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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리는 민들레 Aug 14. 2023

2. 호된 경험으로 배운 나를 지키는 방법

당신과 나의 고통



 

호된 경험


나는 나를 보호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나의 부모님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친어머니는 언제나 자기중심으로 나를 움직이게 했고, 자신의 감정을 모조리 내게 쥐여주면서 그것이 네 것이라고 했다. 내가 나의 감정을 말하면 그것은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여기게 했고 그러면 사랑을 받을 수 없다고 가르쳤다. 너는 뭘 하고 싶니? 네 기분은 어떠니? 가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말하고 요구했다. 그것을 해내지 않으면 사람들이 너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고 모두가 너를 욕할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런 경험들이 나의 첫 책[산다는 것은 흔들리는 일이다]에 담겼다.)


세상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던 어린아이였던 나는 그게 절대적인 진실인 줄 알았다. 그녀가 내게 준 것은 죄책감이었다. 나는 밥을 먹는 대신에 죄책감을 하루 세 번씩 떠먹으면서 자랐다. 그런 아이가 성인이 되어 많은 관계들을 어떻게 맺어나갔을지 추측해 보는 것은 쉬운 일이다. 많은 관계들에서 나는 항상 절박하고 애쓰고 노력했다. 죄책감을 장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서든 더 많이 일하고, 어디서든 더 어려운 일을 도맡아서 자처하고, 어디서든 타인들의 눈치를 보면서 살았다.


그런 삶이 행복했을 리가 없었다. 틈만 나면 죽고 싶었다. 왜 죽고 싶은지도 몰랐다. 자각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사십여 년을 살아왔던 어느 날,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극심한 우울증이 찾아왔다. 그때 내 안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죄책감의 실체에 대해 알게 되었다.


괴로웠던 결혼생활의 이유도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을 알고 난 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과거의 노예로 살아왔다는 것을, 지금껏 내 삶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살아왔다는 아픈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고 친정엄마와 연락을 끊었다.


친정엄마는 더 이상 내게 연락을 하지 않고 결혼생활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내가 나에 대한 자각이 없었듯 남편 역시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이 없었다. 자기의 말과 행동이 어디에서 기인된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 잘된 것인지에 대한 자각이 없었다. 내가 하는 이의 제기와 감정의 표현은 그냥 모두 내 것이었고, 내 과거에서 기인된 것이었고, 나만의 문제였다. 그을 하나하나 바로잡아 가기 시작했다. 정말 모두 내 것인지, 우리의 어려움은 정말 모두 나 때문인지 질문하고 또 질문했다. 매일매일 두어 가지의 질문들을 해 가면서 직면하게 했다. 방어와 회피반응들에 맞서 싸웠다. 그래서 당신은 어떤 삶을 선택하겠느냐고.

부여받은 삶을 원하느냐고 아니면 새로운 삶을 원하느냐고. 부여받은 삶을 원한다면 그렇게 하라고.

당신의 선택을 존중하겠다고 말했다.









일단 거리두기


그 모든 과정의 핵심은 '거리두기'였다. 자꾸만 나의 경계를 침범하는 그들로부터 거리를 두는 일은 나를 보호하는 수단이자 방법이었다. 어려웠다. 불안했기 때문이다. 내가 관계를 파괴하고야 말 것이라는 불안과 두려움이 나를 지속적으로 흔들리게 했고 괴롭게 했으며 죄책감은 끊임없이 나 자신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죄책감과 불안이 끝나지 않고 영원할 것만 같았다.


어떤 것에 대해 배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쉽게 배울 수도 있고, 즐겁게 배울 수도 있고, 어렵게 배울 수도 있고, 호되게 당하면서 배울 수도 있다. 배운 것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방법은 무엇일까? 호되게 당하면서 배우는 방법이다. 학창 시절, 쪽지시험을 보면서 틀린 개수대로 허벅지를 맞으면서 배웠던 지식이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 속에 남아있듯 내 경험도 그다. 나는 내 인생에서 벌어진 모든 고통스러운 일들을 절대 잊을 수 없다. 호되게 당하고 호되게 상처 입으면서 배운 일이기 때문이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그 관계에 의지하거나 의존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내 경계를 자꾸 침범하는 타인에게 무언의 경고를 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침범한다면 그 관계는 끝낸다. 그런 행동을 통해 나에게 우선은 나 자신이지 네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준다. 이런 메시지지속적으로 보내면 상대방이 학습을 하게 된다. 이런 메시지는 결국 상대방으로 하여금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게 하는 정서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해를 원할 필요 없다.


타인들에게 구구절절이 나를 이해시킬 필요 없다. 어차피 이해할 사람은 이해하고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구구절절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느낀다. 함부로 해도 될 것 같은 사람함부로 해도 먹히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을. 그러니 나에 대해 입 아프게 설명하고 해명할 필요 없다. 간 낭비다.


좋은 사람일 필요도 없고 멋진 사람일 필요도 없다. 그냥 내 진심으로 내 삶을 살면 된다. 이제는 타인들이 뭐라고 떠들든 내버려 두고 내 인생에 집중한다. 그토록 유기불안과 죄책감에 시달리던 내가 이제는 타인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이제 누구도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그렇게 갖고 싶었던 타인의 인정이 이제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있으면 좋지만 없다고 해서 내 존재가치가 흔들리지는 않는다. 나는 나만의 무대를 살아갈 것이다. 나를 판단하고 평가하는 타인들이여, 이제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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