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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dos Paul Aug 13. 2024

일상과 신앙생활 그 사이 어딘가

나는 종종, 아니 매우 자주 죄에 걸려 넘어진다. 


모르고 저지르는 게 아니라, 알고도 애써 모른 척하며 유혹에 넘어간다.


넘어지고 다시 주님을 찾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내 삶은 파도와 같이 요동치고 있다. 


그럴 때마다 사단이 나를 참소한다. 


방금 그런 죄를 저지르고도, 염치도 없이 네가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고? 더럽고 부정한 너의 몸으로 드린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실 것 같으냐?


차라리 이왕 죄를 저지른 김에, 더 저질러 버리는 건 어때? 


이런 사단의 속삭임들은 내 죄책감과 절망감, 쓸데없는 효율성을 자극하며 나를 다시 죄의 구렁텅이로 끌고 간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죄를 저지른 직후일지라도, 자신을 찾기를 바라시는 분이 아닐까? 


그전에 상황이 어떠하든, 하나님을 간구하는 편과 그렇지 않은 편 중에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원하실지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명백하다.


하나님은 이렇게 연약하고 몹쓸 나에게조차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심으로 죄에서 구원하셔서 자녀 삼아 주신 분이시다. 내 죄의 문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이미 해결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나 자신의 연약함을 마주하며 스스로에게 되뇐다.


"그래, 내가 그러면 그렇지. 다시는 죄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다짐은 결코 할 수 없다. 오히려 다음과 같이 고백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방금 죄를 저지른 나는 몇 시간 뒤에도, 내일도, 일주일 뒤에도, 한 달 뒤에도, 언젠가 다시 똑같은 죄를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이 장소를 떠나 하나님께 기도하고,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왜냐하면 죄는 반드시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니까."


키르케고르는 믿음이란 요동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견고하게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이 아닌, 매 순간 흔들리고 고뇌하며 때로는 넘어지고 다시 주님을 붙드는, 그러한 요동치고 불안한 것이 믿음의 본질이라고 얘기한다. 


언젠가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께서도 비슷한 얘기를 해주신 적이 있다.


하나님은 저 높이 계시고, 인간인 우리는 저 아래에 있다. 


조금 하나님과 가까워진 듯싶으면 다시 멀어지고, 이런 과정이 계속 반복될 때 조금씩, 아주 조금씩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그리스도인은 일상의 온갖 곳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한다. 


영화를 볼 때에도, 책을 읽을 때에도, 일을 할 때에도, 운동을 할 때에도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내 삶은 일상과 신앙생활 그 사이 어딘가에 놓여있는 듯하다. 


죄 속에 빠져 지극히 세상적인 일상을 살다가도 문득 예수님을 떠올리며 신앙생활을 하곤 한다. 


이 모든 순간 또한 하나님께 나아가는 과정의 일환으로 대하자. 


더욱 말씀과 진리로 무장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도록 치열하게 살아가자. 


내 유일한 힘은 주님을 기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내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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