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지만 서로 사랑하면서 아껴주는 사람들은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사람들이었다. 남들은 부자를 부러워하고 좋은 집에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것 같았는데, 나는 그런 것들이 엄청 부럽지는 않았다. 너무 가난했어서 아예 그런 쪽은 꿈조차 꿀 수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사랑받고 사랑하면서 살고 싶었다.
가난한 마음이 가장 하기 힘든 일이 바로 사랑이라는 걸그 시절을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어쩌면 꿈을 꾸면서 현실을 견디었는지 모르겠다. 어딘가에는 그런 사랑이 있지 않을까,나는 그걸 배우지 못했지만 그 기회가 언젠가는 주어지지 않을까 하면서.
하나도 부럽지가 않어~
결국 지금까지 그런 사랑은 목격하지도 경험하지도 못했다. 사랑의 유사품은 넘쳐났지만 진품은 없었다. 어떤 사랑도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 자체로 사랑하지 못했다. 세상의 모든 사랑은 결국에 <자기를 사랑하기 위한 사랑>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너를 사랑한다라고 표현했다.
사랑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난 후 부러운 사람이 없어졌다. 때로 누군가가 부럽다면 그 사람이 누리는 편리가부러울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많은 것들에 의지한다. 예전의 나처럼 어디엔가 사랑이 있을 거라는 희망에 의지하기도 하고, 돈이나 명예에 의지하기도 하고, 가족에게 의지하기도 하고, 직업적인 전망에 의지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인정에 의지하기도 한다. 의지할 것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풍요롭고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안정적인 삶은 과연 좋은가?
의지할 곳이 많은 삶은 인생을 안정적으로 만들긴 하겠지만 거기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발견되지 않은 잠재된 나의 또 다른 존재는 그런 환경에서는 나올 수가 없다.부모나 학교로부터 편집되고 다듬어진 나로서만 살아가는 것은 결국 의지와 의존의 상태인 것이다.
내가 된다는 것은 역할 너머의 나라는 본질을 만나고 그 본질의 목소리를 청취하는 일이다. 그러나 의지의 상태에서는 의지하는 대상, 그것이 사람이든 직업이든 역할이든 물질이든 유사 사랑이든, 그 대상이 원하는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 그것이 의존의 상태가 아니라 의지의 상태더라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렇다면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아간다는 것은 의지도 의존도 하지 않는 상태일까? [진정한자유는 규정이나 정의에 메이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받아들이고 그 모든 욕구들과 함께 담담히 나아가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극렬히 거부하지 않지만 덥석 뒤집어쓰지도 않는 마음으로, 나의 존재 자체로 나아가는 일이 자유다. 알 수 없는 미래가 불안정하고 외롭다면 당신은 자유인이 될 수 있다. 불안과 외로움을 극렬히 거부하거나 덥석 뒤집어쓰지만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