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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리는 민들레 Jan 17. 2024

28. 오직 당신만이 당신의 스승이 될 수 있다.

당신과 나의 고통



진짜 필요한 가르침은?


모든 가르침은 언제나 옳은가?


우리는 어릴 때,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고 배운다. 또 부모님 말씀도 잘 들어야 한다고 배운다.

자기의 생각을 무례하지 않게 밝히고 말하는 방법보다는 주는 가르침을 잘 받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운다. 그 덕분에 우리는 독립적이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자기 길을 가는 주도성도 잃어버렸다.


또 자기의 주관과 확신을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은 윤택한 삶을 살아갈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놓았다. 세상이 원하는 사람이 되지 않고 자기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면 고문을 당하고, 불이익을 당했다. 그런 일들이 인류 역사에 수두룩하다.


남들과 다른 목소리를 내면, 야, 뭘 그렇게 피곤하게 사니?, 왜 긁어 부스럼을 내냐? 라면서 비난을 하고,

잘난척하지 말라는 말이나, 일을 크게 만드냐는 말들을 한다. 그들이 그러는 것은 그들 스스로가 새로운 일에 따르는 책임을 수용할 준비가 되지 않아서 임에도 그것을 알지 못한 채,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비난한다.


우리는 성장하며 많은 규범들을 습득한다. 그러느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탐색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관점은 주로 외부 세계에 맞춰지고 내면세계는 생략된다. 누구도 너의 내면을 탐색하라는 가르침을 주는 사람은 없다. 그저 어떡하면 한 인간을 이 사회의 쓸모 있는 존재로 길러내느냐가 중심이다.







열 다섯 명의 선생님


15명의 선생님, 그리고 다수의 선생님들.


정규교육을 받는 동안 12명의 선생님을 만났다.

초등학교 때만 전학을 세 번 다녔으니까 총 15명의 선생님을 만난 셈이다. 그러나 내 영혼을 후려칠 만큼의 가르침을 준 선생님은 없었다. 그렇게나 많은 선생님들을 만났는데 말이다.


나는 늘 선생님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싶었다.

/ 교육자는 왜 교육을 하는가?

/ 교육은 교육자를 위한 것인가 배우는 자를 위한 것인가?

/ 인류에게는 왜 교육이 필요한가?


이런 본질적인 질문이 전무했다. 어디를 가도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고, 이런 질문을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저 주는 가르침을 잘 받아,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업을 가지며 잘 먹고 잘 산다는 류의 말들만 의미 없이 부유하는 교육계에서 나는 정말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 교육이 괴로웠고 몹시 고독했다.

내 기억 속의 선생님들은 차별과 폭력과 냉소와 자조적인 태도를 가졌을 뿐이었다. 정규교육 속 열다섯 명의 선생님은 정도만 다를 뿐 내게 그렇게 기억된다.


나는 교사가 지식만을 가르쳐 주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삶의 여러 방면의 모델이 되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직 당신만이


가장 큰 스승은 당신 자신


그런 경험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그들이 준 가르침을 그렇게 신뢰하지는 않았다. 내면의 밑바닥에는 늘 해결되지 않은 본질적인 질문들이 있었다. 지금도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인 신뢰들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명문대 교수라는 타이틀도 신뢰하지 않는다. 좋은 선생님들께는 죄송하지만 개인적인 경험이 그렇다. 유년 시절에 단 한 분이라도 좋은 선생님을 만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어쩌면 좋은 선생님도 좋은 어른도 만나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내 목소리를 보존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나는 그 덕분에 권위에 도전하는 마음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고, 나만의 고유한 질문들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질문들은 나의 내면에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목소리로 터져 나왔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로. 학생운동 세대도 아니고 해 본 적도 없지만 나는 늘 질문을 품고, 권위에 도전하고 싶은 욕구를 품고 산다. 질문을 하는 나를 사람들은 굉장히 의외라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친절해 보이는 사람이 하는 질문치고는 도전적이라서.


가르침은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소화시켜야 하고

소화를 통해 내 고유한 목소리로 다시 꺼낼 수 있어야 한다. 불신이 아니라 의심하고 질문의 과정을 거쳐야 나만의 것이 된다. 그래서 진짜 스승은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세상의 많은 관점들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들과 전혀 다른 것들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승이 아닌 자신에게서 배워야 한다. 오직 당신만이 당신의 스승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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