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간
서기 1982년 3월 10일 (수요일) 날씨 맑음
오늘의 중요한 일 : 없음
오늘의 착한 일 : 동생
일어난 시각 : 오전 7시
오늘 시간에는 미술시간이 들은 날이다.
미술시간이다. 나는 미술 준비물을 꺼내 났다.
그런데 배ㅇ호라는 애는 준비물을 안 가지고 왔다.
선생님께서는 다음부터는 꼭 가지고 오랬다.
물을 나누어 주었다.
내 뒤에 있는 애는 물을 엎질렀다.
다음부터는 그런 애들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준비물을 꼭 챙기는 어린이가 되어야겠지
00는 열심히 잘해오니 참 착해요 -
잠자는 시각 : 오후 9시
오늘의 반성 : 없음
내일의 할 일 : 없음
'배ㅇ호'
내가 배ㅇ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땐 다들 살림살이가 어려웠고 구멍가게를 하다가 망한 우리 가족은 지하 단칸방에 세 들어 살 때였다.
그때 ㅇ호의 가족도 같은 주택 지하에 세 들어 살았다.
ㅇ호의 아버지는 술을 너무 많이 드셨고, ㅇ호네 집은 매일 부부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 날 ㅇ호네 부모님이 심하게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큰 고함소리, 물건 던지는 소리, 울음소리...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나는 고단함에 잠이 들었다.
다음날
ㅇ호네 방문 앞에 반으로 쪼개진 빨래판이 보였다.
그 당시의 빨래판은 나무로 만든 것이었다.
동네 아줌마들끼리 주고받는 이야기를 통해 ㅇ호 엄마가 ㅇ호아빠 머리에 빨래판을 내리쳤고
그때 반으로 쪼개진 것이라고 하였다.
쪼개진 빨래판을 보며 ㅇ호 아빠의 머리가 괜찮은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내 걱정과는 다르게 ㅇ호 아버지는 아무렇지 않게 일상생활을 하셨다.
다들 그게 신기하다 하셨다.
다른 사람 같았음 죽었을 거라고~~
몇 달 뒤 ㅇ호 아버지는 술을 너무 마셔서 간경화로 돌아가셨다.
그때 알게 된 ㅇ호가 3학년 때 같은 반이었구나.
새삼 알게 된 사실에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ㅇ호가 준비물을 안 가지고 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던 가정사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시절, 먹고살기 너무 힘든 시절이었다.
그래서 나는 미술시간, 음악시간이 싫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미술과 음악이 좋았지만, 수업 때마다 물감이며 붓이며 먹물, 화선지, 색종이, 풀 등 준비물을 챙겨가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자연히 맘도 멀어진 거 같다.
지금은 학교에 수업에 필요한 재료들과 악기 등이 비치되어 있지만, 이 시절 자녀를 키우던 부모님은 학교에서 가져오라는 준비물 챙기는 게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카드도 없었고 월급날이 아니면 현금도 없었기에 외상을 하거나 이웃에게 돈을 빌린 후 갚는 경우도 빈번했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도 준비물 사야 한다는 말을 하기가 부담되곤 했었다.
다른 아이들은 24색 36색 크레파스를 가져올 때 나는 12색 크레파스를 사용하다 보니 색을 칠해도 한계가 있었고, 동생과 같이 사용하다 보니 쉬는 시간에 동생네 교실에 가서 챙겨주고 오기도 했다.
음악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잘 사는 아이들은 멜로디언을 가져오거나 실로폰을 가져왔지만, 나는 저렴한 캐스터네츠나 트라이앵글을 가져가서 악기연주를 하곤 했고, 멜로디언을 치고 싶었어도 친구의 침이 범벅된 호수를 입에 물 자신은 없어서 그저 눈과 귀로 부러워할 따름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을 보면 부럽고, 나도 그려보고 싶어서 끄적이게 되고, 직장 들어가서 받은 첫 월급으로 턴테이블과 CD가 내장된 오디오세트를 산 걸 보면 미련과 보상심리가 작용했던 것 같다.
신기하게도 그 맘이 전달됐는지 현재 센터에서 하는 미술수업에서 만난 강사님을 통해 조금씩 그림도 그려보게 되었고, 20대에는 아르바이트해서 번돈으로 클래식 기타를 배워서 현악기의 선율에 푹 빠져보기도 했었다.
어린 시절의 결핍을 통해 나는 주변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팠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레 자리 잡은 것 같다.
결핍의 반대말은 풍부라지만 나는 결핍을 통해 겸손과 배려심을 배우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결핍이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든 것 같아서 감사하는 마음도 있다.
인생이란 게 어디 내 뜻대로 되는 게 있는가.
살면 살수록 더 드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