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웠던 친구들과의 모임, 인생 2막을 열며
오늘 있는 모임은 교육대학 동기 친구 중 수석교사를 지냈던 7명의 친구들과의 만남입니다, 지난 8월말을 기점으로 모두가 퇴직을 했습니다. 이제는 모든 친구가 인생 2막을 함께 시작하게 되어 더욱 의미 있는 자리였습니다. 이 친구들은 진주검무, 라인댄스, 국악, 하모니카 등 다방면에서 재주를 뽐내고 있으며, 모두 연금 혜택 덕분에 기간제 교사는 하지 않고 자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습니다. 방학가간을 피해 토요일에 만났던 일정이 이제는 가장 편안한 평일날로 정할 수 있었습니다.
저를 포함해 부산, 김해, 창원, 고성, 그리고 진주(3명)에 사는 친구들이라 여러 도시를 돌아가며 모임을 갖습니다. 오늘 모임 장소는 창원의 한 주택가 상가였는데, 맛집이다 보니 복잡한 길가에 주차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습니다.
퇴직 전, 그리고 방학 기간 중에는 항상 장기간의 남편과 방학을 모두 채우는 일정의 차박 여행을 떠났던 저였기에 모임에 가장 많이 빠지는 편이었지만, 이제 모두 퇴직하여 평일 모임이 가능해진 점은 큰 장점입니다.
이전에는 복잡한 곳이나 장거리 운전은 남편이 늘 도맡아 해주었고, 저는 '양산 운전면허증'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운전을 출퇴근에 맞추어했습니다. 이런 모임이 있을때는 남편이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곤했습니다. 고흥에 있을 때는 장거리라는 이유로 항상 태워주었지요. 남편이 데려다주었을 때는 늘 점심 식사 후 마지막 차 한 잔의 시간은 포기하고 일찍 나와야 하는 시간 제약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남편이 없습니다! 대중교통 이용은 반나절이 걸릴 정도로 한없이 불편한 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쾌재를 불렀습니다. 데려다주는 편리함보다 더 중요한 시간에 대한 제약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대중교통은 불편하니 내게는 두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직접 운전을 하던지 친구의 차를 타고갈수 있습니다. 김해있는 친구와 연락이 되어 친구의 차를 타고 가기로 하였습니다. 일부러 터미널까지 갔다가 터미널에 내려서 약속장소로 찾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집에서 3호선을 타고 대저역에서 김해경전철로 갈아탄 후 김해시청역에 내려 친구를 만났습니다. 터미널까지 가는 불필요한 시간을 줄인 이 경로로 김해시청역까지 30분이 걸렸습니다. 친구를 만나 친구 차를 타고 가는 길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수다로 힐링의 시간이었습니다.
창원 약속 장소에 11시에 도착했고, 일찍 도착한 덕분에 길가 주차가 아닌 5대 남짓한 식당 주차 공간에 여유롭게 차를 댈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호적상 생년월일이 늦어 가장 마지막으로 퇴직한 친구를 위한 축하 행사도 겸했습니다. 수석교사라는 자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한 일거리가 없으면서도 본분에 맞는 일을 스스로 찾아 해야 하며, 열심히 할수록 동료 교사들이 불편해지는 어려운 자리입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그 자리를 지켜낸 친구에게 모두 축하 인사를 보냈습니다.
이 친구는 감정코칭 등 상담활동과 놀이 수업을 했고, 정년퇴직을 앞둘 때까지는 아이들과 교사들에게 부담이 덜 되는 체육과를 담당했습니다. 자신의 실적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B등급을 흔쾌히 받아들였던 모습이 마지막까지 무사히 달려올 수 있었던 비결이었을 것입니다.
점심 식사 후, 병원 진료로 인해 한 친구가 먼저 자리를 떠났지만, 남은 친구들과 함께 **'오우가'**라는 카페에 갔습니다. 마당의 작은 수로와 대나무들이 도심 속 카페를 감싸고 있어 인상적이었습니다. 신나는 수다는 종일 계속되었고, 배가 너무 불러 견디지 못하고 산책에 나섰습니다.
창원향교를 지나 폐기찻길을 산책로로 만든 **'행복의 창'**으로 걸었습니다. 이제 모두 인생 2막으로 들어선 지금, **'행복의 창'**으로 함께 들어서자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터널 구간은 시원했습니다. 점심 과식으로 인해 저녁으로 먹기로 했던 짬뽕은 모두들 포기했습니다.
1박 2일 모임이 아닌 당일 모임이기에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아쉬운 마음이 가득할 때, 마지막으로 퇴직한 친구가 보따리를 풉니다. 밭에서 키웠다는 땡초와 호박, 그리고 캐나다에서 사온 꿀이었습니다.
모두 한 봉지씩 받았는데, 아이들이 나물 반찬을 좋아하지 않아 호박은 사양했습니다. 남은 고추 한 봉지는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되었지만, 친구들은 모두가 알고 저만 몰랐던 땡초 다대기 요리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땡초를 넣으면 너무 맵다며, 김에 싸 먹으라고 남편 숟가락에 올려줬다가 너무 매워 화를 내는 바람에 이혼할 뻔했다는 등의 이야기가 또다시 길어졌습니다. 모두들 땡초 다대기 레시피는 유튜브에서 찾으면 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고추를 준 친구의 마음을 생각하며 땡초 다대기 만들기에 도전했습니다. 고추를 모두 씻어 꼭지를 따고 전동 다지기를 돌렸습니다. 매콤함이 코끝을 간지럽히고 기침을 유발했지만, 눈물까지 흘리게 하진 않았습니다.
유튜브 레시피대로 젓갈, 마늘, 맛술, 간장을 넣고 양은 눈대중으로 맞췄습니다. 불에 조리다가 물이 모자라면 한 번 더 붓고 조리는 것도 레시피대로 따라 했습니다. 레시피에 따라 카키색이 될 때까지 조리했는데, 맛은 "캑캑" 소리가 날 정도로 너무 매웠습니다.
과연 못 먹을까 염려했지만, 첫 번째 사용처로 계란장을 만들었습니다. 반숙 계란 15개에 진간장, 땡초 다대기, 다진 양파를 넣었습니다. 땡초 다대기의 양을 조절하니 약간 매운맛의 계란장이 완성되었고, 아이들도 맛있다고 합니다. 직접 김에 싸 먹기는 어려워도, 요리할 때 편리한 양념장으로는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오늘 친구들과의 수다는 한 달을 버틸 수 있는 에너지였습니다. 남편 없이 가는 길이 불편했냐고요? 아닙니다. 훨씬 자유로웠습니다. 땡초 다대기 요리 역시 남편이 있었다면 "우리 집엔 그런 양념 필요 없다"며 못 하게 말렸을 것입니다.
자유가 좋습니다. 날아갈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자유로운 모임이 계속되길 기대하며, 친구들과 함께 열어가는 인생 2막을 힘차게 걸어 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