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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강호에 전서구를 띄워라

카오모스 KAOMOS - 현대판타지 웹소설

by 김톨 Mar 29. 2025


모두들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사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녀석. 그 정도 간파하는 걸 보니 이제 강호에 나가도 제 한 몸은 지키겠군. 클클."


사부가 격하게 애정표시를 해 줄 거라고는 애당초 생각지 않았다. 저 양반 그런 사람 아니니까. 하지만 난 그날 사부의 표정에서 미세한 흐뭇함을 발견헀다. 드러내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자기가 사람을 잘 골랐다는 또는 이 정도면 일 좀 시킬 수 있겠다는 뭐 그런 종류의 아주 미시적인 표정이었다.


"현상을 추상적으로 분해하여 수학적인 객체로 만드는 것은 우리 길드의 무공을 갖춰나가는데 필수적인 기량이다. 제자들은 앞으로도 계속 정진하여 빠른 시간 내에 경지에 올라야 될 것이다. 오늘 차니는 이류무사로 승진시키겠다. 페룬 승진발령 내도록."


승진 얘기가 나오니까 갑자기 써리의 눈이 동그래졌다.


"사부님! 승진이라굽쇼? 그런데 이류무사라고요? 그렇다면 원래는 삼류였는지 궁금하옵니다."


"삼류는 없다. 원래 뭐였냐고? 그냥 알바였지. 너희는.."


"그럼 저는 여전히 그냥 알바일까요? 사형은 승진하는데."


"당연하다. 우리 써리는 아직 그냥 알바다."


"아니 사부님. 승진은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져야 되고.."


사부는 써리의 얘기를 더 듣기 싫다는 듯 페룬에게 지시했다.


"청평으로 간다."


"그럼 조안, 금남, 대성리 루트를 타고 북상하겠다."


우리의 SUV는 두물머리를 떠나 다시 강변도로를 달렸다. 한겨울 쌀쌀한 날씨였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강변 둔치 이곳저곳에는 채 녹지 않은 눈들이 멋들어지게 쌓여있었다. 써리는 장장 10분 동안이나 우리 길드의 투명하지 못한 승진 제도에 대해 거의 울부짖듯 어필을 했으나 사부는 간단한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넌 오후에 하면 되지."


청평댐은 수도권에서 드물게 보이는 메가 구조물이다. 나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거대 건축물이 뿜어내는 압도적인 존재감에 항상 가슴을 선득하게 쓸어내리곤 했다. 따뜻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런 종류의 감정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에 비해 댐을 지나 계속 남이섬 쪽으로 이어지는 길은 그야말로 북한강 최고의 판타스틱 드라이브 코스였다. 페룬은 깊이 파인 만곡으로 강물이 쑥 들이친 곳에 절묘하게 자리 잡은 한 펜션에 차를 세웠다.


"워크숍인데 밥은 먹고 하자꾸나."


써리가 밥 얘기에 귀를 쫑긋하더니, 궁금한 게 많은 듯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네 사부님 좋아요. 그런데 이 펜션 진짜 멋진데 이런 곳은 어떻게 아셨어요? 일반손님은 안 받는 것 같고. 혹시 회원제인가. 정원이 관리가 너무 잘 되어.."


"이곳은 우리 길드의 안전가옥이란다. 안가(安家)라고 들어봤지?"


나도 쉬이 납득이 되지 않아 한마디 거들었다.


"네이? 안가라구요.. 그런 건 첩보기관에서나 필요한 곳 아닌가요? 왜 우리 길드에서.."


페룬이 귀찮았는지 상황을 정리한다.


"앗따. 말이 많네. 알았어. 안가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우리 길드 전용 펜션이라고 생각해. 그럼 됐지? 일단 밥이나 먹어."


간단히 식사를 마친 다음 우리는 강 쪽으로 통유리를 배치하여 개방감을 극대화시킨 회의실에 다시 모여 앉았다. 사부는 또 공부를 시킬 작정인 듯했다.



동양학에도 연속과 이산이 있다



"그런데 말이야. 오행에 대해 옛사람들이 이미 객체를 어느 정도 만들어 놓은 게 있어. 조금 원시적이긴 한데. 꽤 쓸만하게 만들었지. 자, 띄워봐 페룬."


페룬이 벽면의 스크린에 또 그래프를 하나 띄웠다.


