가 가느다랗게 흔들리고 있었다. 윤희는 잠시 고민하다가 지원이 앉은 테이블 위에 살포시 쟁반을 내려두고 마당으로 나가 마저 꽃을 심었다. 흙을 고르고 잡풀을 솎아내며 얼마나 더 울어야 사람의 눈물은 마를까, 윤희는 생각했다. 감정이 북받치면 도대체 왜 슬픈지,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는 혼란한 상태를 어쩌지 못하고 껴안고 살았던 윤희였다. 그래서 통곡하는 이보다 소리 죽여 우는 이가 더 애달프다. 지원은 그날 두 시간 정도 머물다 갔고, 그녀가 머물렀던 자리엔 메모 한 장이 남겨져 있었다.

 ‘사장님, 잘 쉬었다 갑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뒤로 지원은 드문드문 오가다, 이제는 편한 차림으로 거의 매일 들러 머물다 가는 마음의 단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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