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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첫마디가 인생을 바꾼다.

by 푸른 잎사귀

프롤로그

이사를 다닐 때마다 고이고이 모시고 다니는 상자가 하나 있다.

그런데 그 귀한 상자를 모시는 곳은 어이없게도 침대 밑 가장 구석자리이다.

그 무게가 무겁기도 하지만 굳이 꺼내 볼 마음의 여유도 이유도 아직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가끔 침대 밑에 처박아 둔 물건을 찾을 때라든지, 대청소를 하는 날이라든지 문득 그 상자를 볼 때마다 언젠가 공유할 때가 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때가 지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바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써왔던 일기장이다.


새 학년이 시작되고 책가방을 메고 학교를 오가는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을 보면, 이 아이들도 일기를 쓰고 있을까, 싶고 어떤 생각들로 살아가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내가 행복한 이유는 그 당시 10살 밖에 안 되었던 내가 매일 일기를 썼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그 일기장이 지금의 내 손에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일기장을 모으기로 마음먹은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의 첫마디 때문이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새 선생님과 새 친구들과 만난 지금으로부터 43년 전 오늘,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얘들아,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물이 무엇일 것 같니?”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값진 보물들을 열거하였다.

그런데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답은 뜻밖이었다.

“그건 너희가 쓴 이 일기장이란다.”

매일 일기를 쓰게 하려는 선생님의 의도와 둘도 없는 보물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시려는 진심이 담긴 말씀이었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도 알게 되었다.


3월의 한기가 느껴지는 추운 교실 안, 두 손은 무릎 위에 올리고 나무 걸상에 바르게 앉아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10살 여자아이의 맘에 왠지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내 일기장이 가장 값진 보물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일기를 매일 쓰고 공책을 새로 바꾸게 되면 일기장에 송곳으로 구멍을 뚫고 노끈으로 묶어서 쭉~묶어두었다.

송곳으로 구멍을 뚫는 것은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뚫어주셨으니 그 구멍을 볼 때마다 아버지의 손길도 느껴진다.


솔직히 일기를 읽어보면 별 내용이 없다.

맛있게 먹었고, 잘 놀았고, 학교 다녀왔고.. 이런 내용뿐이다. - 어찌 보면 10살에겐 이게 전부인 세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 그리고 담임 선생님께 칭찬을 받고 싶어서 착한 일을 꼭 하나씩은 하고 싶었던 마음과 어떤 일 속에서 깨닫게 된 것들을 짧지만 적으려고 한 모습도 보였다.

생일도 느리고 학교에 들어가서 한글을 깨쳐서 그랬는지 철자와 맞춤법도 많이 틀리고 문맥이 맞지 않는 것도 많지만 나는 10살 아이의 성실성에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앞으로 올리게 되는 글은 매일 밤 9시에 발행하려고 한다.

10살이었던 내가 일기를 쓰고 9시에 잠을 잤기 때문이다.

그때는 착한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고 텔레비전에서 방송을 했고, 그땐 정말 그래야만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새나라의 어린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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