"이건 10 천간(甲, 乙, 丙, 丁, 戊, 己, 庚, 辛, 壬, 癸)을 표시한 것이다. 12 지지(子, 丑, 寅, 卯, 辰, 巳, 午, 未, 申, 酉, 戌, 亥)도 어차피 마찬가지지. 아까 기온이 오르고 내리는 것을 보면서 이런 모양의 그래프를 분명 보았을 것이야. 그런데 옛사람들은 이걸 구분해서 천간과 지지로 나눠놨거든. 자, 우리 써리에게 승진 기회를 주겠다. 옛사람들이 이렇게 10 천간 12 지지로 구분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느냐?"


홧. 이건 좀 내가 봐도 애매하다. 아직 우리는 음양오행이론을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상태인데. 저런 걸 써리에게 물어보면 내가 봐도 대략 난감이다.


하지만 역시 써리는 승부사였다. 이번 질의응답에 승진이 걸려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데굴데굴 머리 굴리는 소리가 옆에까지 새어 나오는 듯했다. 정답은 맞추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어필은 되어야 한다. 써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한동안 한숨을 푹푹 내쉬더니,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사부님, 소녀 옛사람들의 오의(奧義)를 살짝 엿볼 수 있었사옵니다."


저런 얘길할 때 써리의 표정은 국보급 영화배우 그 자체다. 어찌나 능청스러운지.


"오. 정녕 현자들의 생각을 엿보았단 말이더냐. 그래 어디 한번 읊어보거라."


"천간과 지지는 에너지의 흐름이라는 연속변수 continuous variable를 사람이 따로 조작하고 제어할 수 있도록 이산변수 discrete variable로 치환해 놓은 것입니다. 오전에 얘기하셨던 수학적 객체 역시 연속 상태라면 다루기가 힘들 것입니다. 이산변수 형태가 되어야 사람이나 컴퓨터가 쉽게 다룰 수 있습니다. 옛사람들은 그 이치를 좇아 일부러 저렇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사부는 알 수 없는 신음성을 흘렸다.


"으음.. 제자가 중요한 것을 깨우쳤구나. 좋은 접근이로다. 하지만 그것을 일반인들이 알아듣게끔 쉽게 설명할 수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부드럽지만 송곳을 품은 사부의 질문이었다. 써리는 혼자 손가락을 들어 허공을 툭툭 짚으면서 생각을 이어갔다.


"제자는 이렇게 설명하겠사옵니다. 명절 때 방앗간에 떡을 하러 가면 가래떡이 길게 길게 끊임없이 뽑혀 나옵니다. 이것이 연속변수입니다. 하지만 썰지 않은 가래떡은 무용지물입니다. 잘게 썰어 놓아야 그걸로 떡국을 해 먹든 꼬치에 꽂아 먹든 요리가 가능해집니다. 썰어놓은 가래떡 이것을 두고 이산변수라 부릅니다."


와우! 내가 봐도 써리는 제 몫을 다 했다. 참 나 저럴 때 보면 애가 진짜 천재라니까..


"20대 초반 치고는 임기응변에 꽤나 능하군. 가래떡이라.. 아주 흥미로운 연결이었다."


듣고 있던 페룬이 한마디를 툭 던졌다. 칭찬에 가깝다. 묻지도 않았는데 저런 얘길 자연스럽게 하는 걸 보니 정말 대단한 낄끼빠빠다. 나중에 진짜 저거 어떤 AI 모델인지 꼭 물어봐야겠다. 상용화된 제품들 중에서는 아직 저 정도를 본 적이 없다.


"사부님. 그렇다면 소녀 또한 승진.."


"암암. 가래떡의 비유를 순식간에 끌어낼 수 있는 자질을 지녔는데 승진시켜야지. 페룬! 둘 다 승진발령 내도록! 이제 두 녀석 모두 이류 무사가 되었구나. 앞으로 갈 길이 멀다. 더욱더 정진해야 될 것이야."


페룬은 길드의 문양이 찍힌 종이에 '이류무사'라는 직급이 표기된 문서를 스마트폰으로 보내줬다. 우리 길드 최초의 승진발령이었다.




여 노인의 실체



"공부는 이 정도면 된 것 같고. 이제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 꺼낼까 싶구나. 페룬 간단히 설명 좀 해 봐."


"우리 길드와 당금 강호에 대해 브리핑해 줄 테니 졸지 말고 잘 듣도록 해라."


