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엄마처럼 되지 말라고 나를 채찍질하다.

by 흔들리는 민들레




의도하지 않는 순간, 의도하지 않은 감정과, 의도하지 않은 신체증상이 동반된다.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되지 않아 2년 만에 떠난 휴가지에서 배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리고, 열이 나는 것 같은 느낌과, 평상시보다 빨라진 맥박이 느껴졌다.

처음엔 배탈이 났나 싶어 얼른 숙소로 돌아가서 안정을 취했지만, 배속이 불편한 증상보다 더 불편한 건 평상시와는 다른 맥박 때문이었다. 늦게까지 잠들기가 어려웠고, 겨우 잠이 들었지만 2,3시간 이후 깨서 다시 잠들지 못했다.

약을 챙겨 올 걸이라는 후회도 부질없는 짓이라 스스로 마음을 달래야 했다.





그곳은 제주의 한 북카페였는데, 큰아이는 만화책에 푹 빠져 있었고, 작은 아이는 아빠와 함께 앞마당에서 까페에서 함께 사는 강아지와 놀고 있었다.

자그마한 카페 안에는 성수기가 아니라 손님도 별로 없어 음악소리만 고요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고, 열린 창문에서는 오후의 늦바람이 저무는 햇살과 함께 선선하게 불어왔다.

나는 따듯한 밀크티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그 고요함과 차분함과 여유로움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 뱃속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숙소로 돌아갔고 맥박이 차분해지지 않아 힘들었다. 신체적 문제가 다시 발생했고, 그것을 파악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다급한 마음이 생겼다.





주치의 선생님은, 내게 어린 시절에 행복했던 기억이 있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에 행복했던 기억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생각해보았다. 그래도 한 번쯤은 있겠지라며 시작했던 과거에 대한 성찰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결론을 얻고 금세 끝나버리고 말았다.

그는 나의 증상을 익숙하지 않은 행복에 대한 불안이라고 말했다.

나는 겉으로는 내가 자란 환경이 불행했다고 말했고, 마음속으로는 그 불행을 나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또다시 그동안 해왔던 방식으로 내게 그런 잣대를 들이밀고 있었다.


` 그래, 너 불행해. 근데 계속 그럴 거니?

잊어버려. 극복해. 네가 자란 환경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세상엔 너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도 많아. 근데 네가 왜 불안해? 네가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니 아픔이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








나는 나를 힘겹게 하는 증상을 문제로 여겼고, 해결해야 할 과제로 여겼다.

나도 모르게, 다시 과거의 방식대로 나를 존중하지 않고, 아픔을 비난했던 것이다. 모든 생각의 밑바닥에는 나 자신에 대한 분노가 찰랑거리고 있었다. 내가 해녀의 자유로움을 동경하고, 내 어깨에 멘 산소통의 무게에 짓눌리는 이유는 그 안에 나를 향한 분노가 있기 때문 아니었을까?




선생님은 내게 물었다.

그 산소통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냐고.

그 안에는 나를 지키기 위한 불안이 들어있었다.

또 무엇이 들어있을까. 아파하는 나 자신을 위로하지 않고 미워하는 분노의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이 들어있을까. 좋은 사람이 되려는 마음이 들어있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는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여기는 마음이 숨어있다.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방식은 늘 그러한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었다.

나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미워하는 마음.

좋은 사람이 되어 사랑받고 싶은 마음.

힘들고 싫어도 말하지 못하고 거부하지 못하면서

타인이 내게 무례하게 굴어도, 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싫은 내색을 안 하면서 얼마나 괴로웠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부정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이들을 보며 불쾌했던 것은, 사랑받기 위해 나 스스로 부정적인 마음을 감추며 괴로웠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정당한 배려를 받지 못함을 느낄 때, 그것을 정당하게 표출하는 것이 왜 나쁜가, 내가 나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마음은 없을 것이다.

나는 늘 사랑받기 위해 나 자신에게 타인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그래서 항상 갇힌 느낌이 들었다.

사방이 강화유리로 된 감옥을 뒤집어쓰고 사는 느낌이었다. 숨이 막히고, 답답하고, 화가 나고, 나를 이렇게 살게 만든 엄마를 죽이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을 혐오하면서, 분노하면서 스스로에게 요구했다. 정신 차리라고.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내 엄마와 같은 엄마가 될까 봐, 단 한 자락이라도 그런 비슷한 모습이 흘러나오면 혐오하면서, 항상 나를 채찍질했다.

엄마처럼 되지 말라고,




프로이트는 인간을 움직이는 두 가지 욕동(본능적 욕구의 움직임)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삶의 욕동인 리비도 Libido(성 에너지)와 죽음의 욕동인 타나토스 Thanatos(공격성, 공격적 에너지)입니다.
............ 공격성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나를 지킬 수 있을까요? 왜 인간은 참혹한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전쟁을 일으킬까요? 왜 남자들은 권투, 레슬링, 격투기에 열광할까요?
공격성은 타인을 향한 것만은 아닙니다. 공격성은 자신을 움직이는 중요한 동력입니다.


<프로이트의 의자-정도언>





나는 화낼 수 있다.

태어나길 원하지 않았지만 그녀에게서 태어났고, 생애최초 가장 중요한, 모든 인간관계의 기초가 되는 정상적인 애착을 맺지 못했다. 그로 인해 살아가며 만나는 모든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느낀다. 빈곤한 가정 속에서 버려진 채 자랐다.

타인이 얼마나 불행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봐야 할 것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의 아픔과 통증이다. 그것은 해결해야만 할 문제가 아니라, 들여다봐야 할 내 모습이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존중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버려진 채 자라났는데, 분노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불안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내가 지닌 공격성이 움직이는 것은 스스로 살고자 하는 정상적인 반응일지도 모른다.

괜찮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 괜찮다.

이래도 괜찮다. 아파도 괜찮다. 화내도 분노해도 괜찮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을 내게 해준다.

가장 좋은 것을 내게 준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