그날 오후 우리는 북한강 수계의 외딴 펜션에서 이류무사 승진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극비사항을 공유받게 되었다.


"2035년의 강호는 샤만테크 9극(九極)이라 불리는 글로벌 거대 빅테크 기업들이 지배하..."


샤만테크 SHAMANTEQ. 우주항공에서부터 휴머노이드, 인공지능, 나노물질, 바이오, 차세대 미캐닉스와 이동통신, 핵융합과 양자컴퓨터에 이르기까지 4차 산업혁명 시대 최첨단의 핵심기술을 보유하여 어느새 국가급 이상의 권력을 확보한 9개 빅테크 회사들을 말한다. 호사가들은 이들을 기업국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 9개 회사 공동의 이익단체가 바로 샤만테크 총단이다.


"우리 오라클 길드는 샤만테크 제3극 AI 최강 '다트아이 Dart-i' 의 비선조직이다."



쿠쿵. 비선조직? 갑자기? 사주카페 아니었고?


"제자들은 사주카페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사주카페는 맞지.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그러하면 어떤 연유로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건지."


"내가 청춘사주카페 사장인 동시에 다트아이 이사회 의장이기 때문이다."


흐업! 다트아이는 온 세상 사람들 모두가 다 아는 최고의 인공지능 회사다. 압도적인 기술력과 효율로 인공지능 분야에서 독점적인 시장지배력을 구축한 지가 벌써 10년이 넘었고, 군소 인공지능 업체들은 다트아이가 귀찮아서 취급하지 않는 틈새시장에서만 근근이 연명하는 처지다. 여 노인이 그런 글로벌 특A급 회사의 의장?


"사장 아니고 이사회 의장이라고 하시면.."


"내가 다트아이의 오너 owner 라는 얘기지."


오너 얘기 나오자마자 써리가 나섰다.


"잠시만요. 사부님! 제가 잘은 모르지만 다트아이는 상장되지 않은 회사로 100% 개인기업이라고 들었는데 그 최대주주가 우리 사부님? 전세계 부자 순위 10위권이라던데."


"그렇단다. 물론 내가 40년째 활동을 하지 않고 청춘사주카페에 은둔해 있긴 했지만 엄연히 다트아이의 오너는 바로 나지."


"끼약~~"


써리는 거의 눈이 뒤집힐 듯 놀라 까무러칠 정도로 기절초풍을 했다. 나에게도 놀라운 소식은 맞지만 그래도 내가 1대 제자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야 된다.


"40년씩이나 은둔을 하셨다고요? 그러신 이유가."


"회사는 전문경영인들에게 맡겼고. 나는 사람들 사주를 봐주면서 페룬과 함께 어떤 모델을 하나 만들었지."


"어떤 모델인지 여쭤봐도 될..“


"아직은 얘기해 줄 수 없다. 제자들이 경지에 오르면 다 알게 될 것이야. 지금은 줘도 못 먹는다."


우리는 이어지는 페룬의 설명에 입이 떠억 벌어졌다. 알고 보니 우리가 다니는 원효대학교도 다트아이에서 출연한 연구소 개념의 교육기관이었고, 평상시 우리가 쳐다도 못 보는 원효대 총장 역시 여 노인에게는 20년 후배가 된다고 했다.


"아니 그럼 40년씩이나 은둔을 하셨는데, 지금 갑자기 이 얘길 꺼내시는 이유는요?"


"폐관수련이 끝났으니 이제 강호(江湖)에 출도(出道)를 해야겠지!"


"강호출도라고요?"

 

"그래. 모델 개발이 끝났다. 그걸 들고 샤만테크의 다른 녀석들은 요즘 수준이 어디까지 올라왔는지 한번 살펴보려 한다. 말하자면 강호 비무행(比武行)이지.“


"사부님. 그럼 저희도 같이 가는 건지요?"


정신을 좀 차린 써리가 해외여행 가는 줄 알고 또 끼어든다.


"페룬 네가 향후 액션플랜 좀 차근차근 설명해 줘라. 그리고 폐관수련 끝났으니 봉문해제한다고 강호에 전서구 좀 띄우고."





(9화에서 계속 / 매주 토요일 연재)


 *이 글은 작자의 상상을 펼친 허구의 소설입니다. 등장인물과 조직, 각종 사건 등의 소재들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샤만테크 #빅테크 #기업국가 #연속 #이산 #사주 #명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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